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그 사람이어야 할까..?
이동진 평론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를 보다 같이 언급돼서 보게 된 영화. 사실 20대 때 보다가 말았던 영화다. 나름 로맨스영화계의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듯하다. 어릴 때는 여주인공 썸머가 그냥 나쁜 년이네 했던 거 같은데 이번에 다시 보고 다른 리뷰를 좀 찾아보니 남자주인공의 미숙함이 보인다.
우리는 한껏 사랑하다 헤어지면 상대방 탓을 한다. 사실 사랑은 증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정이기에 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연애는 대부분 쌍방과실이다.
1. 톰 시점
남자주인공 톰은 운명적 사랑을 믿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식으로는 무거운 인간이다. 썸머를 운명적 짝으로 인식하고 미친듯이 빠져든다. 그러나 500일 후 결국 차이는 신세다. 문제가 뭘까?
톰은 자신의 입맛대로 썸머를 존재가 아닌 대상으로 이상화한다. 로맨스란 상대를 이상화하는 과정이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을 비현실적인 대상으로 인식한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멋지다. 사랑에 눈이 먼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톰이 놓친 게 있다. 진정으로 썸머라는 사람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보고 끼워 맞출 뿐 썸머의 취향이나 생각에 별로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썸머의 특이한 취향을 무시하고, 썸머가 꿈꾸는 미래가 뭔지 물어보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신과 함께 할 운명적 상대인지만 확인하려고 한다. 자의식과잉이다. 반면에 썸머는 톰의 건축가로서의 꿈을 알아봐 주고 응원한다.
2. 썸머 시점
여자주인공 썸머는 회피형 인간인 것 같다.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로 진정한 사랑에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가벼운 관계만 추구한다느니 연인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한다.
사실 썸머는 겉으론 두려워 하지만 진심으론 가장 로맨스를 바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톰과 정확히 반대로 말이다.(톰은 사랑에 빠진 자신을 사랑할 뿐 진짜 로맨스엔 관심이 없다)
문제는 썸머는 톰에 비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매우 서툴다는 것이다. 톰이 그냥 자신의 진심을 알아봐 주길 기다릴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빠져있는 톰이 그걸 눈치챌 수 있을까 싶다. 결국 둘은 헤어지고 썸머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
3. 왜 톰과 썸머는 500일만 만났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의 끝부분 벤치에서 아직 혼자인 톰과 결혼한 썸머가 재회하는 씬이다. 톰은 썸머에게 운명적 사랑은 없다면서 네 말이 진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썸머는 오히려 네 말이 맞았다며 자신은 운명적으로 남편을 만났다고 말한다.
톰 입장에선 분통 터질 상황이다. 현재 더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썸머의 말을 듣다 헛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모든 대화가 끝나고 앞으로 영원히 못 볼지도 모르는 썸머와 마지막 인사를 마친 순간, 다시 썸머를 부른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썸머, 행복하게 잘 살아."
톰이 자신과 관계없이 '한 명의 사람, 썸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장면에서 감동이 느껴졌다. 나라면 썸머의 팩폭에 상처받아 멍 때리고 있었을 텐데 톰은 인격적으로 성장했다.
어쩌면 진정한 로맨스란 운명적 사랑이 아니라 꼭 그 사람이 나와 함께 해야 행복한 것은 아니구나 를 깨달을 때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결론 : 연애를 통해 성장하는 캐릭터들을 관찰하며 진정한 로맨스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작품이다.
연기 ★★★★★
연출 ★★★★★(다양한 편집방식이 흥미롭다)
메세지 ★★★★
대중성 ★★★★
영화기본정보
개봉 : 2009
상영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로맨스
상영시간 : 1시간 35분
감독 : 마크 웹
출연 :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