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 마음이 어두워질 때, 삶은 다시 말 걸기 시작한다.
우울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작은 상처들이 쌓여,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눌려,
기대와 현실 사이가 틀어질 때
그 틈새로 천천히 스며든다.
‘별일 없는 하루’가
어느새 ‘무의미한 하루’로 바뀌고,
‘혼자가 좋은 시간’이
‘나밖에 없는 감각’이 될 때,
그건 우울이 보내는 신호다.
이 감정은 당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기 위해 온 느린 방문자다.
그 방문자를 마주했을 때,
꼭 기억해야 할 10가지 문장을 당신에게 건넨다.
우울은 지금의 감정을
‘진실 전체’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나는 소중하지 않고, 의미 없고, 사랑받을 수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거대한 거짓을 속삭인다.
그러나 감정은 진실이 아니라 경험일 뿐이다.
‘지금’이라는 조각에 불과한 감정을
‘영원한 나’로 착각하지 마라.
당신은 지금 어두운 방에 있을 뿐이고,
그 방에 잠시 머문다고 해서
당신의 존재 전체가 어둠인 것은 아니다.
우울할 때 우리는
‘쓸모’로 자신을 평가하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해.”
“나는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안 돼.”
“나는 없어도 되는 사람 같아.”
하지만 존재는 성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삶의 자격을 증명하고 있다.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겐 위안이고,
누군가에겐 세상의 한 모서리를 지탱하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기운이 빠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잠만 자고 싶을 때,
우리는 자신이 나약해졌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정신의 복구 과정일 수 있다.
내면은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다.
당신이 멈춘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내면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잠시 쉬자고 몸을 끌어내린 것이다.
이 쉼은 퇴보가 아니라 회복의 준비다.
우울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다.
그러나 그 마음 안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싸움이 벌어진다.
‘살고 싶다’는 마음과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자신도 설명하지 못할 격전이 벌어진다.
그래서 말없이 하루를 버틴다는 건
사실은 매우 용감한 선택이다.
당신은 지금, 보이지 않는 전쟁을
혼자 감당하며 하루를 통과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대단하다.
우울감은 ‘사람들’이 만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비교, 평가, 무관심, 상처…
이 모든 시선들이
자기 존재를 흔들고 무너뜨린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시선은 당신의 내면을 모두 알지 못한다.
당신이 겪은 밤,
당신이 눌러왔던 말,
당신이 참고 살아낸 고통…
그 모든 것을 아는 단 한 명의 존재는
‘당신 자신’이다.
당신의 내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여라.
우울은 끝이 없는 감정처럼 보인다.
영원히 이 감정 안에 갇힐 것 같고,
돌아갈 길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다는 항상 밀물 후엔 썰물이 온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파도는 다시 잔잔해지고,
감정은 반드시 옅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 ‘끝’을 보지 못한다고
지금의 감정이 ‘끝’인 것처럼 여기지 마라.
지금은 그저,
감정의 파도 한가운데 있을 뿐이다.
우울은 침묵을 먹고 자란다.
‘괜찮은 척’, ‘멀쩡한 척’, ‘웃는 척’
그 모든 ‘척’들이 당신을 더 깊은 어둠으로 몰고 간다.
혼자 있는 시간이 회복이 될 때도 있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처가 자라날 수도 있다.
누구라도 좋다.
당신이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에게
“나, 좀 힘들어.”
그 한 마디를 꺼내는 것만으로
우울은 제 자리를 잃기 시작한다.
우울한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씻는 것도, 말하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버겁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질책한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무능했었나.”
하지만 기억하라.
움직이지 못하는 날은 있어도,
존재 자체가 멈춘 날은 없다.
당신은 여전히 숨 쉬고 있고,
당신의 마음은 여전히 살아 있다.
움직임이 없다는 이유로
자기 존재를 무너뜨리지 마라.
우울은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지금 내 삶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원하던 게 이게 맞는가?”
이 질문들이 해석되지 않으면
몸이 멈추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니 우울을 병으로만 보지 말고,
삶의 구조와 욕망을 다시 점검하라는
존재의 알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얼마나 잘 살아냈는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당신은 지금껏 무너지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일어서고,
조금씩 다시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가장 위대한 생존 방식입니다.
하루를 버틴 당신은
한 생의 절망을 통과한 존재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삶을 선택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울감은 감정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지금까지 미뤄온 말들을
조용히 꺼내보라고 말하는 감정입니다.
그러니 그 감정이 왔을 때
당황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보세요:
“너, 다시 왔구나. 이번엔 내가 잘 들어줄게.”
우울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통과해야 할 마음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반드시
그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