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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an 08. 2024

생긴 거랑 다르게 여자친구가 끊이질 않네

별 볼 일 없는 내가 연애가 끊기지 않았던 비결


난 책을 읽은 덕분에 득을 정말 많이 본 유형이다. 독서를 한 이후로 생각이 바뀌니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니 행동까지 변하는 바람에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대충 살자'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만큼 대충 살던 내가 작정하고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독서를 시작한 이후로 대학교를 복학하고 나서 공부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주구장창 공부만 한 것도 아니었다. 시간 남으면 간간히 게임도 하고, 학교 마치면 술도 자주 마셨다.


그 와중에 연애도 참 부지런히 했었다. 그런 날 보며 종종 친구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임마 이거는 생긴 거랑 다르게 여자가 끊이질 않네."


난 잘 생기지도 않았고 키가 큰 것도 아니다. 돈이 많지도, 직업이 좋지도, 남다른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시절 내내 공백기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연애를 꾸준히 해왔다. 내 생각에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자꾸 언급해서 이젠 나도 지겹지만) 책을 읽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알바하던 도중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고, 등굣길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고, 친구와 만날 때면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카페에서도 책을 읽었다.


한 손엔 언제나 책 한 권이 있었다.




연애하는 방법 따위를 다루는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간 해왔던 숱한 연애의 비결을 굳이 책으로 꼽는 이유는 책만 읽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나를 특별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 당시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독서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었다. 내게 호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저 '남들과는 다를 거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은 그 환상이 걷어지면 금세 나를 떠나가기 마련이었다.


내가 아무리 책을 읽고 자기계발을 하며 혼자 난리를 피운다 한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 명의 어리숙한 인간이라는 진실은 감춰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런 모습을 감추려 한 적도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책만 읽었을 뿐인데 연애까지 할 수 있었던 행운을 누리는 쾌감보다는, 나의 진짜 모습을 알고 나서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가고 남는 공허감과 상처가 훨씬 더 컸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연애를 거듭 반복할 수 있었던 덕분에 난 조금씩 '괜찮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떠나갈 때면 마음에 구멍이 난 듯 허했지만, 그럴 때마다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으로 메우곤 했다. 이전의 연애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은 잘 기억해 뒀다가, 다음의 연애에서는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갖은 애를 썼다.


물론 연애하는 도중에 문제를 알아차리고 반성하며 관계를 지킬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우치는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보니,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서 '진짜 괜찮은 사람'으로 조금씩 거듭날 수 있었다. 연애기간은 점점 더 늘어났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별 볼 일 없던 내가 독서를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특별한 사람처럼 보일 만한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에 환상을 품고 접근한 사람들이 내 본모습에 실망하고 떠나는 과정을 겪다 보니, 그 안에서 실제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갔다고.


그래서 난 항상 기회가 있을 때마다 책을 읽은 덕분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는 흉내조차 내지 못했을 테니까.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고 글쓰기라는 인생의 과업을 찾아 삶의 질을 극적으로 높여준 데 일등공신인 지금의 아내조차 독서모임에서 만난 걸 보면, 책은 내 인생을 구했다고 할 만하다.




연애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연애의 기술 따위를 목적으로 하는 독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독서를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드러내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으려면, 우선 그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건 스스로를 이미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리 관계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근데 그렇지가 않고 자신을 돌아봤을 때 뭔가 꽁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이 글에 담고 싶었다.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이 독서만 있는 게 아니지만, '충분히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게끔 자신의 빈틈을 메우는 데에는 책만 한 것도 없다고 본다.


가만히 앉아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얼토당토 안 한 기적을 바라지만 않는다면, 결국엔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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