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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Jan 30. 2023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위대한 인물들

어렸을 적 집에 꽂혀 있던 명작만화로 처음 접했던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영국문학을 공부하면서도 영국의 대문호라고 불리는 디킨스를 수업 시간에 읽을 기회는 없었다. 고전으로 알려진 책을 하나 하나 읽어가고, 작가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작가가 그 작품을 그려낸 곳들을 머릿속으로 하나 하나 그려보는 것이 내가 대학원에서 하고 싶던 문학 공부였다. 3학기가 끝난 지금에서야 졸업시험 때문에 이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 슬플 정도로 <위대한 유산>은 감동적이었으며, 다시금 영국문학을 공부하는 재미를 일깨워주었다.


이 작품이 영국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나 (전통적인) 문화적으로나 동떨어져 있는 먼 아시아 나라의 나와 같은 독자에게도 큰 감동과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훌륭한 작품에 대해서는 많은 리뷰와 비평이 나왔을 테니 줄거리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몇 가지 인상깊었던 점만- 특히 인물들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며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느껴보고자 한다.



1. 모든 인물들이 생생하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핍의 1인칭 화자 시점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핍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핍의 시선과 그와의 대화,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 등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물론 핍의 시점이 작가의 시점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어린 시절 대장간에서 살 때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느낀 친척들, 새티스 저택 등의 묘사가 정말 어린아이의 그것 같았다. 독자는 어린 핍이 성장하며 맞이하는 여러 가지 사건과 사람들의 변화를 (특히 핍의 시선으로) 함께 경험하게 된다. 정돈되지 않은 새티스 저택의 으스스한 분위기는 저택 주인인 미스 해비샴을 더욱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보이게 한다. 핍이 런던에 상경해 허버트와 살게 되는 건물의 분위기, 시골에 살던 핍의 눈으로 보는 런더너들의 차갑고 어두운 삶들은 더욱 부각된다. 



2. 핍은 모든 상황을 참을성있게 견디어나간다.

유튜브로 오디오북에 “핍이 너무 순진(naive)해서 전혀 공감이 안 된다”고 하는 댓글이 많은 좋아요 수를 받았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부터 자신을 향해 온통 부당한 말만 지껄이는 누나와 친척들에게 작은 반박도 하지 않는다. 유산을 받게 돼 런던에 가고 나서도 자신의 소신이나 꿈은 없는 듯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고 에스텔라에 대해서도, 그녀를 향한 감정은 지속되지만 그녀 주위를 맴돌 뿐 그녀를 향한 격정은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후견인이 매그위치 아저씨인 것을 알고 분노와 실망감을 갖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독자들은 핍의 생각과 감정을 읽지만 핍은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순진'하고 '답답'할수 있는 이 점이, 오히려 나에게는 핍이라는 인물을 나타내는 '덕(virtue)'으로 여겨졌다. 나는 나의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늘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핍처럼.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간다. 


3. 조 가저리. 선한 인물은 절대 질리지 않아.

어쩌면 디킨스가 <위대한 유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인물은 핍의 매형, 대장장이 '조 가저리'이지 않을까? 황야에서 핍을 업어주고, 아내의 고약한 성질에 멋쩍은 듯 웃어넘기고, 핍이 모든 것을 잃고 런던의 하숙방에서 앓고 있을 때 말없이 도움을 건네고 유유히 사라진. 핍이 소설의 말미에서야 깨닫게 된 그의 위대한 유산은 조가 상속해준 그의 한결같은 사랑과 도덕적인 성품이었다. 



졸업시험에서 '평면적 인물(flat character)'의 예시를 들라는 문제에서 나는 이 '조 가저리'를 적었다. 플랫 캐릭터라는 것이 사실 소설적으로 매력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 않나. (어떻게 보면 인간이 절대 '플랫'한 인물이 될 수 없는데..) 그래도 핍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변하지 않았던 그의 올곧음과 (세상 이치에 있어서는) 단순했던 그 모습만은 상황에 관계없이 유지되었던 '플랫'은 긍정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4. 매그위치가 핍을 통해 얻고자 했던 '신사다움'


매그위치가 핍을 신사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은, 사실 자신이 핍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배신당하면서 기구한 운명을 살아왔던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도운 어린 핍에게 신뢰와 희망을 느꼈고 그를 완전한 인물로 만들어 자신이 지니지 못한 인간성과 사회적 지위를 얻게 해주려 했던 것이다. 또한 불운한 일에 휘말려들어 자신이 사랑했던 딸아이를 잃은(사실 잃었다고 생각한) 매그위치는 딸의 또래인 핍을 사랑하고 후원함으로서 자신이 쏟아야 했던 자식 사랑을 실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핍이 매그위치가 지원했던 '신사다움'을 얻고자 한 것은 매그위치의 딸인 '에스텔라' 때문이었던 것은 흥미롭고도 더 생각해 볼만한 요소다. 


 


이 밖에도 재거스 변호사나 존 웨믹과 그의 집, 비디와 펌블추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매력적인 인물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을 각자의 풍부한 사정이 있는 인물들로, 이토록 희극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위대한 유산>에서 '그저 그런' 인물들은 거의 없었다. 그가 대중을 위한 소설을 썼다고 해서 나는 인물보다는 흥미로운 플롯이나 교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그가 인물들을 바라보고 묘사하며 이해하는 솜씨는 정말 탁월하다! 그의 유명한 다른 소설도 꼭 읽어보고 싶다. 


고전은 고전의 이유가 있고, 이름난 작가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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