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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n 05. 2023

주차딱지 끊기는 바람에 커피를 끊게 된 사연

어이없게 끊긴 주차딱지를 통해 깨달은 것


얼마 전부터 아침 일찍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이 끝나면 회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카페에 들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다음 한 손에 들고 기분 좋게 출근을 하는 게 요즘의 낙이라면 낙이었다. 근데 그 카페가 하필 사거리에서 얼마 멀지 않은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차하기가 난감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조금 길을 돌아서 옆 골목 안에 잠시 차를 대고 커피를 받아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영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아침에 커피를 사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수영 첫 강습이 시작되던 주에 아침운동을 하고 나온 상쾌한 기분을 한껏 내려고 한두 잔 사 먹기 시작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어쩌다 보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즐겨먹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알림톡으로 주차딱지가 끊겼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순간, 카페 근처 골목길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일상의 동선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한 나는 도저히 그곳 말고는 딱지를 끊길 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를 몰랐다. 보통 카페 오픈 시간에 맞춰 첫 주문을 하기 때문에 커피를 받는 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기에 대체 어떤 이유로 딱지가 끊긴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알림톡 하단에 차 사진이 찍힌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버튼이 보여서 눌러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생각했던 그 골목이 맞았다. 사진에 찍힌 날은 하필 그날따라 골목에 자리가 없어서 근처 인도에 차를 반틈 올리고 커피를 가지러 간 날이었다. 그 주변에 주차한 차들도 죄다 인도에 차를 반틈 걸쳐놓은 상태로 주차를 했었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운이 없게도 인도를 걸어가던 한 시민이 내 차를 찍어서 신고를 한 것이었다.






처음엔 그 신고를 한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인도를 아예 틀어막은 것도 아니었고, 주변에 다른 차들도 많은데 '왜 하필 내 차를 찍어 올렸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또 주차도 아니고 잠깐 정차를 한 것만으로도 딱지가 끊길 수 있는지는 미처 몰랐기 때문에 황당하기도 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혹시 몰라서 검색을 해봤더니 '인도에 올려진 차를 지나가던 시민이 찍어 올리면 그건 시간에 관계없이 바로 주차딱지가 끊기게 된다'라는 글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벌금을 바로 계좌이체 해버렸다.


난 이 시트콤 같은 해프닝을 아무 생각 없이 넘길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갑자기 '이 상황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주차딱지에 찍혀 있는 주소지를 보고 그곳이 카페를 가던 길목이라는 게 예상이 되자마자 '내가 아침마다 커피를 너무 많이 사 먹나?'라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주차딱지를 끊김으로써 '커피 좀 그만 사 먹으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최근에 아침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항상 사들고 출근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었다. 후각이 둔한 나는 커피 향도 잘 맡지 못해서 웬만큼 진한 아메리카노가 아닌 이상 보리차를 먹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격이 저렴해도 보리차를 돈 주고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영 찝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굳이 매일 사들고 출근했던 건 그놈의 기분?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런 기분이 필요했을까. 난 원래부터 아침에 회사로 가는 출근길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굳이 기분전환을 시켜 줄 만한 뭔가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침에 수영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신선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가 과연 돈을 줘가면서까지 보리차 맛 나는 음료를 사 먹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매일 사 마실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이 간단한 사실을 누군가의 투철한 신고정신으로 인하여 떼인 주차딱지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억울하고 기분 나쁠 법한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우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닌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해석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은 내가 글을 쓸 때마다 자주 하는 말이다. 다만 딱히 무슨 이슈가 잘 일어나지 않는 나의 일상에서 써먹을 만한 일이 요 근래에 별로 없었는데, 간만에 내가 사전에 익혔던 심리적인 처세술을 써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하고 좋았다.


그날 이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지 않게 됐다. 수영이 끝나면 곧장 회사로 간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니 주차딱지가 끊긴 것은 오히려 내게 좋은 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고, 나를 신고해 준 사람이 고맙게까지 느껴졌다. 덕분에 돈도 아끼고, 힘겹게 차를 골목길에 끼워 넣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회사에 미리 도착하여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20분 정도의 시간을 벌어낸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주차딱지가 끊기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언제까지 아침에 커피를 사 마시느라 돈과 시간을 낭비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주차딱지가 끊긴 건 내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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