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혼자 이력서를 갱신해 본다. 일터를 자주 바꾸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한번 적응하면 몇 년씩 일하곤 하는데도, 일 년 동안 내가 뭘 했나, 그동안 나는 조금이라도 발전했나 싶어서. 한 줄이라도 채우려고 뭐라도 하기도 하고, 뭐라도 하려고 한 것뿐인데 진짜 뭐가 될 때도 있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해부학에 대한 결핍이 채워지지 않아서 무리해서 월급을 털어 넣어 신청한 워크숍은 안 들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해부학을 알고 나니 제대로 원리를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들어야 할 것만 같은 원서 강독도 듣고. 어떤 결핍을 채우고 나면 또 다른 결핍이 눈에 띈다. 그리고 항상 워크숍을 신청할 때면 왜 통장 사정이 여의치가 않은지… 항상 무리해서 신청했지만 항상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같은 동작도 다르게 볼 줄 알게 되고, 항상 하던 동작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되고, 진짜 교정을 하려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큐를 해야 하는지, 더 이상 어디 기대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할 줄 알게 되고,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고, 함께 조금씩 더 넓어진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런 것들이 채워지면 조금, 진짜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사치를 배우는데 하는 것 같다.
이력서 항목들을 다 채우고 나서 자기소개 글 쓰는 부분을 예전에 썼던 내용 그대로 계속 수정 보완만 해왔었는데, 아예 새로 써보자 하고 빈칸을 새로 채우려고 했다.
한참을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했다. 필라테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일단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랑 운동할 때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레벨에 맞는 운동을 잘 설정하고 반복, 조금 발전, 또 연습, 또 조금 확장. 그렇게 안전하게 잘 성장해 나가는 것. 그래야 그 과정에서 지나친 보상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내 운동 레벨에 비해서 무리한 운동을 수행하면 당연히 그걸 어떻게든 해내려고 내가 살면서 써왔던 올바르지 못한 힘과 잘못된 움직임 패턴을 또 누적하는 일이 될 테니까. 적어도 나랑 운동할 때만큼은 제대로 힘을 쓰면서 안전하고 건강한 패턴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그 경험을 쌓아주고 싶어. 그걸 만들어주는 근육들이 제대로 성장하고, 기능이 회복될 수 있도록. 내 뇌에도 이게 제대로 움직이는 거라고 새롭게 알려주고 싶고.
그렇게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나도 알고, 내 근육들도 알고, 내 뇌도 알아야 반사적인 보상이나 긴장이 적어진다. 그러니까 적절한 강도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고, 그 안에서 써야 하는 힘들을 정확히 쓸 수 있도록 이끌어 내주고 싶다. 단순히 스퀏트든 브릿지든 동작만 하는 게 아니라. 몇 십 번씩 반복해서 단지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브릿지를 예로 든다면 내가 오늘 목적으로 하는 것들, 그건 코어의 안정성이 될 수도 있고, 몸통 앞면과 뒷면의 팽팽한 힘이 될 수도 있고, 다리의 올바른 정렬이 될 수도 있고, 등으로 바닥을 지지하는 힘이 될 수도 있겠지. 한 번에 브릿지에 담을 수 있는 모든 사항들을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건 소화하기도 수행하기도 힘들 수도 있으니까. 같은 동작도 매번 다른 포인트로 경험할 수 있게, 또 다른 동작도 결국은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내 수업은 단순히 고립 운동에서 끝나거나, 몇 세트 반복, 어떤 멋지고 힘든 동작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 연습한 힘들을 가지고 다양한 움직임으로 확장해 보고, 그 안에서 올바르게 쓰이는 힘과 기능적으로 회복되어 각자 자기 역할을 잘해주는 관절들의 쓰임이, 결국은 회원님들의 일상생활로 전이되기를 바란다. 관절들이 제 기능을 잘하고, 근육들이 원래 길이에 있다면 체형과 자세는 당연히 좋은 상태가 될 테니까.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믿고, 너무 많이 긴장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힘과 움직임으로 이 방향으로도, 저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게. 이 자세 밖에 안돼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움직일 수 있게. 느리게도, 빠르게도, 민첩하게도, 침착하게도, 움직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흔들리고 헤맬 때도 있겠지만 이내 균형을 잡을 수 있음을 또 믿고 점점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자기소개를 이렇게 쓸 수는 없으니 옮겨두는 글. 다른 쌤들한테 이렇게 얘기하면 나만 진지충이야. 나만 진심이었고 나만 너무 진지했나 싶어서 현타가 올 때도 있다. 제대로 움직이고 적절한 힘을 써내는지를 계속 함께 보고 확인하고 집중하며 움직이는 것보다, 단순히 힘든 동작을 많은 횟수로 반복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가끔은 나도 별생각 없이 그 수업을 듣는 게 맘이 편할 때도 있으니.
생각해 보면 나는 부상만큼이나 보상을 유독, 특히나! 싫어하는 거 같다. 우리 사부님이 얼마 전에 나한테 말해주기를, 보상 안에서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이해한다. 근데 마음까지 도착하는 데는 시간과 경험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내가 살면서 너무 과도한 과제를 받아서 지나치게 힘들고 긴장하고 항상 잘 해내야 한다고 바짝 긴장해서 굳어있었다고 생각하나 봐. 그래서 더 힘들고 안되던 움직임도 많다. 힘만 좀 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로봇같이 굳어서 움직인다는 말을 듣고 나와 펑펑 울었던 것처럼. 그렇게 힘들게 내내 기를 쓰고 있지 않아도 됐던 거였구나, 오히려 그래서 못하는 것들도 있었던 거구나. 근데도 왜 힘이 안 빠지지, 그 힘쓰고 있는 나도 힘들어 죽을 거 같은데,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걸까? 괜히 쓰지 않아도 될 힘까지 다 쥐어짜서 힘들게 있었던 나에 대한 안쓰러움과 허탈함, 항상 잘하는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수치심, 그리고 정체 모를 어떤 것에 대한 괜한 원망까지. 그 마음이 아직 녹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나랑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을 절대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나 보다. 아직까지는
이다음에 ‘보상 안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을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까지 어떤 것들을 경험하고, 또 배워나가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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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한참 동안 못쓴 것 같아요. 다시 쓰던 매거진들을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마음에도 코어 근육이 있다면> 매거진은 몸을 움직이면서 배운, 내 마음에 대한 부분들에 대한 글입니다. 필라테스 강사로서 몸을 움직이는 방법은 어느 정도 방향과 방법을 찾았으니, 그 방법을 마음에도 대입해서 움직여보면 내 마음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적절한 힘으로 다양한 방향을 조금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필라테스 강사의 단호박 조언>은 그래서 몸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에요. 간단한 동작들과 운동도 함께 있어서 좀 더 실용적인 글입니다. 가능하면 마음 글과 연계해서 읽으실 수 있도록 글을 쓸 예정이니까요, 마음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하는 운동 글도 봐주세요. 또 운동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연계된 마음 글도 읽어보시면 움직임에도 도움이 되실 거예요. 운동 글에는 실제 회원님들이 많이 질문한 부분들도 있으니, 독자분들 중에서도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물어봐주세요. 이런 기본적인 걸 물어봐도 될까? 하는 것들도 얼마든지 물어봐주세요! 저는 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하고 넘어가버린, 중요한 것들인 경우가 많거든요!
설명해드리는 강사로만 등장(?)한 것 같은데 새삼스럽게 제 소개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완성하면 그것도 용기를 내서 한번 공유해보겠습니다!
길고 어려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글을 읽고 직접 레슨을 받고 싶다며 연락을 해주시는 분들도 거리상 여의치 않을 때가 많지만, 제 글을 읽고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것 자체가 큰 영광입니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분들이 있구나,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응원과 지지를 받는 기분이 듭니다. 직접 레슨해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움직임과 운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얹어드릴 수 있도록 다시 글을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