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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생 수선화

요코하마 조가시마 섬 수선화

by 애바다

봄이 오고 있다. 오랜만에 전통 5일 시장을 찾았다. 수선화를 사기 위해서다.

그중에서도 하얀 수선화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이유는 그 꽃의 짙은 톡 쏘는 향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일본의 어느 역(요코하마 간나이 역) 근처의 영혼이 자유로운 할머니와 조가시마 섬(요코하마에서 미우라 반도 끝 섬, 남쪽 약 30km)에서 수선화를 건네주었던 어느 일본 할머니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산 수선화는 노랑과 하얀 2색 종류인데, 노랑은 활짝 폈다. 하양은 언제쯤 필까?



요코하마 근무 10년이 넘어갈 무렵, 세월이 흐름에 따라 화려함 찬란함보다 소박함 수수함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시골 출신의 향수병이 짙어지는 1월 중순 어느 봄을 앞둔 늦겨울 날이었다. 어느 국가든 빈부의 격차는 상존하고, 국가도 어찌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걸어서 30분 거리인 회사 출근길에 매일 아침 역 근처 철로 밑 콘크리트 기둥 옆에는 간밤의 추위를 견디어 낸 70세 중반의 노숙 할머니가 햇볕을 쪼며 앉아 있었다. 지나갈 때마다 정갈스럽게 잘 개어 포개 놓은 이불 보따리에 기대어 볼펜으로 잡지를 펼쳐 놓고 뭔가를 적고 있었다. 표정은 무척 밝아 보였다. 시일까? 일기일까? 소설일까? 타고난 자유인 낙천가인가?


며칠 전에는 할머니 구역(?)에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야마시타 공원 진입하기 전 인형 박물관 진입 육교 위에서 어떤 경찰관이 여기저기 분주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있는 공원"에서 야마시타 공원에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할아버지 자유인의 거처를 거쳐야 되는 데,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동사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긴 수염을 기르고 정좌를 하고 단정히 앉아 도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었다. 경찰관이 어느 한 인생의 마무리를 위하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주 일요일 아침 언덕에 있는 야마테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5분 거리 이탈리아 정원을 거쳐, 요코하마 남쪽 미우라 반도와 연결된 조가시마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야생 수선화를 볼 수 있고, 특히 하얀 꽃에서 콧속으로 차가운 물총을 톡 쏘는 듯한 '찡'하는 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로 이동 중에는 띄엄띄엄 산재해 있는 산자락 2층 농가에는 소박하지만 평온한 삶이 있어 보였다. 서측 밭에는 겨울을 견딘 보리가 푸르름을 발산하고 있었다. 동측에는 “미우라 해안”이라는 바다는 햇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전철 종점 미사기구찌 역 옆에는 1월이지만 벌써 벚꽃이 피어올라 오고 있다. 그곳은 해양성 기후라서 한국보다 2개월 정도 빠른 봄이 시작된 것이다. 역 옆 버스정류장에서 조가시마 행 버스를 탄다. 버스에 올라 입구 발판 우측 박스에서 번호표를 뽑아서 가지고 있다가, 내릴 때 운전석 우측 상단 스크린에 나타나는 번호에 따라 해당 금액을 운전사에게 현금(동전 또는 지폐)으로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즉, 거리에 따라 차등 요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교통카드로 신속 정확한 시스템을 이미 구축한 한국과는 비교 대상이 된다.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농가가 나타나는데, 밭고랑이나 심어 놓은 작물을 얼마나 깔끔하게 관리하는지, 빗자루로 쓸어 정리한 것처럼 정갈하여 감탄할 지경이다.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옛것을 우직할 정도로 고집하는 보수성이 현대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고 할까?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위에 누군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다리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회사 아래층 계단으로 내려가는 탕비실에 조명등 센스가 고장이 나자, 항상 불이 들어와 있었다. 한국의 경우 누군가가 즉시 관리실에 전화하여 수리 요청하면 처리되겠지만, 한번 신고 후 마냥 기다리는 것이었다. 부서장은 부서 직원들에게 퇴근 시 소등을 철저히 하기를 부탁하고, 심지어 센스 등을 자기 집에서 가져와서 부착하고, 수리될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


어쨌거나, 긴 연육교를 버스를 타고 섬에 들어가면, 운수 좋은 날은 다리 위에서 서쪽에 멀리 눈 덮인 후지산을 볼 수 있다. 버스정류장 종점에 내리면, 바다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 좌우측에 어물전, 오징어를 굽는 집, 식당 등이 있다. 약 30m 높은 언덕의 조가시마 등대에 올라가면, 한눈에 볼 수 있는 눈부신 바다와 갈매기, 독수리 등이 보인다.


바닷물에 침식된 45도로 누운 단층 등산로에서 “말의 등 동굴”까지 따라가다 보면, 바다를 보며 파도 멍 때리고 있는 낚시꾼들, 멀리 외롭게 떠 있는 고깃배, 화물선이 오고 가는 평화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언제부터 떠밀려와서 그곳에 있었는지 아름드리 통나무와 잔가지들이 바닷물과 조화를 이루며 지내고 있다. 조금 더 이동하면, 무선 조종 모형 비행기가 요란하게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독수리들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들을 노려 보며, 높이 떠서 빙빙 돌며 감시하고 있다.


“말의 등 동굴”에서 경사지로 올라가면, 해안 절벽에 “바다가마우지의 천국” 난공불락 함락 불가 절벽을 볼 수 있다. 그 절벽에 그들이 집을 짓고 그들만의 영구 평화를 꿈꾸고 있다. 오솔길 양쪽에 수선화가 피어 있고 조릿대 숲을 따라 거닐다 보면, 수선화 집단 야생지 중간쯤에 사진 찍기 좋은 바다가마우지 집단 서식지 절벽 뷰 포인터가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진한 수선화 향기에 취하고 야생 백색 수선화를 맘껏 볼 수 있다. 물론 바닷바람에 약간 기울어진 해송과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그 향기에 한번 취하면 강한 중독성이어서 벗어나기가, 그리운 이와의 추억만큼이나, 어렵다.

그리운 이를 잊기 어렵다면, 원의 시인의 함축된 구절의 시비를 찾아보고, 그래도 참을 수 없다면, 연육교 밑의 北原白秋(기타하라 하쿠슈, 1888.01.25~1942.11.02)

시인의 '조가시마노 아메(조가시마 섬의 비) 백추 시비를 보자. 그래도 그립다면, 그 옆 백추 기념관에서 손수건을 사서 해변가에 홀로 앉아 해변에서 석양을 등지고 앉아 눈물을 훔쳐보자.



그곳에서 나와 가까운 식당 겸 꽃집(아래 사진의 '오 식사처')에서 할머니를 만나 보자. 손님을 기다리기보다는 지나가는 길손과 대화를 즐기고, 300엔어치 수선화를 주문하면, 돌담을 돌아 담 밑 보자기 속에서 1,000엔어치를 공짜로 더 퍼 준다. 탈같이 환히 웃는 할머니의 깊은 주름에서 잠시나마 세상사 시름을 잊을 수도 있으리라.


어제 산 수선화 중 하얀 수선화는 아직 꽃대를 세우고 있는 중이다. 봄날 하양 수선화가 꽃을 피우면, 민들레가 홀씨를 피워 올리는 날 벚꽃처럼, 그리운 이의 얼굴들새록새록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 이곳저곳 둘러보기



■ 위치 주소

조가시마 : https://goo.gl/maps/d3tCk4x94hVsAh1J6

동굴(말의 등) : https://goo.gl/maps/NqFk7zzv7LWu9Ubb8

조가시마 백추 시비 :https://goo.gl/maps/Pe4Z8FZLH9zHvcYw7

우미우 전망대 : https://goo.gl/maps/GySDcJ2usmpzJrFz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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