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로운 Jan 11. 2024

화양연화: 찬란한 사랑의 순간, 동방미인 - 2편

사랑의 차(茶): 동방미인(東方美人)

1편(https://brunch.co.kr/@tearown/6)에 이어 분량 조절의 실패로 이어지는 2편입니다 :)



|  녹차 보다 먼, 홍차 보다는 가까운 동방미인: 강산화 우롱차  

    우롱차는 산화도가 낮을수록 녹차와 비슷한 맛을, 반대로 산화도가 높을수록 홍차와 비슷한 맛을 냅니다. 산화도가 낮은 약산화 우롱차는 풀, 꽃 등 신선하고 산뜻한 향기를, 산화도가 높은 강산화 우롱차는 과일, 꽃, 꿀, 캐러멜, 구운 견과 등 달콤하고 묵직한 향기를 풍깁니다.


    동방미인은 강산화 우롱차에 속하는데요. 강하게 산화시킨 만큼 화려하고 풍성한 향기를 갖고 있습니다. 동방미인은 농익은 과일향, 풍성한 꽃향, 달콤한 꿀향을 지녔고요. 부드럽고 진한 단맛과 감칠맛은 언뜻 홍차를 연상케 합니다. 그렇지만 홍차에 비해 쓴 맛과 떫은 맛이 적습니다. 차를 다 마신 후에 오는 달콤하고 그윽한 꿀향, 밀향(蜜香)의 여운이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다양한 대만오룡을 비교시음했던 다심헌 티마스터 수업 당시 찍은 사진. 선명한 등황색 수색을 통해 백호오룡(동방미인)이 산화도가 높은 우롱차(강산화 우롱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방미인 - 강산화 우롱차(과향형) /동정오룡 - 부분산화차(숙향형) /계화오룡, 리산오룡, 아리산오룡 - 약산화우롱차(청향형)


| 밀향(蜜香)의 비결: 소록엽선 그리고 호트라이엔올(Hotrienol)

    동방미인은 화려한 꽃향, 무르익은 열대과일향(리치, 망고), 달콤한 꿀향이 있습니다. 특유의 꿀향을 밀향(蜜香)이라고 부르는데요. 산뜻하고 깔끔한 아카시아꿀 보다는 짙고 농밀한 마누카꿀이랑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러한 밀향은 동방미인을 다른 우롱차와 구분 짓는, 독특한 향기입니다.


     이러한 밀향의 비결은 소록엽선이라는 벌레 덕분인데요. 소록엽선은 부드럽고 연한 찻잎의 새싹을 좋아하는데요. 소록엽선이 찻잎의 즙을 빨아먹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는 산화를 촉진시킵니다. 이를 통해 방향성 향기 성분이 풍부하게 생겨납니다.


    소록엽선이 갉아먹은 찻잎은 그렇지 않은 찻잎에 비해 리날룰(Linalool), 제라니올(Geraniol),  벤질알코올(Benzyl alcohol), 페닐에탄올(Phenyl Ethyl Alcohol, 일명 PEA) 등 방향성 향기 성분의 함량이 증가합니다. 리날룰에서 생겨난 호트라이엔올(Hotrienol)이란 성분이 달콤한 밀향을 풍기게 만듭니다. 참고로 호트라이엔올은 트로피컬, 플로럴, 우디 노트 등을 갖고 있는데요. 고-급 동방미인을 마셨을 때 리치, 망고스틴, 구아바 등 열대과일의 화려한 풍미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호트라이엔올 덕분인 거죠.


서요량다원 2022년 동방미인 여름차 6성(Early Second Flush). 강렬한 리치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차를 향기롭게 만드는 고난, 사랑을 아름답게 만드는 역경

    소록엽선은 찻잎을 시들게 만들고 찻잎의 수확량을 줄어들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동방미인만의 아름다운 향기와 달콤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소록엽선이 있었기에 지금의 동방미인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적당한 고난은 차를 향기롭게 만듭니다. 맛도 한층 더 깊어지게 만들고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한 역경을 이겨낸 사랑은 아름답게 무르익을 수 있습니다.


    지난한 연애사를 돌아보면 사랑이 행복의 동의어가 아니란 걸 배웠습니다. 사랑해서 행복한 순간도 있었고, 사랑해서 힘들고 괴로운 순간도 있었죠. 사소한 일에 서운하고, 소소한 일에 부아가 치밀고, 그러다 싸우게 되고, 감정이 격해져서 마음에도 없는 말들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그렇지만 다시 함께 웃는 화해까지.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사랑을 원했는데, 상처 받지 않는 사랑은 불가능하더라고요.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든, 혹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든 말이죠.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다툼을 화해로 마무리하는 경험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늘 똑같은 문제로 다투는 건 문제죠. 그건 화해할 수 없는 차이만을 각인시킬 뿐이니까요.  그렇지만 사랑 싸움은 필요합니다. 상처를 주고 받을지라도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이를 조율하면서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관계가 성숙할 수 있으니까요.


    현명한 사랑 싸움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어요. 현명한 사랑 싸움의 조건은 1) 내가 서운함, 실망, 분노를 느꼈던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한다,  2) 상대방에게 원하는 점을 명확하게 말한다 3)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연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해본다. 이게 말은 쉬운데, 실천이 어렵습니다. 싸우다 보면 감정이 격해져서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기 쉽거든요.



    소록엽선에 물렸던 찻잎이 시들릴지언정, 결국엔 아름다운 향기와 놀라운 풍미를 자아내잖아요. 사랑 싸움도 마찬가지예요. 찻잎에게 스트레스와 역경을 안겨줬던 소록엽선의 존재가 동방미인의 풍미에 깊이를 더해주듯 적당한 다툼과 적절한 화해는 사랑을 단단하고 깊어지게 만듭니다.


 서로 사랑했더라도 언젠가 이별이 찾아올 수도 있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만큼 다양한 이별의 원인이 존재하니까요. 끝내 서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함께 한 순간이 있고, 함께 느낀 감정이 있잖아요. 오랜 연애를 했더라면 함께 성장한 역사가 있을 거고요.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지만, 분명 좋았던 순간은 선명하게 남습니다.


2022년 광교 앨리웨이 스트롤에서 만난 인생의 복선, <화양연화> LP.


    영화 <화양연화>의 주인공, 주모운(양조위)과 소려진(장만옥)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아름다운 사랑의 시절이었잖아요. 서로에게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었던 사랑.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지만, 찬란했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함께 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까요. 어쩌면 돌아갈 수 없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였을지도 모르죠. 오늘은 사랑의 차, 동방미인을 마셨습니다.




| 티 테이스팅 노트(Tea Tasting Note)

- 이름: 동방미인

- 생산지: 대만 신죽, 묘율, 평림, 도원  

- 별명: 백호오룡, 팽풍차, 오색차, 향빈오룡  


- 건엽: 강한 꼬임이 있는 홍갈색, 녹색의 건엽. 흰 솜털이 있는 백호도 조금 섞여 있다.

- 수색: 맑고 선명한 등황색.

- 향: 프루티 플로럴 계열 | 리치, 망고스틴, 오렌지, 장미꽃, 마누카 꿀   

- 맛: 리치, 파파야, 오렌지, 꿀 | 열대과일 리치의 달콤함으로 시작되어 새콤달콤한 파파야, 오렌지의 맛으로 이어지다가 꿀의 묵직한 단맛으로 마무리된다. 회감에서 리치의 회감이 상쾌하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단 맛이 두드러지는 편이나 약간의 산미가 있다. 후미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떫은 맛은 깔끔한 인상을 부여한다.

- 마우스필: 워터리-실키 | 입안에 매끄럽게 감기는 찻물의 느낌이 기분 좋다.

- 바디감: 라이트-미디엄 바디 | 적당히 산뜻한 바디감.




** 제가 동방미인을 마시며 느낀 기록한 주관적인 인상입니다.(서요랑다원 동방미인 TTES 17 2022 여름차 6성급) 같은 차를 마셔도 사람마다 느끼는 차의 맛과 향은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엔 옳고 그름도 없고, 맞고 틀림도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이 느낀 감각에 집중하고 솔직해지세요 :)



작가의 이전글 화양연화: 찬란한 사랑의 순간, 동방미인 - 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