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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바다 Aug 16. 2024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개항박물관,  한국근대문학관

인천(仁川)  탐방기(2)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개항박물관,  한국근대문학관 지도

   어릴 적 꿈을 좇아 인천에 수십 년 만에 다시 왔다. 오늘(2024.08.10. 토) 맥아더 장군 동상과  둥근 흰색 지붕이 덮인 조개껍질같이 둥글게 생긴 야외 음악공연장을 직접 보고, 소래포구 여관 옆방 소녀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단체로 사진을 찍은 수학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차이나타운으로 내려왔다. (박카스병을 들고 있었다.)


탐방 코스는 다음과 같다.(글이 길어져, 금회는 아래 차이나타운~한국근대문학관 구간을 소개한다.)     


인천종합터미널> 동인천역> 자유공원(맥아더 장군동상)>차이나타운> 인천개항박물관> 한국근대문학관>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소래포구     

선린문(제3패루)

차이나타운

   자유공원에서 서쪽 산아래 언덕밑에 있는 차이나타운 선린문(제3패루)으로 내려왔다. 중화문 인화문 선린문 한중문등 4개의 패루가 있다. 선린문은 붉은 사각기둥과 홍예 위에 지붕을 얹은 중국식 문이다. 대문은 귀신을 쫓고 상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문의 홍예와 지붕과 기와에 한국과 중국의 전통이 어우러져 있다. 일본의 중화가(차이나타운) 입구 문은 전형적인 종교시설 출입문인 도리와 중국의 색깔이 혼재되어 있다.   

초한지 벽화거리(1)

초한지 벽화거리

   선린문 좌우측 거리에는 초한지의 주요 장면을 벽에 그렸다. 초나라 왕 항우와 그에 대립한 한나라 왕 유방 등의 지략과 모험, 처세의 대표적 이야기 장면들을 110m 길이의 벽에 그렸다.

초한지 벽화거리(2)

   북쪽의 송월장로교회방향에 있는 송월동 동화마을과 연결된다.      

안중근 의사

안중근의사의 마지막 면회 장면

   초한지 벽화 스토리가 시작되는 맞은편 벽에 안중근의사의 마지막 면회 장면 사진붙어 있다. 1910년 3월 9일 면회온 빌렘 신부와 동생 정근 공근의 모습이 보인다. 이 자리에서 동양평화론을 이야기하였다. 언제나 숙연해진다.  

안중근 의사 가묘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안중근 의사

   순절 후 일제의 방해 행위로 유해를 찾지 못해 효창공원에 가묘를 조성하여 모시게 되어 항상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어제는 광복절이었다.  

삼국지 벽화거리

삼국지 벽화거리

   인근의 청. 일 조계지 경계 계단 밑에 삼국지벽화거리가 있다. 후한 말기의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등의 이야기와 역사를 소개한 150m 길이의 대형 벽화다. 중국관영 매체에서 방영한 삼국지에 빠져 전편을 본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카페와 상점

카페와 상점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와 상점들이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아메리카노 크림 생맥주 수제차 주스등 다양한 메뉴가 있다.

상점 / 용트림 계단

 

상점

   용이 꿈틀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중화가의 풍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중화요리점, 중국 대만식 전통과자 전문점, 중국식품 공예품 장식품 판매점, 공갈빵 월병 화덕만두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뉴들이 줄을 섰다. 잔치분위기다.     

중국 음식점

중국 음식점

   중국 연경대반점, 정통중국요리 청점, 공화춘 등 대형 중국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공화춘에서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했다고 한다. 인천역 방향으로 내려가는 좌측에 개항동 행정복지센터도 중국풍으로 센스가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인천역

인천역

   조선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의 시발지로 1900년 5월 준공되었다. 6ㆍ25 전쟁으로 소실되었으나 1960년 9월 지금의 역사를 신축했다. 차이나타운 입구(제1패로) 길 건너편에 인천역이 있다. 명성과 달리 작은 시골역 같이 보였다. 하지만 개항당시를 대표하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밴댕이회거리
밴댕이

밴댕이 회거리

   인천을 대표하는 음식이 밴댕이라고 한다. 옛날 궁궐로 납품을 담당하는 관청이 따로 있었고 보리밥이나 쌈으로 먹었다고 한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어머니에게 보낸 생선중에 밴댕이가 있었다고 한다.    

제물진두 순교성지 / 한중문화관

제물진두 순교성지

   밴댕이회거리에서 항미단길을 지나 천주교 제물진두 순교성지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열 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되었다. 1868년(무진) 박순집(베드로)의 집안인 이모 김 씨, 남편 손 넓적이(베드로), 사위 백치문(사도요한), 이 마리아의 손자등 4명이 처형되었다. 1871년(신미)에는 한국인 최초 세례자 이승훈(베드로)의 후손인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 씨, 증손자 이연구 균주 형제, 그리고 이(손) 명현, 백용석, 김아지 등 6명이 처형되었다.           

제물진두 순교성지

   한국인 첫 성직자 김대건(안드레아) 부제가 입국하여 1년여간 조선교회 사정을 둘러보고, 1845년 4월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이곳 가까운 포구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곳이다.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4명(프랑스 국적 2명, 중국 국적 2명)이 조선 선교를 위해 입국한 곳이다.     

인화문 / 한중문화관 / 인천화교역사관

한중문화관

    1884년 청국조계지였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소개하고, 한국과 중국의 문화예술 교류를 목적으로 2005년 4월에 개관하였다. 중국의 칭다오, 웨이하이시 등 인천과 관련 있는 11개 도시의 문물전시와 다채로운 공연, 기획전시, 중국어 어학 프로그램, 중국 문화특강 등을 운영 중에 있다. 1층에는 상설전시관이, 2층에는 중국 랜드마크 건물 미니어처(축소형 모형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성 왕의지

인천화교역사관

    화교들이 정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고 화교들이 실제 사용했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인화문안에 순교처형지, 한중문화관과, 인천화교역사관, 터, 왕희지 상등이 있다. 일대가 1883년 제물포 개항장이었다.

1883년 제물포 개항장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제물포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 (治外法權)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형성된 곳이다.      

노자 공자 맹자 묵자 장자 부조상

부조상

   인화문 울타리 벽에 노자 공자 맹자 묵자 장자 부조상이 있다. 화교의 역사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청국 조계지 / 일본 조계지

청. 일조계지 경계계단

   1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인천 근현대사를 볼 수 있다. 1883년 일본 조계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가 설정되는 경계지역으로 만국공원(현재 자유공원)으로 연결된다. 중앙에 석조 계단이 있다.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좌측에는 청국, 우측에는 일본의 조계지가 위치하였다.  양쪽 건물 형태가 청과 일로 확연하게 구별된다. 각축장이 된 아픈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이다. 뒤늦은 개국으로 일제의 침략을 받게 된 것이 항상 뼈아프다. 처음 일제도 미국의 흑선(검은색 콜타르를 칠한 목선)이 이즈반도 남단 항구에 나타나 문호 개방을 목적으로 한 무력시위를 벌이자 혼비백산했다.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결국 미국의 강압에 의해 1858년 불평등 미. 일 수호 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조. 미수호통상조약은 1882년 체결되었다. 약 25년 늦은 개방이었다. 그 시간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그 후 일제는 외국에 개방할 때 당했던 수모를 반면교사 삼아, 체득한 그대로 조선에 써먹었다. 조약에 근거하여 요코하마 야마테산 일대에 외국인 거류지와 외국 군대 주둔지가 있었다. 관외, 관내로 엄격히 구분하였다. 외국인 거주지 및 외국 군대 주둔 지역을 관외(관할 외 지역이란 뜻)라고 불렀다. 조계지 개념과 같다.

최초의 태극기 / 초기 우체부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

   1882년 5월 22일 인천 제물포 자유공원 언덕에서 조. 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에서 사용했다.    

인천개항박물관 (구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인천개항박물관 (구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옛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건물이었다. 이 건물에서 개항기 조선에서 생산된 금괴 및 사금의 매입업무를 대행했다. 무역상인들을 대상으로 해관세를 징수하는 업무도 병행했다. 중앙 돔형식의 후기 르네상스 양식 석조 건축물이다.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문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총 4개의 상설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안내데스크, 제1전시실부터 제4전시실이 있다. 2층에는 세미나실이 있다. (출처: 인천중구문화재단)    

최초 우체부 / 미국 언더우드 타자기

1전시실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 문물을 전시하고 있다.     

초창기 철도

2전시실

   1889년 개통된 조선 최초 철도 경인선과 관련된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조계지 거리 풍경

3전시실

   개항기 인천 개항장 일대 각국 조계지 거리 풍경과 관련 자료 및 입체거리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4전시실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한국근대문학관(1)
한국근대문학관(2)

한국근대문학관

하답(夏沓)  / 백석

짝새가 발부리에서 날은 논두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게 구멍을 쑤시다 물큰 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아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한국근대문학관 건물 유리벽면에 백석 시인의 하답시가 붙어 있다. 시골 친구들과 여름 방학 때 논두렁 시냇물가 돌다리에서 뛰어놀던 생각이 나서 웃고 말았다. '물총새가 되었다' 표현은 시골출신이 아니면 해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냇가 깊은 물에 다이빙하고 나와서 머리를 좌우로 심하게 흔들어 물방울을 털어 내는 모습이다.


   1883년 개항 이후 서구의 근대문화가 인천을 통해 집중적으로 들어왔다. 인천 개항장 주변에는 100년 이상된 물건 보관 창고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이런 창고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하였다. 당시의 중요한 문학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근대문학을 체험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상설전과 다양한 기획 전시, 문학 및 인문학 강좌의 개최, 한국근대문학 관련 자료의 수집과 보존, 북콘서트, 출판 사업 등을 하고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홈페이지)     

한국근대 소설

   1890년대 근대계몽기부터 1948년 분단에 이르는 시기에 집필된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최남선, 이광수, 김소월, 한용운, 나도향, 현진건, 염상섭, 정지용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배치도 / 극장

   경부철도노래는 1908년 육당(六堂) 최남선이 발행한 순 한글 창가집이다. 한국 최초의 국한문 혼용서인 유길준의 서유견문, 염상섭의 만세전등 희귀본들을 만날 수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층 전시장은 근대문학에 대해 전시하고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슬픈 사랑을 담은 장한몽에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를 떠올릴 수 있다.

근대 문학가들

<참고 자료>

-. 인천광역시 중구 팸플릿

-. 인천광역시 인천관광공사 팸플릿

-. 인천중구 문화재단 팸플릿


   글이 길어져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소래포구 탐방 이야기는 다음 회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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