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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30. 2024

난 화가 없는 줄 알았는데

육아를 통해 알게 된 나의 또 다른 모습


현이가 태어난 지 벌써 100일 째다. 여전히 내가 아빠라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 단지 집에 오면 조그만 새 생명이 매트 위에서 파닥거리는 것. 그 생명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 밤마다 '오늘은 제발 무사히 잠들기를'이라는 기도를 하는 것 정도가 전과 다를 뿐이다. 그 생명이 나와 아내를 못살게(?) 구는 바람에 일상의 모든 것들이 한층 더 빛나기 시작했다.

 

아내와의 소소한 대화.

읽고 쓰는 것.

조용히 사색하는 것.

유유히 걷는 것.

운동하는 것. 

같은 것들.


100일은 번개처럼 지나갔지만 그간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조리원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우리가 머물렀던 조리원은 보편적인 조리원은 아니었다. 아내가 출산한 산부인과 위층에 있는 조리원 병동에 있는 곳이었다(그걸 '입원연장'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가격이 타 조리원에 비해 매우 저렴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24시간 모자동실이 가능한 게 가장 컸다. 그 산부인과의 원장님은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었다. 그분의 그런 철학은 산부인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모유수유 정보가 적힌 인쇄물들이 여기저기 눈 닿는 곳에 붙어 있었다.


아내는 제왕절개 상처가 조금 아물자마자 바로 모자동실을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 사이에 태어난 아이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고도 좋았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갓난아기는 밤새 울었다. 배고픈 것 같아서 젖을 물리면 옳게 먹지도 않고 금세 잠들기 일쑤였다. 어찌 저찌 겨우 젖을 다 먹이고 나서 눕히면 10분을 채 가지 못해 보채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 젖도 먹였고 잠잘 시간이기도 했고 불도 다 껐는데 대체 뭐 때문에 그리도 서럽게 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땐 그랬다.


아무것도 모르고 갓난아이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나와 아내는 조리원에 있을 때 해가 지는 걸 두려워했다. '오늘은 또 얼마나 잠을 설칠까'하는 생각이 눈앞을 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조리원을 퇴소할 때까지 24시간 모자동실을 해냈다. 어느 순간부터는 유축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하루에 1시간도 제대로 못 자면서 어떡해서든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려고 애를 썼다. 그런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게 힘들었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다는 사실이 날이 갈수록 두껍게 체감됐다.


그 당시 조리원에 머무른 사람들 중에 24시간 모자동실과 모유수유를 하는 사람은 아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난 그때 모유수유를 하는 게 상당히 드문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평소 난 감정기복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성향이 되게 온순하고 짜증 내는 일도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온 사방에 떠들고도 다니고 글 쓸 때도 그렇게 많이 적었다. 근데 아니었다.


현이가 태어난 후로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상당한 수면부족에 시달렸었다. 첫 한 달 동안은 2시간 이상을 내리 잔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아내가 젖을 다 물리고 나면 뒤에 트림이라도 시켜야 했다. 그렇게라도 모유수유하느라 전에 없던 고생을 하는 아내를 도와주고 싶었다. 근데 트림을 시키긴 하는데 꺼어억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먹은 걸 게워낸 적도 별로 없긴 했는데 모유를 먹어서 그런 건가 싶었다(혹은 평생 배탈 한 번 난 적이 없는 내 DNA를 물려받아 장이 튼튼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더랬다).


문제는 기저귀를 갈 때였다. 대낮엔 그나마 괜찮았다. 새벽에 한숨도 못 잔 채로 기저귀를 가는 게 좀 힘들었다. 가뜩이나 초보 아빠라서 기저귀를 벗기고 새로 채우는 것도 서투른데 어두운 조명 아래서 신속히 손을 움직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유하느라 지쳐 쓰러지다시피 잠든 아내가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끔 빨리 기저귀를 갈아서 현이를 재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전혀 알 리가 없는 현이는 얌전해지기는커녕 기저귀만 벗기면 오줌을 갈겼다.


잔뜩 예민해진 상태에서 맞는 오줌은 그토록 온순하던 내 인상을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기저귀 갈고 나도 빨리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기옷과 내 옷을 비롯하여 온 사방에 튄 오줌을 닦아야 하는 막막함은 나로 하여금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그땐 말 그대로 정말 '벙찐 상태'가 된다. 힘이 축 빠지면서 전의를 상실케 만든다.


몇 번 그렇게 오줌을 맞고 나니 새벽에 기저귀를 갈 때가 가장 두려운 순간으로 다가왔다. 대낮에 기저귀를 가는 건, 새벽에 오줌 맞을 일이 없을 정도로 기저귀를 잽싸게 갈 수 있게끔 연습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다행히 그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기저귀를 갈다 보니 다행히 오줌은 거의 맞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현이에게 정이 들고 심적으로 여유도 생긴 덕에 오줌을 맞아도 전처럼 멍청해지진 않았다. 역시 사람은 적응력이.


여하튼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얼마나 신경이 날카로워지는지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제 어디 가서 "전 화가 없습니다." 따위의 소리는 웬만하면 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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