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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로운 Mar 09. 2024

작은 호사는 삶을 견디게 만든다

한국 우롱차 백학제다 만송미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를 떠났다.

서울살이를 고집하지 않았으나, 살아보니 서울이었다.


친척 말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던 서울.

낯선 도시에서 알게 된 인연이 고향 친구들보다 많아졌다.


올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소소한 불운이었다면 불평으로 끝났겠지만,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 암담한 불안이었다.


분명 심각하지만 가망이 없지 않았다.

명료한 절망과 애매한 희망이 뒤섞인,

공사다망한 연초를 보냈다.


가족과 친척들, 고향 광주 친구들,

서울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분에 넘치는 마음을 받았다.

작은 아버지 덕분에 감사히도 어려운 상황이 수월하게 풀렸다.

가까이에도, 멀리에도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 근근한 희망을 품었다.


정신 없는 한 주가 지났다.

오랜만에 집에서 차를 마셨다.


백학제다 만송미인.

가격은 10그램에 4만원. 비싼 만큼 맛있다.


리치, 자두, 블랙커런트, 장미, 작약, 양귀비꽃 향기.

이국적이고 달콤한 과일향과 풍성한 꽃향을 품은 만송미인.

후미의 부드러운 훈연향이 매력적인 만송미인.


그동안 귀한 날 마시려고 만송미인을 아껴뒀다.

아니 근데, 기분 좋으려고 차 마시는데 차를 아껴야 할까?


흔한 날 맛있고 비싼 차를 마시면

그날이 귀한 날이고 다정한 날이다.


이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오늘 마시고 싶은 차는 오늘 마시자.

작은 호사는 팍팍한 삶을 그럭저럭 견디게 해준다.


3월이 시작됐다.

새로운 일과 새로운 상황이 기대된다. 동시에 두렵다.

근데 어쩌겠어? 해야지.

오늘의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 것.

오늘의 일은 오늘 하는 게 소소한 목표.



#사사로운차일기 #일상다반사 #사사로운찻자리 #다정한날 #teatimeforme #오늘의차 #백학제다 #만송미인 #우롱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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