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가로이 공원을 거닐며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내는 안방 침대 위에, 이제 막 100일 된 아들내미는 그 옆에 있는 아기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내는 현이를 재우고 쪽잠이라도 자려했던 거 같았다. 그런데 현이의 눈이 말똥말똥한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현이가 오전부터 내내 낮잠을 자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은 자칫하다간 오늘 밤 현이가 잠을 설쳐서 꽤나 고생 좀 할 수도 있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와 난 잠시 산책이라도 할 겸 밖을 나섰다.
매번 현이를 안고 어디 갈 때마다 힙시트만 썼었는데 아기띠를 두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확실히 힙시트보다 훨씬 편했다. 하중이 분산돼서 그런지 무게감이 덜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기띠를 두르니 힙시트에 비해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에 출근할 땐 좀 쌀쌀하길래 면티 위에 청남방을 걸치고 갔었는데 오후엔 해가 좀 떠 있길래 면티 하나만 입고 나갔다. 나가보니 청남방을 벗은 건 잘한 일이었다. 적당히 가을 날씨가 포근하게 우리 가족을 감쌌다. 볕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살랑였다.
우리가 향한 아파트 밑에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가끔 걷고 싶을 때마다 오는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익숙한 공원이 남달라 보였다. 저 먼 산에서 다가오는 화창한 햇빛은 내가 좋아하는 황금빛 노을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만큼의 빛이 공원을 환하게 비추고 있으니 꼭 천국에라도 온 것만 같았다. 평소 '천국 같다'라는 표현을 거의 쓰질 않았는데 오늘 들린 공원에서는 그 말이 절로 나왔다. 나와 아내 그리고 현이가 함께 온 것처럼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드넓은 잔디밭 위에 반려동물과 뛰어 오는 아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이의 엄마. 단상 위에 단짝 친구와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두 명의 학생.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와 아내 그리고 현이. 아늑한 공기. 청명한 하늘빛. 아무리 봐도 천국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2년 전 그날이 종종 떠오른다. 저녁 7시쯤 야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유모차를 끌면서 서로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던 한 부부의 모습을 포착한 순간, 돈을 포기하고 인생을 구하기로 결심했던 그날이.
오늘 같은 평범한 날에 이만큼의 행복을 만끽하고 지금 같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온전히 그때 그 결심으로 인한 선택이 불러온 결과였다.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받는 대가로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회사에 반납하던 일상을 도로 반납하기로 한 것. 비록 월급은 줄지만 다신 돌아오지 않을 젊음의 세월만큼은 확실히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제 발로 찾아간 것.
그건 독서를 시작한 것과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 다음으로 내 생애 가장 잘한 짓이었다.
p.s
오늘 난 그때 그 유모차를 끌던 부부와 같은 길목에서 같은 모습으로 거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