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

돈과 태도 13

by 행간 HanggaN

손절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게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버티면 언젠가 오를 거라고, 지금 팔면 손해가 확정된다고. 팔지 않으면 아직 손해가 아니라는 이상한 논리를 나도 모르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내리는 주식을 붙들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놓지 못한 채.


결국 더 큰 손실로 팔았다. 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붙들고 있던 건 주식이 아니었다. 그 주식을 샀던 나의 판단이었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23명의 투자자에게 수익 중인 주식과 손실 중인 주식을 동시에 들고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급전이 필요해 반드시 하나를 팔아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결과는 이랬다. 15명, 약 65%가 수익 중인 주식을 먼저 팔겠다고 했다.


이익은 빨리 확정 짓고, 손실은 최대한 미루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처분 효과'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선택이 왜 문제인지는 생각보다 명확하다. 계좌에는 수익성 좋은 종목은 빠져나가고, 손실 중인 종목만 남게 된다. 잘 되는 건 팔고, 안 되는 건 쥐고 있는 셈이다.


그 뿌리에는 손실 회피 심리가 있다. 같은 금액이라도 잃는 고통이 얻는 기쁨보다 약 두 배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손실을 확정 짓는 행위 자체가 본능적으로 거부된다. 20만 원에 산 주식이 4만 원대까지 폭락해도 팔지 못하고 물타기를 시도하는 이유다. 이미 손해를 인정하는 것보다, 더 사서 평균 단가를 낮추는 게 덜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자본을 더 깊은 곳에 묻어버린다.


더 교묘한 손실도 있다. 3년을 버텨 겨우 2% 수익을 내고 "손해는 안 봤다"고 안도하는 경우다. 숫자만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3년 동안의 인플레이션,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 얻었을 수익, 그 시간과 에너지의 값을 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이지 않는 손실이 훨씬 클 수 있다.


이건 투자 밖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맞지 않는 관계를 오래 끌고 가는 것, 방향이 틀어진 일을 계속 붙드는 것, 이미 의미를 잃은 습관을 놓지 못하는 것. 그것들을 계속하는 이유도 결국 같다. 지금껏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쓴 것들은 내가 떠난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것들을 이유로 지금을 저당 잡힌다.


손절은 포기가 아니다. 틀린 판단을 인정하고,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감정을 걷어내고 숫자와 기준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훈련이 쌓이면 그게 실력이 된다.


미련을 버리는 것도 실력이다. 언제 버텨야 하고 언제 놓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 그 판단이 쌓이는 게 투자 실력이고, 삶의 실력이다. 지금 붙들고 있는 것들이 진짜 가능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놓기가 아까워서인지 — 한 번쯤 솔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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