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삶·일상
몇십 년 전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다. 남자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숙직하던 시절이었다. 숙직이란 평일 근무 시간 이후인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그리고 직원들이 쉬는 휴일에 회사의 연락병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 숙직을 했던 거로 기억된다. 숙직이라야 특별한 게 아니라 누군가 비상 상황이 발생하여 연락하면 그걸 일지에 적어두는 일이 종종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었기에 강제적으로(?) 외박을 하는 날 정도다.
내가 숙직하면서 해프닝이 일어났던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저녁을 일찍 챙겨 먹고 늦게 출근하는 기분으로 숙직실에 갔다.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자는 방이니 숙직자 대부분이 기혼자이지만 홀아비가 사는 방처럼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TV를 틀었다. 일요일 초저녁이니 음악 쇼 프로그램이 돌아갔고, 이내 코메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집에서도 틈만 나면 코를 박고 보았었으니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결국 종료되고, 다시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시간이 흘렀다. 책을 뒤적이다 12시경에 취침하겠다고 마음먹고 침대에 눕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OO 숙직실이죠. OO 직원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아침에 낚시하러 간다고 나갔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어요. 남편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한밤중에 얼굴을 전혀 모르는 여성과 대화를 시작했다. 황당했지만 이내 나도 모르게 특기가 발휘되었다.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그러자 이 여성은 그때까지 남편이 집에 오지 않아 걱정했던 일은 까맣게 잊은 듯 또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얼굴이며 피부 관리에서 친구들까지. 마음속에 응어리져서 쌓아 놓았던 소소한 이야기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물경 두 시간을 그렇게 쉬지 않고. 2시쯤 되었을 때 시간이 꽤 흘러간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민망한 듯 말했다.
“어머,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에게 전화해서 그것도 한밤중에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그래서 나는 그 여성에게 이렇게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남편은 지금까지 어딘가에서 동료들과 대포 잔을 기울이다가 집에 연락하는 걸 깜박했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주무세요.”
공식적인 일도 아니니 일지에는 적지 않았고, 내 마음속에서만 간직된 비밀 이야기다. 이후 그 여성의 남편이자 직장 동료인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숙직할 때 그의 아내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에게 그 사건(?)을 한 번도 직접적으로 발설하지는 않았다. 물론 직장에 다닐 때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안줏거리로 올리지 않았다. 퇴직 후에는 오늘같이 가끔 무용담처럼 이야기했지만 듣는 사람이 그를 알아볼 정도의 일은 만들지 않았다. 이 글의 내용도 전화했던 그 여성은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직원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내 삶의 원동력은 몸에 밴 ‘듣기’와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