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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왜 말이 다르게 들릴까?

감정 필터와 심리 방어기제.

by 아르칸테

왜 말이 다르게 들릴까? –

감정 필터와 심리 방어기제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다르게 듣는다.
“그냥 그랬다더라”는 말에
누군가는 "별일 아니구나"라 받아들이고,
또 누군가는 "나를 무시한 거야?"라고 반응한다.

누군가는
“네가 좀 더 책임감 있게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조심스러운 피드백으로 이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무능하단 소리야?”라고 느낀다.

같은 문장,
같은 말투,
심지어 같은 상황.
그런데도 완전히 다른 감정이 작동한다.

왜일까?
우리는 단어가 아니라
자기 안의 감정 필터로 말의 의미를 듣기 때문이다.


무시당할까 두려운 마음이 대화를 망친다


말이 아니라 상처의 기억을 듣는 사람들

“나를 무시하는 거지?”
“또 나만 혼나는 거네.”
“그걸 꼭 그렇게 말해야 돼?”


이런 말들은 단지 ‘감정 표현’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자리한 불안과 상처의 반응이다.
과거에 반복적으로 경험한 ‘비난’, ‘부정’, ‘소외’가
현재의 말에 덧씌워지며 왜곡을 만든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지만,
감정은 늘 ‘지금 여기’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감정은 기억을 껴안고 있다.
특히 무시당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말이 들려올 때,
그 말을 해석하는 건 ‘현재의 나’가 아니라
‘상처받은 과거의 나’다.

상대는 지금 나를 판단한 게 아니라
단지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나는 그 말을
‘또다시 나를 무너뜨리는 말’로 듣게 된다.

그때부터 대화는 시작이 아니라 전투가 된다.
상대는 무의식 중에 공격자가 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방어태세에 돌입한다.


이 모든 왜곡은
상대가 아니라
‘내 안의 감정 필터’가 만든 일이다.


‘공감받고 싶어’ vs ‘이기고 싶어’

대화는 감정의 충돌이자 자존심의 경합이다

우리는 말할 때
자신의 감정을 ‘공감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 감정 속에는 승부심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더 아파.”
“내가 더 참았어.”
“넌 나를 이해 못 해.”


이 말들은 공감의 요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적 우위를 점하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대화는
결국 공감이 아니라 '정서적 힘겨루기'로 변한다.

한쪽이 “힘들다”고 말하면
다른 쪽도 “나도 힘들었다”고 받는다.
그 말이 상처의 공유로 끝나지 않고,
비교로 이어질 때
대화는 이해가 아니라 ‘경쟁’이 된다.


그러다 보면
“아, 또 저 사람은 자기 말만 하네.”
“내가 약하게 보이면 또 밀릴 거야.”
하는 식의 심리적 견제가 일어난다.


상대에게 진심을 꺼내려다
오히려 방어와 공격이 교차하는 ‘감정의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이긴 쪽도 지고,

진 쪽도 외로워지는
공감의 실패다.

나도 모르게 작동하는 방어기제 5가지


내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반응한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비판 앞에서 움츠러들고,
불편한 말에는 이유를 붙여 넘기고,
때로는 상대를 먼저 밀쳐낸다.

이 반응들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으로 소통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내면의 감정 기계가
‘상대를 오해하고, 판단하고,

왜곡해서 해석한 것’일 때가 많다.


이런 심리적 자동 반응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방어기제가
의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나도 모르게’
말을 틀리게 듣고,
상대를 나쁘게 해석하고,
자기만을 옳게 만들면서,
관계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자, 이제

그 다섯 가지 주요 방어기제를
하나씩 깊게 들여다보자.
당신도 모르게 말과 감정을 뒤틀어놓았던,
그러나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당신 마음속의 반응 장치들이다.


1. 투사 – ‘그건 내 감정이야. 그런데 난 몰라.’

투사란,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덮어씌우는 심리작용이다.
쉽게 말해,
‘내 감정을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감정을 상대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마음속 깊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일 때,
상대가 평범하게 한 말도
“쟤는 날 무시하는 것 같아.”
“은근히 자랑하는 거야.”
라고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는 정말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내 감정을
상대의 문제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대화는 시작도 전에 삐걱거린다.

투사는 종종 이렇게 나타난다:

“저 사람은 나한테 항상 공격적이야.”


“쟤는 날 질투하는 게 분명해.”


“분명히 기분 나쁜 말투였어.”


사실은,
‘내가 이미 불안한 상태였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자기 감정을 직면하는 것보다
타인의 문제로 바꾸는 편이 훨씬 쉽고 빠르다.
그 결과,
내가 불편한 관계는 늘
‘상대가 이상해서’라고 느껴진다.

투사의 무서운 점은
상대를 왜곡할 뿐 아니라,
자신을 계속 방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기 감정을 남에게 투사하는 사람은
절대 자기 감정을 돌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이미 나만의 감정이 아닌

'남의 감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2. 합리화 – ‘내가 이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어.’

합리화는
자신의 감정적 행동이나 말실수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포장하는 심리 작용이다.

“그날은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
“솔직한 게 나쁜 거야?”
“그 사람이 먼저 나한테 상처 줬잖아.”


이 말들에는
분명 논리처럼 들리는 겉포장이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감정을 정리하려는 노력도 없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의지도 없다.

합리화는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정교해진다.
자신의 날카로운 말,
상대를 무시한 태도,
무례한 반응을
‘나도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며 감싸고 넘어간다.


이렇게 되면
자신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 그럴싸한 이유가 있으니까.


합리화는 자기 변화를 막는다.

그리고
관계에서는 ‘항상 내가 옳다’는 구조를 만든다.
상대는 점점 말하지 않게 되고,
대화는 방어와 정당화의 반복이 된다.

그럴 때는 한번 이렇게 자문해보자.

“나는 지금 진짜로 이유를 말하는가,
아니면 핑계를 만들고 있는가?”


3. 회피 – ‘그 말은 안 듣고 싶어. 딴 얘기하자.’

회피는
자기 감정이나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심리 반응이다.

“아니야, 그냥 대충 넘어가자.”
“됐고, 오늘 날씨 좋지 않냐?”
“그 얘기 좀 그만하자.”


이런 말들은 피곤한 일이 반복될 때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특히 불편한 피드백을 받을 때,

실수를 지적받을 때,

관계의 본질적인 문제를 마주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회피한다.


하지만 문제는
회피는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지연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감정은 무시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누적된다.
피로와 오해와 억울함이 쌓이고,
결국 “그땐 왜 아무 말 안 했어?”라는 질문이 돌아올 때,

회피했던 사람은 늘 대답하지 못한다.

회피는 겉보기에 평화롭지만,
내면에선 상처를 덧씌우고 있는 행위다.


4. 전환 – ‘그 얘기 말고, 내 기분이 더 중요해.’

전환은
대화의 주제를 자신에게 유리한 감정

이슈로 바꿔버리는 반응이다.


예를 들어,
상대가 이렇게 말했을 때:
“너 요즘 너무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 같아.”

전환의 반응은 이렇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얼마나 상처받는지 알아?”


핵심은
‘무책임함’이라는 행위에 대한 피드백이었는데,
대화는 갑자기 ‘감정 상한 사람의 위로’로 바뀌어버린다.

그리고 공격자로 몰린 상대는 말을 잃는다.

전환은 종종 연인이나 가족 사이에서 반복된다.

왜냐하면 상대가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자기 잘못에 책임지지 않고,
상대를 감정적으로 압박해 침묵시키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 자주 보인다.

전환은 겉으로 보기엔 연약하고 상처받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강력한 감정 조작 도구다.
그리고 자주 쓰다 보면,
누구도 당신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게 된다.


5. 반격 – ‘내가 들은 건 상처야.

그러니까 바로 쏠게.’

반격은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공격받았다’고 느끼고,
즉시 되받아치는 반응이다.

“그럼 너는 잘했어?”
“네가 그런 말 할 자격 있어?”
“너는 항상 나한테 뭐라 하잖아.”


이런 말들은
내용을 따지기 전에
‘기분의 반격’이 먼저 올라온 것이다.
내면 깊이엔 이런 외침이 있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먼저 내가 때릴 거야!”

반격형 사람은
진심을 잘 못 듣는다.

왜냐하면,
그 진심이 ‘비판처럼 들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반사적으로 반격부터 한다.
하지만 이건 대화가 아니라 방어전이다.
결국 상대는 지치고,
점점 덜 말하게 되고,
관계는 형식만 남는다.


반격은 말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의 거리’를 넓히는 습관이다.


방어기제는 무의식의 문법이다.

그리고 그 문법을 모르고 사는 한,
우리는 계속 똑같은 대화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이 다섯 가지 방어기제는
비난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상처받지 않으려

애써왔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애씀을 멈추고

듣는 법,
받아들이는 법,
멈추는 법을 배울 때다.

방어 대신 이해로,
합리화 대신 성찰로,
투사 대신 직면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화는 열린다.

진짜 대화는,
내 안의 방어기제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듣기 전에 판단하는 습관의 비극!

너의 말이 틀린 게 아니야, 내가 너무 빨랐던 거야

"아, 또 그 말이지."
"결국 나한테 잘못 있다는 얘기잖아."
"이젠 그냥 말 안 하는 게 낫겠다."

이런 말들이 당신 입에서 자주 나온다면,
당신은 아마

‘듣기 전에 판단하는 습관’ 속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종종,
상대의 말을 다 듣기 전에

이미 해석을 하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이미 상처를 받아버린다.

그런데 이상한 건,
상대는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 말은


‘비난’이 아니라
‘설명’이었고,
‘질책’이 아니라
‘도움’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심은 도착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이 도달하기 전에
내 안의 판단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해의 자리’보다

‘판단의 자리’에 먼저 앉는다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판단한다.
그건 본능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건 옳고 저건 틀려”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배워왔다.

판단은 빠르고 간단하고 편리하다.
이해는 느리고 복잡하고 귀찮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판단을 선택한다.

문제는
그 판단이 습관이 되었을 때다.


연인이 조심스레

"요즘 좀 멀어진 느낌이야"라고 말하면,
“또 싸우자는 거야?”로 반응하고,


친구가

"그땐 너가 좀 과했던 것 같아"라고 말하면,

“그럼 너는 뭐 잘했어?”로 되받아친다.


상사가

"이 부분은 이렇게 수정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면,
“날 무시하는 거네?”라고 느껴버린다.


그 말은
‘정보’였는데,
나는 ‘비난’으로 받아들인다.
그 말은
‘관심’이었는데,
나는 ‘간섭’으로 받아들인다.
그 말은
‘정리’였는데,
나는 ‘이별’로 해석해버린다.

결국 우리는
상대의 말이 아니라
내 해석에 반응하며 살아가게 된다.


판단의 습관이 관계를 무너뜨리는 방식

대화는 줄어든다.

“괜히 또 오해받을까 봐” 말을 아낀다.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진다.


침묵은 쌓인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착각 속에서
오해는 풀리지 않고, 감정은 응어리가 된다.


결국, 둘 다 지친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관계는 ‘노력’을 멈춘다.


사람 사이의 오해는
의외로 한두 마디 말에서 시작되지만,
그 말 뒤에 따라오는

‘판단의 습관’이
그 오해를 ‘관계의 단절’로 키운다.


당신이 버려야 할 단 한 가지 착각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들었을 뿐이야.”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내가 민감한 게 아니야.
그냥 걔 말이 기분 나빴어.”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야.
그냥 말이 이상했잖아.”

그러나 이 말들 뒤에는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다.

‘있는 그대로 들었다’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자기 감정,
기억,
상처,
신념이라는 ‘해석의 필터’를 가지고 듣기 때문이다.

말은 공기 중으로 흘러들어오는 게 아니다.
말은 내 안의 심리를 통과하며
‘재구성된 의미’로 들린다.

그러니 우리는
‘있는 그대로’ 들었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말을 왜곡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이 가능해질 때,
대화는 더 이상

‘전투’가 아니라
‘이해의 탐색’이 된다.


그래서, 먼저 들어야 한다.

들어야 한다.
말을 다 끝낼 때까지.
반박하지 말고,
맞고 틀림을 따지기 전에,
감정을 딱 붙잡고
멈춰야 한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다.
내 감정은 먼저 반응하고,
내 자존심은 먼저 방어를 만들며,
내 판단은 늘 정답을 서두른다.

하지만 그걸 멈추는 순간,
당신은 누군가의 말을
처음으로, 제대로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말 속에 숨어 있던
불안,
간절함,
조심스러움,
마음의 떨림 같은 것들이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다.


그때 말은 더 이상 ‘문장’이 아니다.
그건 존재가 내는 신호다.
그 신호를
내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삶으로 듣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대화라는 길 위에 선다.

듣기 전에 판단하는 습관,
그건 ‘틀린 말’을 가려내는 훈련이 아니다.
그건 ‘사람’을 잃지 않는 훈련이다.

판단은 빠르고 편하다.
하지만 듣기는
사람을 남기는 기술이다.

이 책은 그 기술을
당신과 함께 배우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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