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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12. 2024

당신과 붕어빵을 먹으며

그대는 나의 행복이다


여보. 가끔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하루종일 현이를 돌보고 있었던 당신을 도와주기보단 글 쓸 궁리부터 하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소. 짬 나면 글쓰기부터 생각나는 건 거의 뭐 반사작용처럼 일어난다오. 어쩔 수가 없소. 다행히 사리분별이 안 될 만큼이나 글쓰기에 중독된 건 아니라오. 글쓰기 생각이 먼저 난다 뿐이지, 조금만 지나면 금세 당신과 현이가 보고 싶어져서 서둘러 집을 향하게 된다오.


오늘도 그렇게 글쓰기 욕구를 억누름과 동시에 당신과 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집으로 향했다오. 주차하고 공동현관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도중에 현이를 안고 아파트 근처를 산책하고 있다는 당신의 카톡을 봤소. 보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향을 틀어 비상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가서 1층으로 나왔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오. 마치 새우잡이 배를 타러 갔다가 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말이오.


와중에 날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소. 부드러운 바람이 날 어루만지듯 스쳐 지나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하늘색이었으며, 눈에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듯한 공기 속에 파묻힌 듯했소. 아파트 단지 주변을 걸을 일은 분리수거를 할 때나, 혼자 유유히 걷고 싶을 때가 전부였는데 오늘처럼 당신과 우리 현이를 찾느라 돌아다닌 적은 처음이었소. 기분이 참 기묘했다오.


나름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고자 전화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 했소. 하지만 있을 법한 곳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당신이 보이질 않으니 보고 싶은 욕망이 삽시간에 증폭이 되는 바람에 참을 수가 없었소. 그래서 전화를 걸었소.


"여보 어디요?"


"붕어빵 사러 가오."


요 며칠간 아파트 입구에 있는 붕어빵 포차에 붕어빵 사러 갔다가 장사를 하지 않아 수차례 헛걸음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붕어빵을 획득(?)하기 위해 현이와 함께 붕어빵 포차로 진격하고 있는 당신을 상상하니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오.


아파트 입구로 나갈 수 있는 외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눈앞에 아기띠에 갓난아기를 태우고 특유의 씩씩한 걸음걸이로 지나가는 당신이 보였소. 날 못 보고 지나칠까 봐 급히 인사를 하려는데 뒤이어 나를 발견한 당신은 나와 그곳에서 만나게 될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한 손을 들어 올려 날 반겼다오. 그런 당신에게 다가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이런 행복을 마다하면서까지 글을 쓰려했던 내가 정신 나간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소.


다행히 이번엔 붕어빵 포차가 열려 있었소. 기분이 좋았소. 나도 오랜만에 붕어빵을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드디어 붕어빵 사기에 성공하여 소소한 행복감을 여미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니 기쁨이 배로 늘어났다오. 그런데 "여보 슈크림 먹을 거야?"라고 물어보는 당신의 질문이 조금 어이없었소. 당연히 먹을 걸 왜 물어보나 싶었기 때문이오. 하지만 잠시 후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슈크림과 팥 둘 다 먹어 보니 그 질문의 의중을 깨달았소. 슈크림을 6:4 정도로 팥 보다 더 좋아했던 나였는데, 이번에 먹었던 붕어빵은 팥이 압도적으로 맛있었소. 여태 제대로 된 붕어빵을 먹어본 적이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소. 가뜩이나 겉바속촉이란 말을 잘 쓰지 않는 내가 겉바속촉이란 단어를 불현듯 떠올릴 정도로 반죽부터 이미 훌륭했는데, 그 안에 맛있는 팥이 한 입 베어 물면 넘칠 정도로 가득 들어차 있으니 '두 개에 천 원? 비싸네..'라고 생각했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오.


배가 부르면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던데. 붕어빵을 세 개 정도 먹어 치우니 새삼 여보가 두른 아기띠 속에 폭 싸여 앙증맞은 입만 빼꼼히 보이는 현이가 눈에 들어왔다오. 입술이 꼼지락 거리길래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었소. 근데 여보가 현이 머리에 씌운 것을 뒤로 젖히니 눈을 말똥말똥하게 떠 있는 게 아니겠소.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었다오. 아기는 처음 키워보지만 그리 소리 소문 없이 잠들었다가 조용히 깨는 아기는 흔치 않을 것이오. 그런 현이를 만날 수 있어서, 그리고 당신과 함께 이 평화롭고 아늑한 가을의 계절을 잔잔하게 즐길 수 있어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소.


여보.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소.

이번 생에 함께일 수 있어서 영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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