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태도 10
적게 쓰면서도 당당한 사람이 있고, 많이 쓰면서도 어딘가 초라한 사람이 있다.
처음엔 그 차이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더 많이 쓰는 사람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 아닌가. 그런데 주변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 비싼 것들로 채워진 삶인데도 늘 뭔가 부족한 듯한 사람이 있고, 소박하게 사는데 어딘가 흡족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건지 오래 생각했다.
결론은 소비의 크기가 아니었다. 자기 삶에 대한 감각의 차이였다.
만족은 채워지는 것이다. 원하는 걸 얻었을 때, 기대했던 것이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감각이다. 그런데 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채워지는 순간 다음 빈자리가 생긴다. 그래서 만족을 좇는 삶은 늘 무언가를 향해 달리는 모양새가 된다. 소비가 많아질수록 만족의 기준도 높아지고, 결국 아무리 많이 써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
자족은 다르다.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감각이다. 채워지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자족하는 사람은 소비의 크기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에 중심이 있다. 그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니 덜 써도 초라하지 않고, 많이 쓰지 않아도 가난한 것 같지 않다.
많이 쓰면서도 초라한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소비로 무언가를 증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쓰고 좋은 곳에 가야 자신이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 감각은 소비가 멈추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그러니 멈출 수가 없다.
자존감이 소비에 기대어 있으면, 쓸수록 더 써야 한다. 반대로 자존감이 소비와 무관하게 서 있는 사람은, 적게 써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아끼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아끼고 있는데 왜 이 기분이지,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가 있었다. 소비를 줄였을 뿐, 내 삶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소비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적게 쓰는 삶이 초라하지 않으려면, 덜 쓰는 법을 배우기 전에 자족하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결핍은 상황이 만들지만, 자족은 내가 만든다. 그리고 그 차이는 통장 잔고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먼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