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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n 02. 2023

30대 직장인 아침수영 초급반 한 달 후기

수영을 시작해서 다행이다


우연찮게 문화센터에 있는 와이프를 데리러 갔다가, 뻥 뚫려 있는 전신유리창으로 보이는 커다란 수영장을 보고 갑자기 열정이 끓어올라 수영을 등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뭘 따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문화센터를 다닐 생각조차 못했었지만, 돈을 포기하고 인생을 구하기 위해 과감히 이직한 덕분에 이렇게 수영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내게 그런 서사가 있어서 그런지 한 달 동안 수영강습이 있는 날은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매번 강습이 끝나면 혼자 남아서 부족한 자세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연습을 조금 더 하다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한가로워질 때쯤 운동을 마무리했다. 주말에 개방되는 자유수영에도 항상 나가서 한 시간씩 연습을 했다. 안 그래도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이 영 재미가 없어서 고민이 많았었는데, 수영은 재밌고 꾸준하게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운동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수영생활이 시작되었다.






#수영 강습 등록

수영 강습반 같은 경우에는 미리 강습 인원을 모으고 나서 그 사람들과 한 달 동안 함께 강습을 듣게 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 수영을 배우려고 등록하는 사람들은 아무 때나 등록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월말에 해당 센터가 지정하는 기간에만 등록하게 되어 있다.


근데 생각보다 강습 등록 경쟁?이 치열했다. '어르신들은 등록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영 강습을 등록하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일단 모바일 어플로만 수영 등록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조금 놀랐다. 나야 물론 스마트폰을 자주 활용하는 젊은 사람이니까 큰 어려움은 없지만, 현대 문명과 거리감이 있는 사람은 등록하기가 꽤 난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은 바로 '등록'이었다. 내가 다니는 센터는 지정 날짜의 아침 6시부터 어플의 '온라인 수강 신청'란이 개방되었다. 익히 와이프한테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어차피 새벽에 일어나는 나는 나름의 '오픈런'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적당히 긴장을 타면서 새벽 5시 58분 정도부터 폰만 붙잡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 6시 정각이 되었고, 난 무사히 내가 원하는 '수영 초급반 07:10~08:10'타임을 등록할 수 있었다.


내가 놀랐던 건 인원이 마감되는 시간이었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약 2분이 지났을까, 이미 '06:10~07:10' 타임은 정원이 마감돼서 더 이상 등록할 수도 없었다. 난 어차피 등록을 했기 때문에 다행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수영을 등록하는지도 알게 됐고, 월말마다 이렇게 오픈런을 때려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침수영은 부지런해야 겨우 들을 수 있나 보다 싶었다.



#수영장으로 출근하기

난 미라클모닝을 실천하고 있어서 보통 새벽 4시에서 4시 30분 사이에 일어난다. 그 후 6시 40분까지는 보통 글을 쓰거나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독서를 하면서 아침 시간을 보낸다. 수영을 하지 않았을 때는 더 많은 새벽시간을 활용할 수 있지만, 의외로 7시 전에 집을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니 내가 새벽에 보내는 2시간이 더욱 알차게 보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6시 40분에 출발하면 보통은 10분 안에 문화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첫 타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해서 그런지 주차장에 자리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문화센터 내 수영반 출입은 스마트폰 어플에 있는 '회원 QR코드'를 찍고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이젠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탈의실에 입장하면 어디든 그렇겠지만 상단에 있는 사물함은 비어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거의 매번 하단에 있는 사물함을 사용하게 된다. 내가 너무 일찍 가는 편인지, 늦게 가는 편인지는 잘 몰라도 그 시간에 샤워실에 들어가면 자리가 없어서 샤워기 자리가 비도록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남자들이라 그런지 로테이션이 빨라서 금세 자리가 나기 때문에 기다릴만했다.


아침에 출근 전에 하는 수영이 좋은 점은 씻는 게 너무 편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덜 깬 채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하는 것만큼 세상 귀찮고 힘든 것도 없는데, 수영장에 가면 그 과정이 너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되는 바람에 아침에 씻는 것에 대한 부담이 거의 사라졌다. 우리 집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씻는 건 어딜 가나 똑같건만 그 차이는 실로 상당했다.



#수영 초급반 첫 수업

내가 등록한 수영 초급반의 정원은 30명이었다. 첫날엔 거의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출석했던 것 같다. 강사님은 우선 강습받는 사람들을 '수영을 배워본 적 있는 사람'과 '수영을 아예 처음 배우는 사람'을 구분해서 레인을 2개로 나눴다. 사실 난 10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절에 수영을 잠깐 배웠던 적이 있지만, 아예 처음 배운다고 말했다. 숨쉬기든 발차기든 지루한 수업을 다시 듣고 싶진 않았지만, 강사에게 '배운 적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씌우면 나의 자세를 대충 봐줄 것 같았기 때문에 쌩초보 코스프레를 했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금세 들었던 게 확실히 나는 발차기나 호흡법부터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 많았다.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던 발차기나 음파도 의외로 할 만했고 재밌었다. 옆 레인 사람들은 바로 킥판을 잡고 자유형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 무리에 껴서 나도 자유형을 하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올바른 자세를 배우는 것이 이번에 수영을 등록한 또 하나의 목적이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멈추지 않고 5바퀴 정도를 꾸준하게 돌 정도의 영법과 체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난 왠지 그런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고 제대로 수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수평 뜨기, 발차기, 음파

처음엔 물 수면에 엎드려서 수평으로 몸을 띄우는 것을 배운다. 그 뒤로는 발차기와 숨 쉬는 법을 배운다. 숨 쉬는 법을 음파라고 하는 이유는 물속에서는 코로 '음~'하며 코로 숨을 내뱉다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입으로 '파~'라고 하며 숨을 들이마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음파 음파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음~'은 실제로 코로 숨을 내 쉬는 소리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파~'는 '파'라고 하면서 입으로 숨을 들이마셔야 물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발차기는 킥판을 잡고 하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 그냥 킥판 잡고 앞으로 발차기를 하면 죽죽 나가는 기분이 들었는데 고개를 올려서 음파를 한 번이라도 하면 그대로 몸이 가라앉아 죽죽 나가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며 음파까지 하는 것은 레인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게 유독 힘들었다. 내가 음파를 하면서 몸이 많이 가라앉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자유형

자유형 팔 동작할 때가 가장 재밌었다. 다른 동작들과는 다르게 물을 잡아채면서 숭숭 나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자세가 엉성하든 엉망이든 간에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가는 게 느껴지면 왠지 모르게 힘이 더 솟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반 바퀴를 돌고 돌아올 때면 항상 힘에 부치고 숨도 딸려서 처음 갈 때만큼은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자유형은 킥판 잡고 왼팔 동작, 오른팔 동작, 숨쉬기 순으로 배운 다음 그 연습이 어느 정도 되고 나면 한 번에 하는 식으로 배워 나간다. 킥판의 용도를 나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뭘 하더라도 킥판을 잡고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자유형도 킥판을 잡고 할 때와 없이 할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어느 정도 발차기, 음파, 팔동작, 숨쉬기까지 다 하는 자유형을 하더라도 저 멀리 있는 레인 반대편에 도착하기만 하면 숨이 차서 다시 돌아오는 게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었다. 쉬지도 않고 반대편에 찍자마자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가는 것인지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숨이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물속에서 힘을 너무 많이 들이고 있다는 것과, 숨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을 들이마시려면 그만큼 몸속에 있는 숨을 물속에 있는 동안 코로 내뱉어야 했다. 나가는 숨이 있어야 그만큼 들어올 숨도 있는 것이었다. 왠지 이건 세상의 이치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배영

수영 초급반은 자유형과 배영을 배우다가 끝이 난다. 난 배영만큼은 하기 싫었다. 예전에도 배영을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강사분들 말로는 남자들이 특히 배영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욕심이 많은 난 '예외'에 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예외가 되지 못했던 난 배영만 하면 물 먹는 하마로 변신하곤 했다. 발차기를 해도 물이 들어오고 팔 동작을 해도 물이 들어와서 뒷사람한테 따라 잡히기 바빴다. 그렇다고 자리를 바꾸기도 애매한 것이 자유형을 할 때면 내가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그러기도 난감했다.(뒷사람도 그 부분을 알고 있어서 차마 자리를 바꾸자는 말을 못 하는 눈치였다)


결국 유튜브로 배영하는 방법을 검색해 봤다. 처음엔 몸으로 하는 운동이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영법을 눈으로 익히는 게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막상 영상을 통해 눈으로 익히고 나서 실전에 투입하니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돼서 흠칫 놀랄 정도였다. 항상 배영으로 레인 중반쯤 넘어가면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계속 멈출 수밖에 없었던 나였지만, 유튜브 영상 좀 보고 왔다고 갑자기 끝까지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영에 대한 고충은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수영하는 게 더 좋아졌다.



#자유수영

내가 등록한 문화센터의 한 달 수영 강습비는 '6만 원'이다. 근데 이 6만 원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주 5일 평일 내내 강습을 받을 수 있고, 주말에 자유수영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난 처음엔 '월 수 금'이나 '화 목 토'정도로 생각했다. 근데 매일 아침마다 꾸준하게 수영을 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무료로 자유수영을 할 수 있는데 강습비가 6만 원이라는 게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수영이 열릴 때는 항상 개방 시간에 맞춰서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30분 정도가 지나면 사람들이 꽤나 많이 오는데 가끔 초급반 레인에 와서 접영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조금 난감할 때도 있다. 자유수영이라도 레인별로 초급, 중급, 고급으로 구역을 나눠놨건만 왜 굳이 거기 와서 훼방을 놓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시하고 연습에 매진하면 그나마 운동은 할 만했다.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

수영 강습을 등록할 때의 그 치열한 경쟁이 뻘쭘할 정도로 날이 갈수록 강습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포기를 한 건지, 귀찮아서 나오지 않는 건지, 무슨 사정이 생긴 지는 모르겠다만 얼굴이 이제 익을만했던 분들이 점점 나오지 않아서 아침에 레인에 서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덕분에 강사님에게 더 집중적인 코칭을 받을 수 있었고 더 많은 연습을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요일 중에서는 확실히 월요일과 금요일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지긴 했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다른 요일과 전혀 다른 날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꼭 특정요일에 특정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마다 난 자연스럽게 성실한 사람이 되어갔다. 인생은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먹고 들어가는 게 확실한 것 같았다. 난 내 돈이 아까웠고, 시간이 아까웠고, 수영이 즐거웠다. 더군다나 아침 수영을 가기 2시간도 더 전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나로서는 수영강습에 빠질 핑계가 없었다. 그래서 큰 저항 없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수영을 시작해서 다행이다




난 새벽기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뭔가를 해놓고 회사로 출근하는 것에 대한 이점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벽에 글도 쓰고 운동까지 마친 뒤에 하는 출근은 그 느낌이 남달랐다. 욕심이 많은 나는 항상 글을 쓰면서도 운동부족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헬스장을 몇 달 동안 다녀도 해결되지 않던 그 고민은 아침에 수영을 하기 시작하면서 말끔하게 씻겨 나갔다. 수영하는 것은 운동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재밌어하는 것을 배우러 간다고 생각이 들었다. 운동이 되는 건 오히려 덤이었다.


아침 8시 10분에 수영을 마친 뒤 씻고 회사로 바로 출근하면 약 30분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곤 한다. 하루의 시작을 이렇게 탄탄하게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내가 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미라클모닝,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글쓰기, 영감을 얻기 위한 독서, 건강도 챙기고 기분전환까지 시켜주는 수영까지 아침에 다 해내고 나니 어떤 일이 일어나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매일 출근하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일상이 전보다 더 풍요롭게 느껴졌다. 남들에겐 평범하고 단순한 루틴처럼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그 중심에 있는 나로서는 이만큼 행복한 삶이 어딨을까 싶을 정도로 생활이 탄탄해졌다고 생각한다. 아침을 잘 보낼수록 저녁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현재는 다음 달 수영도 등록해 놓은 상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1분 만에 아침수영 첫 타임은 마감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내가 등록하는 2번째 타임은 그나마 경쟁이 덜 치열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하튼 수영을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달에 내가 와이프를 데리러 문화센터를 가지 않았더라면 수영을 배우긴 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와이프는 한 것도 없는데 와이프한테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난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헬스장에서 오래 운동을 하신 영향이 커서 그런지 운동하면 헬스장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엔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 말고도 수영과 같은 다양한 운동들이 널려 있다. 그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동 중에 기본은 헬스장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혹시 나처럼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하고 더욱 활기차고 행복한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면 수영을 시작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의외로 본인에게 꽤 알맞은 운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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