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삶·일상
“저희 딸의 혼사에 참석해 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앉으실 좌석은 신부 #21 테이블입니다. 테이블 배치도는 입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함께 다닌 후배가 보낸 카톡 메시지다. 신부의 부모 부부가 둘 다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 청첩장을 받고 진작 가보려고 마음먹었다. 친절하게도 전날 앉을 자리까지 알려주다니.
나처럼 하객으로 참석하는 직장 선배를 우연히 고속터미널역에서 만났다. 함께 무더운 날씨에 초행길인 장소를 찾아 한참 걸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다행히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축의금 접수처는 한산했다. 축의금을 내밀고 테이블이 #21번이라고 하니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21 테이블은 저쪽 창가에 있습니다.”
잠시 후 옛 직장 동료들이 속속 등장했다. 예상보다 많았다. 사람들은 로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12시가 다가오자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3번이야’ ‘#11이야’ 하면서. 내가 앉을 #21번 테이블이 있는 장소와는 다른 곳으로. 그때야 확실히 알았다. 내가 앉을 자리는 식장 안이 아니라 식당 밖에 있다는 사실을. 결혼식에 참석해서 신랑·신부 얼굴이나 결혼식 행사 자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니. 식장 안의 테이블을 배정받은 입사 동기 한 친구는 당연한 듯 들어가자고 했다. 하지만 식장 밖의 테이블에 앉게 된 나는 말했다. “내 자리는 그 안이 아니고 저쪽이야. 너는 들어가.”
그때 낯익은 얼굴이 헐레벌떡 들어오는 게 눈에 띄었다. 그 역시 입사 동기로 직장 지인들의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자주 보는 친구다. 분당에서 차를 몰고 왔는데 근처에서 너무 막혀 이제야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니 분위기 파악을 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빨리 들어가자고 했다. 그래서 좌석 번호를 물어보니 “#21번”이라고 말했다.
“#21번은 행사장 안이 아니고 다른 쪽이야!”
그 역시 순간 당황한 표정이었다. ‘무슨 이런 일이 있어?’라는 뻘쭘함으로.
자리를 찾아가니 거기는 1층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나처럼 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기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적지 않아 보였다. #21번이라고 적힌 자리로 가니 옛 직장 선·후배들의 얼굴이 보였다. 나와 친구도 #21번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우리 앞에는 아직 현직에 있는 후배들이 있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빵은 이미 식탁 위에 놓여 있었고. 이어서 스프, 스테이크, 국수 등이 연이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커피도 한 잔을 마시고 나니 한 시간여가 흘렀다.
친구와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21번 테이블을 나왔다. 지하철역에서 식장까지 걸어오면서 땀 흘리며 곤혹스러웠던 나는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해 보려고 그의 차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는 분당에 사는 옛 직장 선배를 태워서 가겠다고 하면서 ‘지금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했다. 그는 불행히(?) 식장 안에 있었고 아직 식사를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말했다.
“혼주가 나를 크게 배려해줬네. 식장 안에 자리를 배정해줬으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21번에 배정해서 벌써 끝나고 갈 수 있잖아!”
세상일은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순간순간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