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리를 쭉 펴고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앉아봅시다. 허리 뒤에 공간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나요?
허리 커브의 정체
허리는 원래 자연스러운 전만, 즉 앞굽음이 있는 관절입니다. 그런데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몸통을 굽히는 동작을 많이 하고, 하루종일 굽은 등과 허리를 유지하면서 따라 이 허리 커브에 지나친 뒷굽음이 누적되면 요추 사이사이에 있는 디스크 압박이 높아지면서 뒤로 밀리게 되고, 그 한계에 다르면 터져 나오게 되죠.(허리디스크 추간판탈출증)
그런데 우리의 척추 뼈는 일자로 쌓여있으면 간단할 텐데요. 왜 복잡하게 목은 앞굽음, 흉추는 뒷굽음, 허리는 전만 커브를 가지고 있을까요?
두 발로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에게는 중력의 스트레스가 필연적으로 가해집니다. 이 중력에 대한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배출하면서도, 걷거나 뛰는 충격과 운동에 대응해서 전략적인 움직임을 취하기 위해 이런 커브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예를 들어 나한테 갑자기 뭔가가 날아온다고 하면, 눈이 달려있는 머리를 돌려 그 대상을 봐야겠죠. 그래서 경추는 빠르고 다양한 움직임을 위해 24개의 척추 중에 가장 작은 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은 근육 들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목의 관절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죠. 그런데 이렇게 작은 뼈 6개로 꽤 무거운 머리를 하루종일 들고 있으려면 무게를 효율적으로 분산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만 커브가 있는 형태로 머리의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면서도 빠르고 즉각적인 움직임에 대응하기도 하죠.
그리고 뒷굽음 커브를 가지고 있는 갈비뼈 뒤의 7개의 흉추는 우리의 폐와 심장 등 중요한 장기들을 보호하면서도 어깨, 날개뼈와도 긴밀한 협응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흉추는 생각보다 움직임이 많은 관절임에도 불구하고(굴곡, 신전, 회전, 측굴), 컴퓨터와 책상 앞에 장시간 앉아있는 우리의 굽은 등을 보면 그 움직임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굳어있는 흉추 대신 누군가가 이 움직임을 대신해줘야 할 텐데요, 흉추의 근접한 몸통 관절인 요추로 이 과제가 떠밀려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조별과제라고 10번 넘게 반복 중)
그런데 요추의 생김새를 보면 24개의 척추 중에 가장 크고 둔탁한, 뼈의 생김새로 봐도 움직임의 범위가 크지 못한 관절입니다. 몸통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허리 관절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요?
잘 생각해 보면 복부 주변에는 5개의 요추 외에 아무런 뼈도 없습니다. 우리의 약해진 코어 근육만이 장기와 몸통의 중심부를 앞뒤로 감싸고 있죠. 그래서 코어 근육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겠죠. 코어 근육 역시 우리의 장기들을 보호해 주면서 요추와 협응 하여 우리의 팔다리가 움직이는 것에 대응해서 유연하면서도(코어 근육),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도록(요추) 버티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추의 목표는 우리가 팔다리를 움직이는 동안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흉추에서 못다 한 움직임 과제가 요추로 밀려버리면, 요추는 원래의 목표인 흔들리지 않게 버텨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생김새와는 다르게 많은 부하와 움직임을 감당하게 되면서 무리하게 됩니다.
내 허리 커브는 왜 사라졌을까
사실 허리 커브가 사라진 건 꼭 우리의 굽은 등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갈비뼈의 뒷굽음을 상실해서 역커브가 만들어진 경우에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죠.
엉덩이 근육은 약화되고, 햄스트링은 짧아집니다
갈비뼈가 계속 앞쪽으로 쏟아지게 되면 몸통이 앞으로 넘어지겠죠? 그래서 우리의 몸은 중심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뒤로 밀어버립니다. 원래대로 갈비뼈가 뒤로 가면 좋을 텐데, 이렇게 반대로 보상이 일어나면서 우리의 척추는 최적화된 상태와는 전혀 반대로 틀어지게 되죠.
허리의 전만 커브는 골반과도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데요, 허리의 커브가 뒤로 밀려버리면 골반은 당연히 후방경사 되어버리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반이 후방 경사 형태로 변형되면 허리의 커브도 뒤로 밀려버리죠. 결국 이렇게 엉덩이 힘을 쓸 수 없는 체형이 되어 버립니다.
골반의 전방경사(좌측)/골반의 후방경사(우측)
그렇다고 해서 허리 커브가 사라진 것이 꼭 골반만의 문제는 아닌데요, 햄스트링과 둔근 등 뒷면 근육의 단축으로 내가 고관절을 굽히려고 해도 도저히 늘어나지지가 않는 경우입니다.
팔꿈치 관절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팔꿈치를 접으려고 하는데 뒷면에 있는 근육이 아무리 해도 도저히 늘어나주질 않는다면요, 앞 쪽에 굽히는 힘을 쓰는 근육들은 과하게 많은 힘을 쓰면서 긴장하게 될 겁니다.
문에 달려있는 경첩처럼 접히고 펴지는 움직임(힌지)
비슷하게 나는 고관절을 경첩처럼 접고 싶은데, 뒷면 근육들이 늘어나주지 않는다면 이 동작을 제대로 못하게 되고, 이 과제도 허리로 밀려버리면서 허리를 구부리게 됩니다. 고관절을 정확히 접지 못하고 허리를 구부리는 동작이 이를 대신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허리는 인접한 관절로부터 부담스러운 과제들을 계속 떠안게 되고, 우리 몸은 특정 근육이나 관절에서 과도한 힘을 쓰거나 움직임을 하고 있다면 나머지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의 몸이 작동하는 방식이에요.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효율적인 기관이죠.
그러니 우리가 이 과제를 적절하게 나눠서 조화롭게 할 수 있도록 학습하고 훈련을 해줘야겠죠.
내가 힌지를 하고 싶을 때는 정확히 힌지를 하고, 구부리는 동작을 하고 싶을 때는 구부리고, 이 두 움직임이 협응해야 할 때는 또 적절히 협응 해서 움직일 수 있도록이요. 그래야 특정 관절이나 근육들이 무리하지 않고 건강하고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겠죠.
위와 같은잘못된 패턴이 계속 학습되면 내 몸은 허리 커브가 없어진 상태가 기본값으로 인지 되어버리고, 중립을 잘 만들었다가도 엉덩이 힘만 쓰면 다시 허리 커브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골반을 제대로 잡아놓지 않고, 골반이 후방경사 된 상태에서 엉덩이 운동을 계속할 경우, 엉덩이를 잘 썼다한들 전체적인 체형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특정 적응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후방경사 된 상태에서 엉덩이 힘을 썼다면, 그 상황에서만 엉덩이 근육을 활성화할 수 있게 됩니다. 나중에 중립을 열심히 잡아놓고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엉덩이 힘만 쓰면 골반이 자동으로 후방경사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죠.
결국 우리는 중립 상태에서 적절한 근육들의 힘을 동원해서 모든 동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가장 건강하고 효율적인, 내 몸에 최적화된 전략이죠.
허리커브를 회복하려면
허리의 커브가 사라져서 다른 문제들이 생긴 건지, 다른 문제들로 인해 허리의 커브가 사라진 건지.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허리커브 만의 문제는 아니네요.
어찌 되었든, 지금의 우리가 할 일은 이 허리의 커브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딱 내가 허리커브를 회복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만 깔끔하게 파악하고 해결해 봅시다.
1. 골반의 제자리 찾기 - 골반 뼈에 가까이 붙어 있는, 자세를 잡아주고 움직임을 미세조정해 주는 속근육들을 깨워내기
작고 미세한 움직임입니다!
2. 타이트한 뒷면 근육의 신장 - 둔근과 햄스트링의 타이트. 그냥 늘리는 스트레칭이 아닌, 진짜 가동범위가 늘어나고 결국 근육이 제 길이에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신장성 운동.
중요한 건 많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허리 관절에서 보상을 일으키지 않고! 정확히 고관절을 접을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는 겁니다. 1mm만 움직이더라도요. 다리를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다리 뒷면이 당긴다면 지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그만큼인 거니까요. 그 상태에서 누르는 힘을 유지하고 충분히 호흡하면서 범위를 늘려가시면 돼요!
내 뇌와 근육들에게 '이게 고관절을 정확히 접는 동작과 힘이야.'라고 알려준다 생각하면서 정확한 동작을 집중해서 하시는 게 좋습니다:)
3. 둔근과 고관절의 움직임 회복 및 강화 - 중립에서 둔근의 활성화 패턴 학습. 그리고 이 힘으로 걸어 다녀야겠죠?
척추뼈와 정강이뼈가 평행한 필라테스 스텐스의 스퀏
뒤꿈치를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꾹 누른 상태에서 앞벅지가 아니라 엉덩이 힘으로 일어납니다. 위의 스퀏 상태에서 자세가 무너지지 않게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가거나 옆으로 걷는 것도 걷는 힘을 교정하는데 정말 좋은 동작입니다! 엉덩이 근육들의 힘이 키워지는 건 물론이고요!
다음 글에서는 반대로 허리 커브가 너무 심한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오늘도 끝까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한 몸과 움직임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위에 동작들을 잘 수행했다면 보너스 운동!
위의 필라테스 스텐스의 스퀏 자세로 발을 뗐다 붙였다 하면서 옆으로도, 앞뒤로도 걸어보는 겁니다. 진짜 걷는 힘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이요. 척추를 중립으로 유지하면서 엉덩이와 옆엉덩이(중둔근)의 힘까지 쓰면서 걷는 걸 연습한다고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