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왜 이렇게 생긴 거야?
지금 내 모습 중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유독 많이 거슬리고 싫을 때가 있습니다. 키나 몸무게, 올바르지 못한 체형, 어깨 라인의 모양, 다리의 생김새, 얼굴의 크기 등등. 미적 기준도 세분화, 전문화되어서 따지고 보면 바꾸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요.
어떤 시절에는 그마저도 그냥 썩 괜찮았는데, 또 어떤 시점에는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되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다른 모습을, 내가 가지지 못하고 있는 그것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고, 쫓기듯이 어떤 것을 따라서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어느 순간 다시 내 모습으로 돌아올 때도 많습니다. 다이어트나 몸무게가 꼭 그렇죠? 살찐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강박적으로 억지로 살을 빼면, 꼭 그건 얼마 가지 못하더라고요. 맞지 않던 옷이 맞고, 옷태가 달라져서 기분이 좋기도 했으니 더 나은 모습이 된 것 같은데, 성장하고 발전한 것이 아니라 도망쳤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필라테스 강사로 몸과 체형을 변화시켜 나가는 일을 하면서 제 몸을 통해서도,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서도 배운 점이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되고 싶을 때,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체형도, 체중도 진짜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내 어깨는 언제 이렇게 까지 굽어졌을까, 목은 또 왜 이렇게 앞으로 굽어있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부분들이 싫어서 마주하고 싶지도 않고 어찌할 줄 몰라서 세차게 다른 곳으로 도망치면, 끝내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수용, 받아들인다는 것. 그 단어는 알겠는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때도 많았습니다.
"내 어깨가 이렇게 구부러졌다는 거 이제 똑바로 볼게, 알겠어, 더 이상 왜 이렇게 생겼냐고 탓하지 않을게, 그러면 받아들여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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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나에게 계속 찾아오는 숙제와 반복해서 찾아오는 힘든 감정들은, 생각해 보면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그 숙제를 보지 않으려고 다른 방향으로 최대한 도망을 치거나,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아 모르는 척하고 미뤄두곤 했습니다. 그 숙제는 꼭 제가 외면한 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저를 다시 찾아오곤 했어요. 제 인생을 완전히 깔아뭉갤 정도로 큰 숙제가 되어 돌아온 그 눈덩이에 그만 잠식되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지금 있는 숙제들도, 아직 내어주지 않은 숙제들도 미리 찾아서 지금 다 해결해 놓아야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처럼 항상 불안하게 종종거리곤 했습니다. 밀린 숙제가 있는데, 그 숙제가 뭔지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항상 뭔가 해결해놓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분명 얼마 안 있어 큰일이 날 것 같은데, 벌을 받을 것 같은데 하면서요.
그렇게 마음 안에 숨겨져 있는 나의 문제들을 다 끄집어내서 해결해야 한다며 상담도 다니고, 요가와 명상을 배우면서 가만히 있는 마음을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것 같을 때도 있었고,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보다 깊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상은 안 돼. 이 정도라도 지낼 수 있도록 잘 덮어놓았는데 이 이상 꺼내보면 나는 감당하지 못할 거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곪아있는 상처를 겨우 잘 덮어놓았는데, 그 엄두도 안나는 상처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막막함과 공포. 그때 요가 선생님은 저의 질문에 '그렇게 두려워하는 내 감정도 잘 느껴주라.'는 대답을 해주셨어요. 내가 지금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구나, 들여다보기 너무 무서워하는 그 마음까지도 수용해 주라고. 그땐 그 말이 참 막연하고, 무책임하게 까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더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딱 덮어두지도 못했던 어쩔 줄 모르는 시간이 어찌어찌 지나고, 지금의 저는 그 대답에 덧붙여서 이런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두려움을 또 외면하지 않고, 그러지 말라고도 하지 않고, 이겨내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옳지 않다고 비겁하다고 비난하지도 않고, 그냥 충분히 같이 있어주면 그 감정이 흘러간다고요. 사랑하는 친구가 장대비를 맞고 있으면, 왜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어, 비를 맞지 않는 이쪽으로 어서 피해, 왜 바보처럼 가만히 비를 맞고 있는 거야라고 비난하지도 탓하지도 당장 어떻게 바뀌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같이 비를 맞아주는 거예요. 내가 내 마음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된 것처럼. 그렇게 함께 비를 맞다 보면 그 힘든 감정들을 함께 해주다 보면 어느새 그 감정들이 녹아내리고 흘러갑니다. 파도가 거세졌다가, 어느새 잠잠해지는 것처럼.
그 힘든 감정을 느끼기 힘들어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동원하죠. 모르는 척 회피하기도 하고, 아냐 괜찮아 난 이겨낼 수 있어 부정하기도 하고, 혹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며 공식화하기도 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습관인데요. 상담하는 선생님께서 그게 '지식화'라는 방어기제라고 설명해 주셨어요. 감정을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수학적으로 분석해서 이건 이렇게 하면 해결, 저건 저렇게 하면 해결 이런 식으로 공식화하려고 한다고요. 혹은 그런 비슷한 분야의 물리학이나 우주 과학 같은 것에 과몰입하면서 제 감정에서 도망쳐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그렇게 피해버리면 아마 다른 형태로 나를 다시 찾아오게 될 거예요. 같이 비를 맞아주기는 힘들고 춥고 괴롭습니다. 피하고 싶고,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한껏 함께 해주려고 했습니다. "너무 무서워! 보기 싫어! 도망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에 반박하지 않고, 느껴지는 감정들을 충분히 들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구나.' 하는 것으로 시작해 봤어요. 그리고 따뜻한 친구의 눈길로 그 말을 듣는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혼자 상상하고,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없다면 내가 나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보기 싫은 것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구나. 힘들었겠다. 고생했겠다. 그리고 참 기특하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뱉어본 예쁜 위로의 말들이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감정이 '온전히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나는 이제 갈게.'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아니면 '나는 이제 할 일을 다 했으니 갈게' 였을까요.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을 내가 다 배운 것 같아서 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치 원한을 가진 영혼이 성불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아니면 그 감정을 품에 안고 시간을 보낸 내가, 어떤 형태로든 성장하게 되어서 그 감정을 졸업시킬 수 있게 된 것인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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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체형도, 체중도 그렇게 따뜻한 친구의 눈길로 바라봐줍니다. 아 네가 집중해서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어깨가 굽었구나. 점점 앞으로 쏟아지는 머리와 어깨를 붙잡아 주느라고 나의 등근육이 엄청나게 무리를 하고 있었겠구나. '아유, 불편하게 뭉치지 좀 마라.' 하면서 마구 두드릴 때마다 오히려 더 힘들어졌겠구나. 안 그래도 더 이상 쏟아지지 않게 붙잡고 있느라고 힘들게 버티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어쩌면 수용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한 선택들도,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들도,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믿어주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러면 우리는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이 어깨에 어떤 일을 해줄 수 있을까요? 늘어나 긴장하고 있는 근육은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안에 염증이 있을 수도 있고, 뭉치고 떡져있을 테니 컨디션이 조금 좋아질 수 있도록 폼롤러를 해줄게. 올리브영에 갔다가 괄사마사지 세트를 사 왔는데 시간을 내서 마사지를 해줄게. 짧아져있는 어깨 앞면을 스트레칭해줄게. 오늘은 유독 목이 더 뻐근하니 유튜브에 목 스트레칭을 찾아서 그거 하나라도 꼭 해줄게.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어줍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나를 돌봐주는 일에 게을러지지 않도록 작은 약속들을 하나씩 지켜나갑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필요한 것들을, 아끼고 돌보는 마음으로 쌓아갑니다. 나에게 필요한, 적절한 선택을 해주려면 나에 대해서도, 내 몸에 대해서도 조금은 공부를 해주면 더욱 좋은 선택을 해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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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나. 내가 원하지 않는 형태의 나. 똑바로 마주하기가 직면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을 겁니다. 어렵고 두려울 때는 그런 나의 감정을 함께 해주고, 조금씩 바라봐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될 때는 그렇게 바라봐줍니다.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돌봐주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와닿지 않는 것 같아도, 얼음이 녹듯이 굳어버린 내 마음도 근육도 어느 순간 부드러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주고, 나를 돌봐준다면. 사랑하고 미워하면서도 결국은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으로 더 나은 나를 향해서, 좀 더 되고 싶은 나를 향해서 한걸음 내디뎌보는 것. 그때 내 몸도 마음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내일은 이 글과 함께 엮어서 보실 수 있도록, 나의 바른 자세를 찾는 운동에 대한 글을 발행할게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함께 공부하고 움직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