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내가 나를 잃고 있을 때, 나에게 묻는 10가지 질문
모든 길을 놓친 날에도, 나라는 존재만은 되찾을 수 있다.
가끔은 이런 날이 온다.
내가 나인지 모르겠는 날.
거울 속 얼굴이 낯설고,
무엇을 좋아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와 대화해도 공허하고,
무엇을 먹어도 허기지고,
하루를 보내도 성취감보다 무감각이 먼저 찾아온다.
"나는 도대체 누구였지?"
"이렇게 살고 싶었던가?"
그 물음이 떠오르는 순간,
당신은 이미 '나를 잃어버린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자기 자신은 다시 부르면 돌아오는 존재다.
지금부터 이 10가지 질문은
그 길을 다시 걸어 나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1. 지금의 나는, 누구의 기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나는 지금
누군가의 눈치를 너무 오래 보며 살고 있지 않은가?
부모의 기대, 연인의 기준, 사회가 말하는 성공…
그 안에 갇혀
‘내가 원했던 삶’을 지워버린 건 아닐까?
살다 보면
자신의 삶을 누군가의 관객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언젠가 스스로를 잃는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한 연출이 사라진 삶은
결국 주인 없는 무대와 같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이름으로 대답할 수 없다면
지금이 바로 되돌아볼 시간이다.
2.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나를 대접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하루 세 끼를 챙겨 먹고,
잠을 충분히 자고,
마음을 쉬게 해 준 적이 언제였는가?
세상은 자기관리를 성취의 수단으로 설명하지만,
진짜 자기관리는
내가 나를 사람으로 대하는 예의다.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
“이 정도면 충분해.”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자신을 너무 오래
‘도구’처럼 사용해온 것이다.
자기 자신을 대접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를 잃는다.
3.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가장 많이 무시하고 있는가?
감정은 ‘표현되지 않을 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파고들어 나를 침묵하게 만든다.
슬픔을 외면하면, 무표정이 되고
분노를 억누르면, 피로가 되고
불안을 억지로 웃으면, 공허함이 된다.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아닌 척’하며 살고 있는가?
그 감정이 바로
내가 나를 놓치게 만든 출발점일 수 있다.
4.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연결되어 있는가?
일상이 견디기만 한 날이 많다면
그건 단순히 ‘지겨움’ 때문이 아니라
욕망과 동기 사이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해야 하니까 하는 습관,
남이 부러워하니까 지키는 위치…
하지만 정작 그 안에
내 진짜 열망은 있는가?
욕망과 일상이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기 삶에서 미끄러진다.
5. 최근의 나에게 “그만하자”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냥 해야 하니까,
남들 다 하니까,
쉬면 불안하니까…
이런 이유로 계속 달리고 있는가?
그럴 때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그만해도 괜찮아.
잠깐 멈춰도, 넌 무너지지 않아.”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라
방향을 회복하기 위한 용기다.
6. 나는 누구 앞에서 ‘진짜 나’로 말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시간
나는 조심스럽고, 맞춰주고, 웃고 있다.
그러다 보면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스스로도 잊게 된다.
내 마음을 왜곡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
실수해도 괜찮은 사람,
묻지 않아도 내 감정을 이해해주는 사람…
그런 존재가 있는가?
그가 없다면,
지금 나는 어디서도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7. 나는 무엇에 실패했고,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자기를 잃는 가장 흔한 이유는
‘실패에 대한 왜곡된 믿음’ 때문이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다.”
“이제는 다 틀렸다.”
“남들은 나보다 낫다.”
이런 말들이 쌓이면
사람은 스스로를 포기한다.
실패는 일의 좌절이지
존재의 무가치함이 아니다.
당신은 실패했을 수는 있지만
사라진 적은 없다.
8. 나는 지금, 나에게 어떤 언어로 말 걸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
“멍청하다”, “못났다”, “왜 이 모양이야”
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건 자기비판이 아니라
자기 학대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언어는
곧 내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이 된다.
이 질문은 묻는다.
“지금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당신의 내면은
당신의 말투로 지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9.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견디고 있는가?
관계에서도, 일상에서도
‘억지로 버티는 나’만 남아 있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존재의 애정’을 잃은 것이다.
사랑이란
감탄하거나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함께 있어주는 일이다.
지금 나는
내 모습과 함께 있어줄 수 있는가?
내가 나를 견디는 관계라면
다른 누구도 나를 사랑해줄 수 없다.
10. 지금 이 질문을 읽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회복되고 싶은가?
마지막 질문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과거의 나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질문을 마주한 지금의 나로서
어떤 방향으로 다시 나아갈 것인지를 묻는다.
‘원래의 나’는
과거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질문 끝에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 당신은 무너진 게 아니라
새롭게 조립 중인 중간 과정에 있을 뿐이다.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미 다시 자신을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마무리:
사람은 한 번쯤
자기 자신과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잊었을 때
우리를 다시 불러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지금 당신은 그 질문을 하고 있고,
그것은 당신이 아직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기를 잃는다는 건
끝이 아니라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