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난 '비주류'가 되어 있었다
혹시 누가 내게 단 한 번의 다툼도 없이 어찌 그리 사람들과 멀어지게 된 거냐고 묻는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다수에 속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여행은 웬만하면 혼자서 떠나는 편이다. 좀 외롭긴 해도 낯선 장소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맘껏 사색하며 유유히 돌아다니는 게 좋다.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건 여행보다는 관광에 가깝게 느껴진다. 연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추는 편이라서 옆에 사람이 있으면 기도 빨리고 금세 피곤해진다.
성수기는 집구석에서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기에 굳이 추가금액을 지불해 가며 차도 막히는데 불편하게 어딘가로 다녀오고 싶진 않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관광지나 축제 같은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어쩌다 한 번씩 운이 좋게 맞물려서 긴 연휴가 찾아오더라도 해외여행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는다. 누구는 그런 시기에 바깥나라로 떠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데, 난 차라리 그 시간에 평소 하던 독서나 글쓰기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맛집도 별로 흥미 없다. 가끔 검색해서 찾아간 식당에 웨이팅 하는 사람들이 서 있다면, 그냥 그 옆집을 찾아 들어가서 배를 채우는 편이다. 배만 고프면 모든 음식이 다 맛있는 내겐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에 차라리 산책을 즐길 테다.
'왕의 남자', '명량', '괴물', '신과 함께'와 같은 천만 영화, 즉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리는 영화보다는 '파리로 가는 길'같은 잔잔한 영화가 더 좋다.
넓은 신축 아파트, 좋은 외제차, 비싼 명품보다는 의미를 느낄 수 있고 평생의 업으로 삼을 만한 '일'과 인생을 보다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영상보단 글을, 소설보단 인문학을, 예능보단 세바시 강연을 더 좋아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난 비주류가 되어 있었다.
최근 들어 친구들 뿐만 아니라 약 30년 간 엮여왔던 인연들과 대부분 멀어졌다. 독서를 하면서부터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말이 많아졌지만, 그 대화를 함께 나눌 만한 사람이 아쉽게도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 중에선 없었다.
가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와 비슷한 주제를 좋아할 것만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을 조금만 둘러보면 그런 자들이 얼마나 적은지 알 수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봐도 그렇고, 내 관심사들의 화제성이나 조회수를 봐도 그렇다.
예전에는 딱히 만날 이유가 없어도 사람들과 약속이 잡히면 그냥 만나거나, 정 할 게 없으면 술이라도 마셨다. 하지만 지금은 주고받을 만한 대화거리가 없으면 굳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지인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보다는 전에 없던 이질감을 더 크게 느낀다. 책은 재독할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반면에, 원래 알고 있던 사람들과 만날 때면 전부터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패턴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사람들과 점점 거리를 두다 보니, 카톡 친구창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다. 현재 연락처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함께함에 있어서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나이가 들수록 친분이 두텁다는 사실과 잘 지내는 것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느낀다. 예전부터 알고 지낸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관심사가 어느 정도는 맞아야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관심사의 매칭도에 따라 그 안에서 노는 무리가 간헐적으로 바뀌는 걸 보면 더욱더 그렇다.
가령 요즘 친구들을 보면 다들 캠핑에 빠져 있던데, 그에 비해 난 캠핑에는 관심이 없다 보니 그들과 어울릴 일이 없다.
자연을 즐기는 건 누구 못지않게 좋아하지만, 자연을 즐기는 데 있어서 커다란 텐트와 화려한 아이템까지는 필요 없다. 차 트렁크에 항상 싣고 다니는 접이식 의자와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족하다.
감성도 좋지만 술은 편하게 먹고 싶다. 바깥공기도 좋지만 잠은 집에서 자고 싶다. 웃고 떠들며 부담 없이 주고받는 농담거리도 좋지만,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깊은 대화가 더 좋다. 마음 터놓고 시원하게 풀어내는 신세한탄도 좋지만, 이왕이면 긍정적인 이야기를 화두에 올리고 싶다.
아쉽게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친구들 중에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점점 그들과 만날 일도 없어지거니와 가끔 만나도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게 된다.
친한 친구들이라도 관심사가 맞지 않으면 좀처럼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서로 거리낌 없는 관계라도 꾸준히 함께하려면 생각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 했다.
확실히 혼자가 되는 건 외로움을 동반하지만, 그렇다고 관심사를 억지로 맞춰가면서까지 사람들과 섞이고 싶진 않았다. 관심도 없는데 억지로 관심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나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주류가 되는 쪽으로 인생의 방향이 기울어져감을 인지한다. 차라리 혼자가 될지언정 사람들과 멀어지는 삶을 더 선호하게 되는 날 인식한다.
사람들과 멀어지는 데에는 물론 아쉬운 점도 많지만, 나를 생각한다면 비주류로 살아가는 게 오히려 더 나은 일이었다. 나답게 살아가는 건 중요하고, 또 그게 행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답게 살 수 있다면 혼자가 되는 것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