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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연 Sep 01. 2023

마음에서 가장 어려운 동작은, 인간관계

유독 안 되는 동작을 해내려면

고관절 접는 게 너무 어려워요


저는 왜 아직도 다리를 쭉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까요?


고관절에는 참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고관절은 골반안에 허벅지 뼈의 머리가 절구관절로 꽂혀있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데요. 아주 어릴 때는 안짱다리의 형태를 하고 있다가, 기어 다니고 서고 걸어 다니는 과정을 통해 이 관절에 스트레스가 가해지고, 정상적인 다리의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렇게 적절한 스트레스는 관절이 적당한 가동범위를 가지면서도 안정성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죠. 그래서 성장기 때 앉아있기만 한다면 관절과 근육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기도 해요. 특히 무용이나 발레를 어릴 때 시작해야 하는 것도, 정상 가동 범위를 많이 벗어나 훨씬 넓은 범위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허벅지 뼈의 머리는 적절한 각도와 공간을 유지하면서 골반 뼈 안에서 움직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고관절이 찝히거나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잘 움직일 수 있죠. 고관절에서 하는 가장 큰 동작은 고관절을 접는 동작인데요, 다리를 쭉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것도 고관절이 기능적으로 잘 접히고, 반대되는 근육인 뒤쪽의 햄스트링과 둔근은 잘 늘어나줘야 이 동작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햄스트링이 타이트한 편이라, 이런 동작들이 쉽지는 않습니다. 어떨 때는 왜 이렇게 안 늘어날까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정상 가동에서 시작해서 어렵지 않게 이 자세를 해내는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운동을 계속하면서 제가 저에게 가진 생각은 죽어도 늘어나지 않는 내 근육에 친절한 마음을 갖자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놓아주지 못하고, 딴딴하게 긴장한 근육들에게 자상함을 보내자,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내 몸에게 다정함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저의 몸으로도 필라테스를 경험해 나가고, 여러 회원님들과 함께 필라테스를 하면서 어렴풋이 깨달은 점이 있는데요, 내 근육들과 체형의 생김새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불안정해서 긴장했거나, 보호하려고 딴딴해졌거나 하는 것처럼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따뜻하게 잘 읽어주고, 그 부분을 계속 관찰하고 돌 봐주다 보면 답을 찾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고관절 접기는 뭘까?


마음에도 유독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렵지 않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유독 너무 어렵고 버거운 것들.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 많이 듣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게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로 소화되지 않고,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을 저에게 억지로 욱여넣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물론 진짜 타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잘 들어주는 성격이라서 그랬는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고 이입하는 데다가 감수성이 과하게 발달되어 그런 것 같다고, 이유를 혼자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게 버거워서 사람을 자주 만나지도 않았고, 똑같이 내 감정 표현이나,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요. 내가 듣기 버거웠던 것들이니까 타인에게 똑같이 하기가 너무 싫었던 거겠지요. 누군가 부담스러워할 만한 이야기를, 소화하지 못할 이야기를 뱉는 사람이 절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제가 처음부터 티저라는 동작이 잘 안 된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고관절이 기능적으로 잘 접히지도 않고, 후면 근육들이 적절히 늘어나주지도 않는 것 때문이죠. 티저라는 몸의 동작을 마음의 동작으로 비유하면 뭐가 될까 생각해 봤는데 인간관계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통의 중심을 반으로 접는 동작이고, 거꾸로 하면 사람 인자가 되는 것도 왠지 그렇죠.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와 잘 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튼튼해진 마음으로 혼자 살 수는 없는 세상을 여러 관계들을 맺으며 나아가야 하니까요.


필라테스 티저 (원래는 팔과 다리를 평행으로 하는 자세인데, 다리를 붙잡고 버텼어요;)


또 고관절이 기능적으로 잘 접히지 않는 것과 햄스트링이 도무지 안 늘어나는 것은, 타인이 표현하는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내가 표현해야 하는 것들을 잘 표현하지도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것도, 그리고 부정적인 것도요. 내가 표현하는 만큼 받아들일 수도 있을 거고, 다른 사람이 표현한 것들을 건강히 소화한 것이라면 나도 그만큼 표현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고 표현을 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것들이 쌓이고, 계속해서 소화가 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것처럼 버겁습니다. 유연성이 허락하지 않는데 억지로 고관절을 접으려고 하는 것처럼 억지스럽고 힘든 동작이 되겠죠.


움직이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조금씩 늘려가야겠죠. 접는 것도 조금씩, 늘리는 것도 조금씩. 표현해 보는 것도 조금씩, 표현받아보는 것도 조금씩. 내가 어려워하던 말과 행동, 나아가서는 도대체 왜 저럴까 했던 어떤 사람들의 태도, 더 심하게는 절대 저렇게 하지는 말아야지 하고 큰 저항으로 막고 있던 어떤 것들도.



마음에서 안 되는 동작을 해보려면


내가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동작에 도전해 보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어요. 그런 동작일수록 오히려 내 몸에 정말 필요한 동작이었던 경우도 많고, 또 그럴수록 나에게는 더 힘들고 어려운 동작이기도 하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적당한 스트레스는 분명 내 몸을 한걸음 더 성장하고, 확장하게 해 줍니다. 근데 그 적당한 이라는 것이 참 사람마다 다르고, 얼마 나가 적당한 건지 스스로 측정하기도 어렵죠. 나를 존중해주려고 하면 내 안의 내부감시자가 '너 게으름 피우는 거 아니야? 너무 안주하려는 거 아니야?'라고 질책을 보내기도 하고, 열심히 노오오오력하는 거라고 믿으면서 나를 필요 이상으로 갈아 넣고는 탈진할 때가 되어서야 아차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 문장들에 공감을 하신다면 분명 그런 경험이 있는 거겠죠. 그런 경험치들이 있다는 것은 대단하고도 멋진 일입니다. 그 경험들은 내가 적정한 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거니까요. 이 방향으로도 저 방향으로도 경험해 보면서 나에게 맞는 건강한 균형을 찾아가는 거죠.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딱 맞는 균형 잡힌 길만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신 있게 찾은 것이 맞을까요? 다시 흔들리고 무너지더라도 이내 돌아올 수 있는 감각이, 그 과정에서 함께 성장했을 겁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노력했는데도 기대만큼 안되고 못해내는 일이 있더라도 나에게 다정해지는 연습을 해봅시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나는 네 편이 되어줄 테고 지금까지 나를 거쳐간 좋은 가르침과 부족한 기회,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든 거라 믿으면서요. 지금 못해낸 것들은 다른 꽃을 피우는 새싹이 되어줄 거라고 믿어요.



우리는 작은 성공과 작은 잘못들을 하면서 결국 성장해 나갈 거예요:) @서촌그라운드시소/문도멘도



P.S.


아참, 얼마 전에 공부했던 필라테스 책을 다시 읽어보다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문장인데요.


만약 괜찮아 보이는 동작을 발견했는데 당신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현재의 당신의 몸에 맞게 움직임을 수정하여 이점을 취할 방법을 찾아보라. 아니면 당분간 그 동작을 건너뛰고 나중에 다시 시도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이러한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고, 그것은 당신이 자신의 몸을 익히고 존중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브룩 실러 <필라테스 대백과> 중


이렇게 현명한 방법으로, 두려움과 피하고 싶은 어떤 것에 나를 존중하면서 조금씩 도전해 보자고요:)





햄스트링이 짧아 위에 동작들이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운동 글도 함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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