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태도 08
가계부를 처음 써본 건 몇 년 전이었다.
절약을 해보겠다고 시작했는데, 한 달치를 정리하다가 예상치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 책, 운동.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던 항목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지출들 앞에서는 손이 잘 멈추지 않았다. 아깝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반면 옷이나 외식에 쓴 돈은 금액이 크지 않아도 찜찜했다. 같은 돈인데 느낌이 달랐다.
처음엔 그냥 취향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계부를 몇 달 더 들여다보면서 알았다. 이건 취향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다.
소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말로는 건강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운동에는 한 푼도 안 쓰는 사람, 자기계발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책 한 권 사는 걸 망설이는 사람, 가족이 최우선이라고 하면서 정작 함께하는 시간에는 인색한 사람. 가치관과 소비가 따로 노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무엇에 돈을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보인다. 입으로 말하는 가치관이 아니라, 지갑이 말하는 가치관이다.
한 친구는 여행에 유독 아낌없이 쓴다. 다른 건 다 아껴도 여행 앞에서는 예산을 넉넉하게 잡는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제법 긴 시간을 절약하며 인내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처음엔 몫돈을 들여 여행을 다니는 게 씀씀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물건보다 경험에 쓰는 게 안 아까워. 물건은 낡는데 기억은 안 낡거든."
무엇이 자신에게 가치 있는지를 알고, 거기에 의식적으로 써왔던 것이었다. 그 친구의 소비에는 방향이 있었다.
나는 무엇에 기꺼이 돈을 쓰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절약이나 재테크보다 먼저 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른다. 어디에 쓸지를 모르면, 어디를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기준 없이 아끼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도 같이 잘려나간다.
소비의 우선순위가 곧 나의 가치관이다. 한 달 지출 내역을 펼쳐놓고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내가 말로 하는 삶과 실제로 사는 삶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 있다. 때로는 불편하게, 때로는 꽤 정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