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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Jan 03. 2023

기도에 대한 응답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하루 한 절 성경묵상탐구(3):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

사도행전 10장을 걸쳐 고넬료(Cornelius)와 베드로의 만남에 대해 묵상하고 있다. 10장 초반에서 중반으로 이르기까지 성경은 한 유대인과 로마인 백부장 사이에 있었던 만남의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왜냐하면 고넬료는 '이방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의 많은 날들 동안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선행했다. 기도가 상달된 날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 주심과 동시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은 베드로가 머무르던 욥바(Joppa)의 무두장이 시몬의 문 앞에 당도한다. 


그들의 여정을 보며 묵상한 세 가지가 있었다:  


1. 하나님께서는 '혼자' 일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고넬료가 하나님께 무슨 기도를 간절히 드렸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드로를 보내준 것이 기도의 응답임은 확실히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가심은 고넬료의 기도로 인함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환상을 '세 번'이나 보여주신다. 가라고 명령하셔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그곳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게 하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베드로가 세례를 주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전파하였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수는 없으셨을까?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고넬료의 기도에 응답하시려고 베드로를 세우셨다. 그래서 베드로 또한 하나님의 귀한 일에 동참하고 쓰임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방 족속에게 가지고 계신 계획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장에서 벼락을 내리고 불꽃으로 나타내시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을 닮은 사람을 사용하신다. 


2. 모든 과정은 내게 반드시 필요하며, 하나님께 나를 온전히 드리는 시간이 된다.


내가 하나님께서는 왜 고넬료의 기도에 멀리 있는 베드로를 부르셨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 건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나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즉시 그리고 직접' 해주시기를 바란 적이 많았다. 사실 기도하면서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기도하지는 못한다. 세세하게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특별히 내가 원하는 것이라서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기도할 수는 없다. 혹은 그 과정까지 예측하지도 못한다. 기도할 때는 그저 원하는 것, 그것이 이루어짐만 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지, 누군가를 통해 나에게 영향을 주시는지에 대한 과정들을 보는 걸 꽤나 많이 놓치지 않았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환상으로 찾아가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세 번'이나 보여주셨다. 한 번으로는 안 되니까 세 번 하신 거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의 과정을 중시하셨다. 그분이 FM이라서는 아닐거다. 베드로가 믿어왔고 지켜왔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기다리셨다. 또한 고넬료의 기도로 베드로를 쓰임받게 하셨던 것처럼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유익이 되며, 일련의 시간을 지나가는 가운데 나 자신도 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감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나의 기도는 이미 응답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기도에 응답하셨지만, 기도를 하는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그 기도는 '응답되고 있는 중' 인 것이다. 고넬료의 사람들을 베드로에게 보내실 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 고넬료에게 가는 일을 위법이라고 여기지 않고(28절)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렸음을 받아들이게 하신다. 고넬료는 이 일을 나중에서야 들었겠지만, 고넬료의 사람들이 욥바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욥바에서 일하고 계셨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선하신 계획과 뜻 아래, 그분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었다. "우리가 그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5)". 무엇이든 그의 뜻에 합한 그 기도는 응답되었고, 당신에게 응답함을 보이기 위해 올 것이다. 혹은 당신이 그것을 위해 길을 떠날 수도 있다. 




요즘에 기도가 무엇인가 묵상하고 배우는 과정 중에 있다. 기도는 나의 어떤 소망을 두고 그 소망이 그분께 조화되도록(in tune with) 끊임없이 방향을 맞추는 과정이다. 마침내 그 음(tune)이 맞추어져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노래가 완성되면 그 노래는 나의 귀에 들리기도 내가 처음에 불렀던 노래보다 훨씬 더 나은 곡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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