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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un Jul 17. 2023

다음 막으로 한 걸음 이동

오늘도 힘내서 살고 있을 대한민국의 한 명, 당신을 위로하고 응원합니다


직장생활 20년은 시속 110~120km/h로 달렸다.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때론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자주 나를 몰아붙이고 채찍 하며, 그렇게 삶을 보냈다.

그러다 익숙해진 속도로 달리던 길에서 부작용을 느꼈다. 주변 풍경과 변화에 눈을 닫고, 그렇게 계속해 내 세계로 나를 밀어 넣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힘겹게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보는데, 내 삶의 표정은 잔뜩 찡그리고 불안해 보였다.  



수십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퇴사.

여전히 많은 사람이 '왜 퇴사했냐'라고 묻는다. 면접에서도, 레퍼런스 체크에서도, 전 직장 동료 모임에서도.

딱 꼬집어 한두 가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수십 가지 이유를 대라면 그건 가능하다.

20년 인연을 끊어버리는 게 어디 그리 쉬웠을까.

물론 촉매 역할로 퇴사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게 한 사건이 있고, 불씨처럼 내 마음속에 계속해 지르는 무언가 있기는 했지만, 한둘 때문이라 말할 수는 없다.



백수, 은퇴, 드디어 탈출, 조직 부적응,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힘없는 존재?

지난 1년이 내 삶에 무엇이었을지 계속 생각해 보지만, 아직 명확히 해석하지 못해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투자 실패로 수입이 끊기고, 지원서 대부분은 떨어지고, 삶의 속도를 바꾸고, 삶을 재구성하는 등, 일상을 통째로 바꿔야 했고, 많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지난 일은 후회하지 말자. 후회한들 달라질 건 없다. 그것을 대하고 떠올리는 내 자세에 영향을 줄 뿐. 어차피 지난 일이라면,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면, 지금을 받아들이자. 헤쳐나갈 방법을 찾자.


그 속에 얻은 것도 있다.


1. 조용히 나라는 사람,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긴 기간 나와의 대화는 처음이다.

2. 평일 낮에 하지 못했던 여러 활동은 뜨거운 여름 느티나무 그늘 같은 휴식이었다. 미술관과 전시관 방문, 골프연습, 도서관 등등

3. 내게도 보물 1호가 생겼다. 코로나 때 예기치 않게 온 고양이, 매 순간 곁에서 의지가 되어준다.

4. 내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계속해 고민하고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의 삶은 정신적으로 더 충만한 시간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리고 지금,

1년 여의 반백수 생활을 접고 조직에 발을 반 걸쳐 일을 시작한다.


아마도 삶의 다른 막으로 옮겨가는 전환 통로이지 않을까. 이 통로가 어떤 의미인지 찾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1년 동안 프리랜서 삶을 위해 수십 개 이력서를 냈지만, 대부분은 나를 거절했다. 그러다 올 4월에 ㅇㅇ공사에 낸 이력서가 드디어 채용자의 눈에 들었다.

서류-온라인시험-면접을 거치고 받은 합격 메일! 오랜만의 합격! 메일을 여는 순간 발이 동동 뛰었고 눈물이 찔끔 났다. 무한 반복 중이던 불합격 루프를 끊을 수 있어서.


ㅇㅇ공사 교육원의 전문계약직, 교수라는 명함을 갖게 되었다.

IT 사기업에서 제품 마케팅 일을 오래 했고, 1년 남짓 대학에서 강의한 게 전부인데.

이곳은 전통산업에 가깝고, 공공기관에다, 교육사업을 하는 곳, 이전 세계와 거리가 멀어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다, 역시나.


고대하던 곳, 무난히 합격할 거라 예상한 곳은 불합격하고, 기대하지 않은 곳으로 문이 열린 거다.

무엇이 됐든 기쁘고 반갑고 즐겁다.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 가 일하게 된 것이. 이전의 절반 수준이더라도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올 거라는 게.





누군가 나처럼 달리던 길에서 떨어져 나온다면, 지금 너무 숨이 가빠 잠시 쉬려 한다면,

딱 세 가지만 얘기해 주고 싶다.


1. 돈!

역시 쉴 때도 많은 시간 돈에 의해 울고 웃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한 탓이겠지만. 충분한 여윳돈은 일이 예상대로 안 풀릴 때 버티는 힘이 되어 준다. 1년을 쉴 거면 2년 치를, 2년을 쉴 거면 3년 치 목돈을 든든히 준비해 두길 권한다.

단, 돈은 절대 투자 NO!

2. 정신줄 놓지 마.

작고 크게 생활이 흔들리게 될 거다. 평소 당연하다고 여겨 온 많은 것들이 내게 의문을 던져올 거고, 여태껏 믿어온 삶이 부정되는 느낌마저 든다. 왜 나만 이런가 하는 생각마저 들고.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특별한 상황에 처해버렸으니.

그렇지만, 정신줄은 놓지 말기! 멘털을 꽉 붙드러 잡아야 한다. 그래야 시간이 걸려도, 앞에 가로 놓인 바위를 치어버릴 수 있으니.

3. 그래도 된다.

달리던 행로에서 벗어나는 건 분명 인생에서 큰 사건이다. 인생에는 어떤 사건도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건 없다는 게 나의 경험이다. 지금은 좋아도 긴 인생에 보면 안 좋은 거일 수 있고, 지금은 안 좋아 보이지만 훗날 더 큰 과실을 주기도 한다.

특히 한국은 많이 이들이 같은 목표로 한 곳을 향해 달려 다른 생각을 불편해한다. 남과 다른 삶을 사는 나를 불안해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와 비슷한 결정을 한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된다"라고.



이렇게 1년여의 임시 은퇴 생활을 접고,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 조직에 한 발을 걸친다. 내가 꿈꾼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다. 물 좋고 정자 좋고 경치 좋은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하지만 꿈꾼다, 지난 1년의 시간이 훗날을 위한 씨앗이고 거름이 되기를... 그거면 충분하고 감사하다!!



* 오늘도 힘내서 살고 있을 대한민국의 한 명, 당신을 위로하고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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