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디서 결혼해?(5)

결혼식장 정하기④

by 눅눅한과자


카페에 앉은 우린 잠시 별다른 말없이 각자의 음료에 집중했다. 아마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을 거다.


“ 어때, 마음에 들어?” 내가 정적을 깼고,

“ 음..... 응, 직접 보니 더 마음에 들어. 여기서 하면 오빠네 집에서 싫어할까? ” 그녀가 답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린 긴 침묵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때론 논리 정연하고 단호하게, 때론 감정에 휩쓸려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방금 투어를 마친 곳에 대한 내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성비가 떨어진다’였다. 좋은 곳임엔 분명하지만 과연 그 정도 비용을 쓸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미 내린 결론에 대한 합리화 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탄하며 구경할 때는 보지 못한 단점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불편한 교통, 하객들에겐 다소 떨어지는 인지도(통상 어르신들은 호텔 빼면 다 일반 웨딩홀로 인식하시니), 이미 지인에게 부탁해 할인 적용까지 받은 상황에서 취소할 때 드는 정신적 피로도, 결혼 당일 날씨에 따라 정원의 존재가 유명무실 해질 수도 있고..... 떠오르는 대로 이 이유 저 이유 다 둘러대긴 했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녀가 내 마음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우리 벌이에 비해 비용이 과한 건 알지만 처음에 계약하려 한 A호텔보다 조금만 더 추가하면 된다, 어차피 축의금으로 거의 충당될 거 아니냐, 나는 식장만 마음에 들면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는 대충 해도 된다.. 등등의 이유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결국 일단 각자 집에 돌아가 부모님들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 인륜 지대 사니,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옛말을 떠나 그분들의 하객이 우리보다 더 많이 올 것이란 사실, 그리고 적지 않은 결혼비용을 지원받는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반영된 결과였다. 우리 집은 역시나 결혼식장을 바꾸는데 썩 긍정적이진 않았다. 자식 결혼에 부모가 개입할수록 갈등이 커진다는 사실을 여기저기 들어 이론적으론 간섭을 안 해야 된다 생각하시지만 막상 실천은 잘 안 되는 느낌이랄까. 반면 여자친구 부모님께선 너희들하고 싶은 대로 하라신 모양이었다. 곤란해 진건 나였다.


그렇게 이틀 후 다시 만난 여자친구한테 나는 내 뜻에 따라주기를 반은 사정하고, 반은 강요하다시피 요구했다. 진심으로 납득하지 않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성격의 그녀지만 초반부터 싸우기 싫었던 건지, 아니면 스스로도 조금은 무리한 선택이라 여겼는지 생각보단 덜 싸우고 그녀를 설득할 수 있었다(결혼하고 나서 물어보니, 초반부터 시댁에 찍히기 싫었단다). 결국 우리의 결혼식장은 처음 내가 제안한 A호텔이 되었다.

다만, 지금도 여자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까지 '팩폭'을 시전 했어야 하나 후회도 되지만...


“자기야, 인간적으로 우리 연봉 넘어가는데서 하진 말자. 이건 좀 아닌 거 같지 않아?”


그렇게 결혼 준비의 첫 단계인 식장 정하기는 어느 정도의 갈등과, 고통과, 타협을 거쳐 끝이 났다.





"아, 그때 결혼식장에서 준 호텔 숙박권 아직 쓸 수 있다?"


"진짜? 그렇게 유효기간이 길었어? 우리 이번 주말에 가서 좀 쉬고 올까?"


아내의 화색에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응, 이거 봐. 우리 거기서 결혼 잘했지? 신혼여행 갈 때 공항까지 차도 태워줬잖아."


"뭐래~ 일단 다녀와서 다시 생각해 볼까?"


잠깐 느꼈던 서운한 감정을 털어버리고, 나는 호텔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KakaoTalk_20210824_092156247_10.jpg 장마의 시작과 끝에 맞춰 결혼식장 고르기도 약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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