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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an 05. 2024

제대 후 책벌레로 복학했더니

나도 하면 할 수 있구나


군생활 도중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다가 '성장'의 맛을 몇 번 경험하고 난 뒤로는 제대할 때까지 책에 거의 파묻혀 살다시피 했다. 책을 가득 실은 트럭인 '움직이는 도서관'이 일주일에 한 번씩 초소를 방문하면 최소 7,8권 이상은 대출했고 웬만하면 다 읽었다.


인생에 책이 없던 내가 독서 욕구가 폭발적으로 차오르던 시기였다. 내 자리엔 언제나 책이 쌓여 있었고, 운동과 독서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혼자 구석에서 책만 읽느라 선후임들과 정 쌓을 일이 없었던 게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미친듯이 책만 읽어 댄 보람은 분명 있었다. 전역하고 나서 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난 완전히 변했어!'라고는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제대 후 일어난 일들을 보면 변했다고 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달리 극적으로 변한 건 학업 쪽이었다.




난 일찌감치 공부를 내려놓은 케이스였다. 책이 인생에 들어오기 전까지 공부라고는 시험기간 하루 이틀 전에 양심상 했던 벼락치기가 전부였다. 공부할 시간에 차라리 게임을 했다.


그런 화려한(?) 업적을 자랑하는 나였기에 제대 후 다니던 대학교로 복학했을 때도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한 손엔 언제나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집에서 대학교까지는 지하철로 3,40분 거리였는데 이동하는 내내 책을 읽었었다.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책을 꺼내 읽었다.


가방에 꼭 책 한 권씩은 넣어 다녔다.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게끔.




책벌레가 되어 복학하니 확실히 변했다고 체감되는 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겸손해졌다는 것이다. 원래 난 윗사람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특히 강의실에서 밀린 과제를 한답시고 자리만 차지하고서는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 때우는 선배들은 대놓고 무시할 정도였다.


하지만 복학하고 난 후로는 이유를 불문하고 윗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지나가면 고개를 자연스럽게 숙이게 되었다. 그전엔 인사를 함에 마땅한 '나름의 이유'가 필요했지만, 더 이상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두 번째는 교수님들의 말뜻이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대학교를 처음 다닐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교수님들의 태도였다. 내가 겪었던 초중고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뭔가 떠먹여 주고 챙겨주는 느낌이었다면,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들은 막 던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우리 보고 알아서 공부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게 맞지만, 비싼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의를 대충 하는 듯한 교수님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1시간의 수업시간 동안 겨우 10분 정도 강의하고 자습을 시킨다거나,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과제를 던져주고 나가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책벌레가 되어 복학하고 나서는 그 모든 것들이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교수님들은 여전했지만, 불만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편하고 좋았다. 교수님들이 강의를 대충 하든 말든 '우리 보고 스스로 깨우치라고 유도를 하는 거겠지'라는 쪽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자유롭지만 막막하기도 한 수업 방식에 막연함을 토로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여전했다. 그들의 입장도 공감은 갔다. 나 또한 대학교를 입학했던 새내기 시절 땐 생각이 비슷했으니까.


그럼에도 복학한 뒤로는 대학교가 고등학교와는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는 정해진 틀을 내어주고 정해진 정답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었다면, 대학교는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 가는 곳이었다. 달리 말해 정답이 없는 곳이었다. 




난 정해진 틀에 퍼즐을 끼워 맞춰가는 것보다는 알아서 답을 찾아가는 애매모호한 방식이 더 맞았다. 교수님이 과제를 내어주면 나만의 생각과 그 생각을 받쳐주는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물론 개인적인 뜻을 교수님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에게 납득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런 과정들을 즐겼다. 점수를 받기 위해 과제를 제출한다기보다는 남들에게 내 뜻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설득하겠다는 마음으로 과제를 만들었다.


과제를 임하는 생각과 태도를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뭘 해야 할지가 눈에 보였고, 그만큼 전에 없던 의지가 솟아났다.


생전 공부의 'ㄱ'자도 관심이 없던 내가 과제를 한답시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주말이면 혼자서 빈 강의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공부했다.


온종일 틀어박혀 있다가 집에 갈 때가 돼서 밖을 나갈 때면 항상 캄캄한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그때 그 순간들은 지금도 선명히 눈에 아른거린다.


단언컨대 공부하는 동안 성적에 대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오직 교수님이 내 준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만 고민하고 애쓰며 한 학기를 보냈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았음에도 성적표를 확인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근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복학 후 처음으로 맞이한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학교 행사가 있는데 일손이 부족해서 그러니, 반나절만 청소를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학기 도중 과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교수님과 친분이 어느 정도 쌓였기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흔쾌히 수락을 했다.


며칠 뒤, 청소를 도와주기로 약속한 날 학교를 찾아가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갔다.


"교수님, 저 왔습니다."


"오 왔어? 너 이번에 점수 좋더라?"


"예?"


"설마 아직 성적표 확인도 안 한 거야?"

교수님은 눈이 커지며 살짝 얼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당시엔 정말 성적을 생각 않고 과제에만 몰두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적표를 확인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리 무뎠나 싶기도 한 게 현재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어쨌거나 교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제야 성적이 궁금해지긴 했다. 난 교수님의 확인도 하지 않았냐는 말에 대답도 않고, 바로 스마트폰으로 학교종합포털시스템 어플을 켰다.


그리고 잠시 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1학년 2학기 성적표에 '평균 A+' 그리고 '4.5점 만점 중에 4.42점'이 하얀 스크린 화면에 찍혀 있었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1등이란 걸 해본 적도 없던 내가 복학하자마자 과탑을 찍게 된 것이다. 전액장학금은 덤이었다.


그 사건은 보잘것없던 내 인생에서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




과연 과탑을 찍은 게 책을 읽은 덕분이었을까.


100% 확신할 순 없어도, 99%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복학하기 전과의 유일한 차이점이기 때문이다. 굳이 좀 더 명확하게 이유를 짚어보자면 독서를 한 덕분에 교수님의 저의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작용을 일으킨 것 같았다.


교수님들이 툭툭 던지는 사소한 말 한마디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니, 교수님들이 뭘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교수님들이 뭘 원하는지를 알게 되니, 내가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있었다.


교수님들이 제시한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나만의 생각과 근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뜻을 합리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을 했었다.


그 전략을 유지한 결과 다음 학기도, 그다음 학기에도 같은 평가를 받아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해 보니 확실히 대학교 때 받은 성적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게 맞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고, 그에 준수하는 훌륭한 결과를 맞닥뜨려본 경험'은 이후의 인생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학교 때 겪었던 그 눈부신 업적은 '나도 하면 할 수 있구나'라는 믿음을 내 잠재의식에 깊숙이 심어주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교수님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정답을 '외부'에서만 찾아 헤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지금의 글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에 의해 내게 잠깐 왔다가 반짝하고 사라진 가능성의 기운이 내 삶에 다시 깃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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