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 정하기③
후보지 세 곳에 대한 ‘투어’를 마친 뒤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호텔이니만큼 제공하는 서비스는 대동소이했다. 결국 가격과 식장 분위기, 조금 더하면 하객들이 찾아올 때의 교통 편의성 정도가 고려 요소였고, 그 결과 A 호텔이 가장 낫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버지의 지인 찬스(!)로 누구에게나 제공해 준다는 ‘특별 할인가’에서 몇 퍼센트 추가 에누리가 가능하다는 것도 이점이었다.
B호텔은 너무 번화가 한복판에 위치해 교통이 번잡했고, 식장이 지하여서 조금 어두운 느낌이었다. D호텔은 높은 인지도 때문인지 가격대가 예산을 초과했으며, 우리 결혼 예정일 직전까지 리모델링이 예정되어 있어 실제 분위기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후, 어느 일요일 오전 여자친구가 구경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강남의 C웨딩홀을 방문했다.
괜찮은 곳도 이미 물색해 뒀고, 몇 번의 경험으로 ‘식장 투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직원의 리드에 휩쓸리지 않을 여유도 생겼다. 한 번쯤은 결혼 준비를 즐겨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15분쯤 후, 나는 우리가 첫 번째 고비를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말이 웨딩홀이지 그곳이 웬만한 호텔 예식장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으로 분류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첫인상이 썩 좋진 않았다. 왕복 10차선 대로에 인접한 다소 의외의 위치가 내가 생각하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성처럼 두터운 건물 외벽 안으로 들어서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입구부터 시작된 넓은 잔디밭을 건물의 회랑이 ㄷ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었고, 그 지붕을 따라 꽃병으로 장식된 테이블들이 놓여있었다. 실내에 들어서니 영화 속에 나오는 유럽의 연회장을 연상시키는 넓고 고풍스러운 홀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의 호텔에 비해 신부대기실도 꽃과 장식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럭셔리’라는 홈페이지의 광고 문구가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내가 특정 업체를 광고하려고 이렇게 자세한 묘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자인 나도 혹했는데 여자친구는 오죽했을까 설명하고 싶을 뿐이다. 게다가 7월 말인데 날씨는 왜 이리 화창하고 좋은지.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이 순백색의 대리석과 푸른 잔디에 반사되고, 그날따라 한여름임에도 시원한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었다. 거기에 안내 직원분의 유창한 말솜씨는 화룡점정이었다. 결혼식 전 정원에서 하객들과 웰컴 드링크를 즐기며 파티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각종 드라마의 촬영지이기도 하고 기업이나 개인의 파티 장소로도 쓰이는 곳이다, 그 유명한 국민 셰프인 B와 연기자인 그의 아내도 여기서 결혼했다..... 당연히 ‘특가’, ‘스페셜 오퍼’,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고전적이지만 효과적인 멘트가 따라붙은 건 물론이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었다. 결혼 준비에 가성비란 단어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싸면 비싼 값을 하고, 싸면 싼 값을 한다고. 온갖 할인이 다 적용됐음에도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견적서에 난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여긴 포기해야지 뭐. 그러나 체념한 표정의 나와 달리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여자친구를 보며 난 직감했다. ‘오늘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카페에서 제일 큰 사이즈 음료를 시켜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