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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an 12. 2024

책을 읽어왔던 지난 날들을 후회하다

그 숱한 방황들은 독서 때문이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오히려 힘들어도 묵묵히 참아가며 지금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독서하는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 때문에 그동안 너무 무모하게 덤벼댄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이 많이 차올랐었다. 몰라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늦어도 열심히만 하면 따라잡을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싶어졌고, 시간이 귀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오히려 그 때문에 한 곳에서 오래도록 버티질 못했다. '이곳은 미래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거나,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단 하루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한쪽으로 생각이 살짝만 기울어도 추진력이 금방 붙어서 이리저리 직장을 옮겨 다니는 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을지언정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을 때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리 무모한 방황을 자초할 수 있었던 건 '난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그럼에도 당장엔 조금 헤매더라도, 서른 살이 될 때쯤이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결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방황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좋게 보면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보면 뭐 하나 진득하게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 하기에도 충분한 이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정작 서른 살이 넘어갈 때쯤 현실을 둘러보니 주변이 엉망이었다. 여전히 직업의 방향은 오리무중이고, 모은 돈은 없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친구마저 떠나갔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잘못된 길을 걷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길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것을 맞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가 이미 틀린 것이었다. 난 모든 일이 엎어지고 절벽 끝에 서고 나서야 내 생각들이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난 과감했지만 참을성이 없었다. 매번 신중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모르고 서툴러도 배우면 다 될 거라 생각했지만, 배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다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엔 분명 안 되는 것도 많았다. 


삶의 가장 안정적인 시기로 접어들 거라고 생각했던 30대 초반에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을 찍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사회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때 그 정도로 무너진 건 결과적으로 참 잘 된 일이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결코 고향을 떠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뜨게 된 건 친구가 건네온 뜻밖의 이직제안 덕분이었다. 원래부터 난 평생 고향을 벗어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지만, 그 당시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기에 모든 걸 내려놓고 '될 대로 돼라, 나도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친구의 제안을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근데 죽으란 법은 없는지, 내가 그때 친구의 제안을 수락한 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되었다. 새로운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글쓰기라는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며, 평생 글 쓰며 살아가는 작가의 삶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는 게 힘든 나머지, 책에 빠져 있던 세월을 저주했던 때도 있었다. 책 때문에 괜히 생각만 많아져서 일이 꼬인 거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방황의 핑계를 책으로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의 만족스러운 삶을 결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요즘 같은 평온과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이리저리 부딪히며 살아왔던 세월 속에서 알아보고 가려내는 마음의 눈이 단련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독서를 통해 습득한 지식은 바로 실현되지 않았다. 마음에서 적당한 숙성의 시간을 거친 후 적재적소에 비로소 발현되곤 했었다. 특히 책에서 읽은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빛을 발휘했다.


때문에 독서는 더 이상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는 활동이 돼버렸다. 내게 있어서 독서를 하지 않겠다는 건, 일정 부분 삶을 포기하겠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이토록 수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책만큼은 놓지 않고 살아온 덕분이다. 독서를 통해 얻은 '쓸거리'가 내 안에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면, 글쓰기의 가치는 결코 알아볼 수는 없었을 거라고 감히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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