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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an 15. 2024

친한 친구에게 재수없다는 말을 들었다

책만 읽었을 뿐인데 혼자가 돼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따분하기만 했던 현자의 명언이 마음에 와닿고, 화장실에 붙어 있는 격언이 눈에 들어왔다. 뻔한 말들이 더 이상 뻔하게 들리지 않았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시간을 두고 사유하다 보면 새삼 색다르게 다가왔다. 세상 모든 것들은 호기심을 갖고 마음으로 곱씹어 볼수록 의미가 한층 깊어졌다. 세간의 진실이 비치는 자연의 섭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갈수록 '보이지 않는 것들'이 궁금했다.


가령 성공한 사람을 볼 때면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그런 사람도 앓고 있는 고민이라든지, 성공하기 전까지 해왔던 숱한 고생의 흔적 같은 것들 말이다.


또 A와 B가 다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면 두 사람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는 인간의 어떤 심리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갈등은 어떤 식으로 해소되는지에 대한 원리 알고 싶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통찰력이라고 했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남몰래 깨우치는 게 많아질수록 통찰력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 느낌은 막 강렬하진 않아도, 흔히 접할 수 없는 신선한 보람을 동반했다.


더 나아가 책을 통해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 가뜩이나 점잖던 성격이 더 차분해기도 했다. 덕분에 안온한 기운은 일상 속에 가득 메워지고, 그런 안정적인 삶 속에서 난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문제는,

나 혼자만 변한다는 것이었다.




독서하는 시간들이 누적될수록 점점 변하는 나완 달리 친구들은 그대로였다. 무리 속에서 나 혼자 변하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 불편한 이질감만 주고받는 상황이 일어났다.


"정년퇴직 하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될 텐데."

라고 던지면,


"좋아하는 일 같은 소리 하네. 그게 말처럼 쉽냐."

라는 식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허례허식이 싫어서 웬만하면 예식장에서 결혼식 안 하려고."

라고 던지면,


"그게 니 생각대로 될 거 같나. 돈은 좀 들더라도 결혼은 예식장에서 하는 게 편하고,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그동안 뿌려놓은 축의금도 걷어야 하니까 그냥 눈 감고 하는 거지."

라는 식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지지 않고,


"그래도 나중에 결혼하게 될 사람과 뜻이 맞으면 최소한으로 결혼식 준비해 보려고."

라고 던지면,


"어리다 어려. 좀 현실적으로 생각해."

라는 식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놈의 현실적인 생각이 대체 뭔지.




친구들은 자신들과 다른 생각, 즉 일반적이지 않은 의견을 맞닥뜨리면 일종의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난 내 의견을 드러내기만 했을 뿐인데, 그들은 그것의 타당성을 판단하지 못해 좀이 쑤시는 사람처럼 굴었다. 정답이 없는 주제를 화두에 올리고서 '맞다', '틀리다'로 저울질하기를 좋아했다.


'다름'을 존중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 '네 생각은 틀렸고 내 생각이 맞다'라며 밀어붙인 적이 없었음에도, 무슨 말만 하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말들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사람인 양 날 취급했다.


그렇게 친구들에게서 날 부정하는 말들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중 유독 비수같이 날아와 가슴 깊이 박혀버린 말이 하나 있었다.


좀 재수 없네.


점점 난 친구들 앞에서 입을 다물게 됐다. 가끔 말을 하더라도 실없는 얘기만 할 뿐, 솔직한 의견을 드러내는 게 두려웠다. 그들이 친한 친구들이든 뭐든 간에 '재수 없다'는 말을 들어가며 떠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도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가 찰수록 친구들은 사소한 것에 잘 삐지곤 했다. 갈등에 불이 붙는 발화점은 점점 낮아지는데 비해, 불만을 드러내는 꼬장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이를테면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다신 보지도 않을 사람처럼 갑자기 단톡방을 나가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니, 언제부턴가 친구들을 떠올릴 때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함께 일어났다.


'내게 바람처럼 다가왔던 인연들이니, 언제고 다시 바람처럼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훌륭한 어른이 돼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관념을 지닌 것에 비해 대부분은 어른 흉내만 낼뿐,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법은 옳게 터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친구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마음 맞는 친구가 있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친구들이 나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느낌이 어떨 거 같냐고 묻는다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친구들은 한때 삶의 낙이었다. 그러나 그들과의 '뒤틀림'을 감지한 후로는 아주 은밀하고도 천천히, 그들과 나 사이의 연결고리를 풀어내고 있다. 동시에 친구라는 관계에 대한 집착도 조금씩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과 연락을 유지하고는 있다. 계모임도 아직 한다. 다만, 예전에 비하면 만나는 횟수가 반의 반의 반토막이 나긴 했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내가 거처를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것, 유부남이 된 것, 그리고 남는 시간 전부를 글쓰기에 할애한다는 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차지한다.


하지만 서로 바쁜 와중에 어렵게 시간 내서 만난 만큼 긍정적이고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나와는 달리, 실없는 농담과 가십거리 그리고 신세한탄 등으로 시간을 소비하려는 친구들과의 괴리감이 가장 주된 이유일 것이다.




책만 읽었을 뿐인데,

어느새 난 재수 없는 인간이 돼버렸다.


내가 뚜렷해졌을 뿐인데,

서서히 난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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