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쇼는 과연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클레이튼 커쇼의 거취가 오리무중이다. CBA 협정이 한 달이 넘어가면서 fa가 멈춰있는 상태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점은 놀랍다. 리빙 레전드. 그가 이룩한 것들이야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사이영 상 3번 수상으로 쉽게 이 선수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만으로 34살로 한창 때는 아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서 적어도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기량과 이름값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몸 담아왔던 LA 다저스에서도 퀄리파잉 오퍼를 날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커쇼의 현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가 어쨌든 현시점에 커쇼는 냉정하게 1840만 달러를 내고 쓰기에는 아까운 선수라는 점이다. 매정한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드래프트 지명권을 손실하면서 계약하려는 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퀄리파잉 오퍼를 넣지 않으며 오랜 에이스에 대한 예우가 느껴지기도 한다. 과정이야 어쨌든 지금 현재 커쇼는 애매한 지점에 놓여였다. 명성과는 달리 성적이 하락하고 있고 부상 위험을 안고 있는 불완전한 선수라는 것이다.
2018년 샌프란시스코와의 개막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개막전 무패의 사나이 커쇼가 1 대 0 영봉패를 당했다. 상대 투수는 타이 블락이라는 유명하지 않은 투수다. 솔로 홈런을 허용한 것도 대표선수인 버스터 포지나 브랜든 벨트도 아닌 홈런 10개를 간신히 치는 조 패닉이었다. 말 그대로 패닉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패전도 패전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랐던 것은 구속이었다. 93마일 언저리에서 머물던 커쇼의 구속이 90마일을 연달아 찍었고 92마일도 드물었고 93마일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성적은 6이닝 1 실점으로 나쁘지 않았다. 호투였고 타자들이 한 점도 못 냈기에 패를 당한 것뿐이었다. 승운이 따르지 않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구속이 떨어진 것은 예사의 일이 아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 은퇴를 앞둔 커쇼를 본 것 같았다. 성적은 어느 정도 나오지만 압도적이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 타자를 압도할 수 없다면 패전이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즌을 힘겹게 이끌어 갔고 부상도 겹치면서 평균자책점 2.73, 1이닝 정도지만 규정이닝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물론 이 성적도 누군가에게는 커리어 하이일 수도 있지만 커쇼에게 기대하는 바는 분명 달랐다. 데뷔 이래 줄곧 통산 평균자책점을 떨어뜨리던 커쇼의 커리어에 있어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커쇼의 세 가지 구종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는 모두 구종가치에서 플러스를 기록하고 있고 주무기는 슬라이더, 커브는 전설적인 다저스의 중계진인 빈 스컬리에게 공공의 적이라고 들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구종이다. 보통 변화구를 빛나게 하기 위해 패스트볼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커쇼의 경우는 패스트볼 자체도 마구에 가까웠다. 17년도까지의 커쇼의 구종가치의 합을 보면 패스트볼 199.2, 슬라이더 130.7, 커브 65로 오히려 슬라이더와 커브를 합한 값보다 약간 높았다. 커쇼의 엄청난 성적을 지탱한 것은 명실공히 패스트볼이었다. 강력한 구위를 뽐내던 기준은 93마일이었다. 그런데 2018년에 17년도 92.7마일이었던 평균 구속이 90.9마일로 1.8마일로 2마일 가까이 떨어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구속 저하가 자연스럽다고는 해도 낙폭이 너무 컸다. 이듬해인 2019년에도 90.4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구속은 거의 그대로였지만 슬라이더 제구를 신경 쓰며 관록으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시즌 중 평균자책점을 2점대 중반을 유지하다가 3.03으로 마무리했다. 커리어 첫 3점대였다. 데뷔 해에 4점대를 기록한 이후 줄곧 2점대 이하를 이어왔는데 그 기록이 깨진 것이다.
2020년, 커쇼는 반등을 시도했다. 오프 시즌에 드라이브 라인에 방문한 것이었다. 트레버 바우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회사였고 여러 선수들이 효과를 봤다. 셔터를 내리면서까지 집중했고 투구폼과 회전수 등 몸의 메커닉을 수정하고 돌아왔다. 시범경기부터 범상치 않더니 페넌트레이스는 물론 유독 약해지는 포스트시즌에도 호투하며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근 2년 간의 모습과는 달랐다. 2020년 평균 구속은 91.9마일. fip가 다소 높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단축 시즌으로 표본 기간은 짧았지만 전성기 때는 아니더라도 구속이 오른 커쇼의 모습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커쇼의 한계가 더 뚜렷해졌다. 구속이 오르면 잘 던지지만 구속이 떨어지면 못 던지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나 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을 커쇼가 제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한계점을 안으며 받아들인 선택이라고 봤다.
개인적으로 2020년은 커쇼가 자신의 갈림길을 고민한 해였다고 생각했다. 점점 떨어지는 성적에 반등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 중은 구종을 추가하는 것이다. 커쇼에게 수년 전부터 전문가든 팬이든 너 나할 것 없이 조언했지만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보통 구종 추가는 부족할 때 하는 경우가 많다. 커쇼조차도 슬라이더를 장착하고 나서 사이영 상을 타고 승승장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근데 승승장구의 정도가 엄청 컸다. 2011년 포함 이후 4년 연속 MLB 평균자책점 1위다. 이 기간 동안 사이영도 세 번 수상했다. 반짝 스타도 아닌 오랫동안 최고 중에 최고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구종 추가의 필요성은 느꼈겠지만 피부로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구종 추가가 득보다 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밸런스가 무너져 실투가 늘어난다거나 다른 구종이 영향을 준다든지 최악의 경우 부상에 대한 위험도 생각했을 수 있다. 가끔 완벽해서 더 조심스러울 수 있다. 그동안 구종 추가나 다른 레퍼토리를 몇 번 시도했겠지만 큰 소득이 없었기에 변화가 없이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닥쳐올 위기에 대해 천천히 준비하려고 미뤘는데 갑자기 평균 구속이 떨어지며 선택의 기로가 급작스럽게 닥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구종 추가라는 가보지 않았던 길보다는 구속을 올려 자신이 보여주었던 확실하고 완벽한 길을 택한 것이다. 구속을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성실히 노력해 성과를 냈고 그것은 곧 성적의 반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1년 후인 2021년 평균 구속이 90.7마일로 떨어지며 다시 18, 19년과 비슷하게 돌아갔다. 커쇼의 성적도 구속에 따라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도를 앞둔 후 거취가 정해지지 않았다. 원 소속팀인 LA 다저스에 남을지 고향팀인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할지 나뉘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돌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이 있는 이유는 이미 우린 노쇠화가 일찍 온 커쇼의 경기를 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이징 커브를 맞아 평균 구속이 0.2~4마일씩 천천히 떨어졌다면 30살 후반에 가까운 나이에 90마일 대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 모습을 미리 본 것이다. 랜디 존슨이나 저스틴 벌랜더 같은 아웃 라이어 같은 존재도 있긴 하지만 평균적인 하락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이 점차 옅어지고 호투하는 경기가 하나둘씩 줄어들며 평균자책점이 올라가도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그럼에도 여전히 3점대 초반을 마크하는 대단한 투수로 기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 건강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히 많지만 정상급에 속하는 선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약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토미존 수술을 받고 2년 후에 잘 던질 수도 있고 평범한 성적을 내며 5~6년 준수하게 활약하거나 구종을 추가해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모습을 하든 커쇼가 보여준 눈부신 활약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커쇼의 구속과 구종가치 및 자료는 팬그래프를 참고했습니다.
-22. 01.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