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로운 Jan 10. 2024

화양연화: 찬란한 사랑의 순간, 동방미인 - 1편

사랑의 차(茶): 동방미인(東方美人)


|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최근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봤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책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를 통해 영화 <화양연화>를 알게 되었는데요.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당시의 저에겐 너무 어려운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사귄 경험도, 헤어진 경험도 없는 내가 사랑 영화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젠가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다짐했죠.


|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이해하고서

    <화양연화>를 언젠가 볼 영화 목록에 넣어둔 채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저는 낯선 도시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고, 어느새 익숙해진 도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껏 쉼없이 연애를 해왔습니다. 사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짧은 만남도 있었고, 사랑했기에 상실감이 길었던 오랜 만남도 있었습니다. 저마다 이유는 달랐지만 결국 우리가 될 수 없었던 연유로 끝나버린 사랑들. 한때 사랑스러웠으나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된 관계들.  <화양연화>를 봐야겠단 생각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는 동안, 숱한 만남과 이별을 겪었습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찬란했던 사랑의 순간, <화양연화>   

    작년 연말에 <화양연화>를 처음 봤습니다. 20여년 전 영화인데 촌스러움은 커녕 여전히 세련된 연출을 보면서 명작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맞바람이란 소재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으로 풀어낸 서사에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어요. 이들의 사랑을 단순히 불륜, 치정, 불나방 같은 한 철 사랑으로 볼 수 없는 건 세심하게 깔린 감정선 때문이었는데요. 바람난 배우자에게 느낀 배신감과 실망감,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서로에게 느끼는 연민과 동정심, 결국 시작되고만 격정적인 사랑, 밀회처럼 이어지는 위안, 서로에 대한 이끌림만큼 죄책감을 수반하는 불안정한 관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비애감, 그렇지만 함께였기에 더없이 찬란했던 사랑의 순간. <화양연화>, 만남부터 결별까지 위태롭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 장만옥의 치파오, 여인의 향기 동방미인(東方美人)     

    영화에 대한 감상과 별개로 사실... <화양연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장만옥의 치파오 차림이었습니다. 화려한 치파오를 입은 장만옥. 아름다워요. 너무나도 우아하고 매혹적이고요. 같은 여자지만 반할 수밖에 없었어요.(외모=개연성. 납득 완료.)

고전적인 동양 미녀상 장만옥의 매력이 잘 드러낸 <화양연화>를 보면서 원숙한 여인의 향기를 품은 차(茶), 동방미인(東方美人)이 떠올랐습니다. 화려해서 덧없고, 찬란해서 쓸쓸한 사랑, 그리고 밀회와 밀애에 어울리는 차는 동방미인입니다.




| 별명으로 알아보는 동방미인: 백호오룡, 오색차, 향빈오룡, 팽풍차

    동방미인(東方美人, Oriental Beauty)은 대만을 대표하는 우롱차 중 하나입니다.

동방미인은 소록엽선이란 벌레에 물린 찻잎, 저연만을 사용해서 만듭니다. 소록엽선은 농약을 치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동방미인을 생산하는 다원은 농약을 칠 수 없습니다. (이쯤 되면 강제적인 유기농 재배...) 또한 동방미인은 대만 북부 일부 지역에서 봄, 가을에 잠깐 생산되다보니 생산량 자체가 적습니다. 그래서 귀하고 비쌉니다. 여기에 비새차, 두등장 칭호를 받게 되면 150g 한 통에 수십만원은 우습죠.   


동방미인으로 두등장을 여러 번 받았던 대만 신죽현 서요량다원.
작년 가을 서요량다원 방문 당시 시음 사진. 사진에 없는, 로얄 등급 동방미인을 샀습니다.


    동방미인의 정식 명칭은 백호오룡(白毫烏龍)인데요. 찻잎의 싹에 돋은 하얀 솜털이 동물의 털을 연상시킨다고 '백호오룡'이라 불렸습니다. 그렇지만 '백호오룡'이라는 원래 이름보다는 '동방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동방미인'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이 차를 맛보고 훌륭한 향미에 감탄하면서 '동방의 미인(Oriental Beauty)'이라 칭찬한데서 유래했습니다.


동방미인(백호오룡)의 건엽. 다양한 색상의 건엽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 오색차(五色茶) , 향빈오룡(香檳烏龍),팽풍차(膨風茶) 등의 별명도 갖고 있는데요. 건엽이 흰색, 노란색, 녹색, 갈색, 빨간색 다섯 개의 색상을 띈다고 해서 '오색차'라는 별명이 있고요. 홍차의 샴페인으로 불리는 다즐링 홍차처럼 향기가 워낙 좋아서 '향빈오룡'이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그리고 '팽풍차'라는 별명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19세기 대만의 어떤 차농이 벌레가 갉아먹은 찻잎을 사용하여 만든 우롱차를 만들어서 서양인들에게 팔았는데요. 찻잎의 생김새는 별로인데, 맛과 향이 워낙 뛰어나서 높은 값을 주고 사갔다고 해요. 당시엔 벌레 먹은 찻잎은 품질이 떨어진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이걸 비싼 돈을 주고 사갔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죠. (요즘 벌레 먹은 찻잎은 농약 안 친 유기농이라 더 좋죠?) 차농이 뻥친다, 허풍친다고 해서 팽풍차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해요. 그런데 이듬 해에 차농이 팽풍차로 돈을 잘 버니까 마을사람들도 팽풍차를 따라 만들었죠?(문득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샤인머스캣 열풍. 역시 돈이 되면 한다?)




분량 조절의 실패로 2편은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