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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09. 2024

새벽기상은 개뿔

초보 아빠의 역경 뚫기

 

내가 새벽 일찍 일어나기로 한 건 나만의 재주를 갈고닦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직장 다니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언제 회사를 갑자기 나가게 될지도 모르고 월급만 꼬박 모은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돈은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언제든지 있다가도 없는 게 바로 돈이었다. 그런 돈에 의지하는 건 그리 좋은 생각 같지가 않았다.


결국 단 하나 믿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재주 많은 회사 밑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보다는, 내가 재주 많은 놈으로 거듭나는 게 가장 훌륭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출근 전에 한두 시간 먼저 일어난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무턱대고 일어나 보기로 했다. 근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운이 좋게도 글쓰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기로 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긴 했다. 그건 바로 훗날 아빠가 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애가 생기게 되면 그 작은 생명에게 온종일 매달려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부모가 된다는 게 다 그런 거라고 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해볼 수 있는 건 뭐라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한들 그 이전에 나라는 존재는 어디 가지 않기 때문이다. 난 '누군가의 무엇'이기 이전에 엄연한 '나'였다. 그런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임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갈고닦고, 또 지킬 필요가 있었다. 하여 육아를 하게 되더라도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들내미가 세상빛을 보기 전에 버릇을 들인 새벽기상은 습관을 넘어 일상의 기본값이 되었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웬만하면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났다. 아무리 늦잠을 자도 아침 6시엔 눈이 떠졌다. 한여름을 제외하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해가 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약간의 밝기라도 집안에 서려 있으면 엄청 늦잠을 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새벽기상은 어느새 삶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막상 부딪혀 봐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었다. 막상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니 새벽기상은 개뿔. 한두 시간도 제대로 못 자는 날의 연속이었다. 특히 조리원에서 24시간 모자동실 하면서 모유수유까지 했던 아내는 하루에 1시간도 제대로 못 잘 때도 있었다.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도 모르고 기저귀 가는 것 하나 서툰 초보아빠가 새벽기상을 준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새벽기상이 안 될 것 같으면 차라리 늦게 자면 어떨까 싶어서 새벽 2시까지 글을 쓰다가 자봤다. 일명 미라클모닝에서 미라클나잇으로의 전환이었다.


미라클나잇은 웬만큼 작동(?)하는 것 같았다. 다만 처음 며칠 동안만 그랬다. 밤늦게 잠들지 않는 건 나한테는 그리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새벽 2시쯤엔 자기로 해놓고 새벽 3,4시까지 자지 않고 버티는 날이 많았다. 미라클모닝은 출근 시간이라는 제한선이 있기 때문에 자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되도록이면 지키기 마련인데 미라클나잇은 왠지 모르게 늘어지기 일쑤였다.


새벽 3시 넘어서 자면 당연히 아침엔 비몽사몽이었다. 그런 좋지 못한 컨디션으로 꼬박 하루를 지내야만 하는 것도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리고 새벽 일찍 글을 쓸 때는 전날 일찍 자고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일어난 게 아까워서라도 글을 열심히 썼는데, 자정을 넘어서도 눈을 말짱히 떠 있다 보니까 마음이 잡히기는커녕 되려 해이해지기만 했다. 글은 쓰지 않고 숏폼을 보거나 폰 게임을 하거나.


결국 자정 넘어 자는 건 가면 갈수록 득보단 실이 많은 것 같다는 판단 하에 다시 전처럼 좀 더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대신 자는 시간은 전보다 더 칼같이 지키되, 일어나는 시간은 조금 더 넉넉하게 새벽 5시 30분쯤으로 조정해 봤다. 그러나 새벽 5시 넘어서 일어나는 건 너무 늦었다.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라 통잠을 자지 못해서 새벽 5시에서 7시 사이에 항상 깼기 때문이다. 새벽 시간을 활용하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보였다. 못해도 새벽 3시에는 일어나는 것. 최소한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눈 떠봤자 채 1시간도 제대로 못 쓰고 아이한테 매달려야 할 터였다.




최근 들어서는 밤 12시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꿔봤다. 일주일 정도 됐는데 아직까진 괜찮은 걸 보니 미라클나잇보다는 좀 더 나은 듯하다. 밤 10시가 아니라 자정에 잠들면 2,3시간은 글 쓰는데 할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건 그나마 멀쩡한 정신으로 새벽 수유하느라 고생한 아내 대신 아이를 정상적(?)으로 돌보다 출근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어쩌다 아이가 7시 넘어서까지 자고 있으면 글도 좀 더 쓸 수 있었고 말이다. 무엇보다 아침에 말짱한 정신이라야 해치울 수 있는 집안일은 다 해치우고 출근할 수 있었다. 혼자서 종일 힘들게 아이를 보는 아내가 최대한 해야 되는 일이 없게끔.


지금 이대로가 현재 내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적의 루틴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웬만하면 지금 이 상태로 유지했음 좋겠다만 그러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고 될 때까지 조정을 해 나갈 참이다.


다행인 것은 아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새벽기상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만약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땐 새벽에 좀 일찍 일어나 봐야지'라고 생각했다면 그동안 겪었던 숱한 시행착오를 이제야 맞닥뜨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혼자서도 그 시련들을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육아 하나도 옳게 쳐내지 못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그런 것까지 감당해야 했다면, 아마 난 아무것도 못하고 애한테만 온전히 매달려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희생하기 위해 부모가 되지 않았다. 난 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해 배우자와 한 지붕 아래 평생토록 함께 살 것을 약속하고, 또 부모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난 나의 안위를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일단 나부터 먼저 행복해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그 사실만큼은 꼭 잊지 않으려 한다.


내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나를 위해서라도,

고난과 시련 앞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언제나 똑바로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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