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매주 꼬박꼬박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지 처음 알아가고 있다. 그저 생각날 때 휴대폰에, 메모장에, 간혹 카페에서 받은 영수증에, 일기장에 끄적이던 글들이 자리를 잡고 쌓이기 시작했다. 어떤 공간에 글을 게시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일이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라 어색하고 부끄럽고 한없이 나 자신을 작아지게 한다. 엄마에게 넋두리를 했다.
"그런 거에 연연해서 무슨 글을 쓰겠니. 그럴 땐 고전을 읽어. 혼불 같은 거."
"그건 또 머야"
"설마 박경리의 ‘토지’ 못지않은 ‘혼불’이라는 작품을 모르는 거야? 우리나라 언어의 정수로만 지어졌다는 거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볼 때면, 난 엄마의 인생을 갉아먹고 산 송충이 같아서 한껏 웅크러든다. 어린 시절 나에게 엄마는 이런 말도 했었다.
세상 모든 것에 너의 관심을 나눠줘야 해.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창밖을 보면서도 지나는 사람 한 명 한 명, 나무 한 그루, 작은 풀잎까지도.
난 그렇게 살아왔을까…
혼불을 주문했다. 10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이라 전집을 사기엔 살짝 부담이 갔다. 우선 1권을 읽어보고 결정해야겠다 싶었다. 우리나라 언어의 정수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추천받거나 서점에서 혹은 인터넷 문고에서 책을 고를 때 나는 서평을 읽지 않는다. 간혹 서평에 치우쳐 온전한 감상이 방해받게 될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고를 때에는 먼저 대략적인 줄거리와 목차 그리고 처음 혹은 중간을 펼쳐 문체를 훑어본다. 어떤 문장을 구사하는지, 어떤 단어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는지 정도의 살짝 맛보기 후에 책을 구매한다. 책의 사각거리는 종이 소리와 훌렁훌렁 넘어가는 책장의 촉감을 좋아하여 아직 ebook은 선호하지 않는다. 책의 분야에 대한 편식은 없다. 요즘엔 여러 매체에서 책 소개를 많이 해주는 편이라 책 고르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확실히 베스트셀러에 들어있는 책에 손이 많이 간다. 간혹 신작 코너에서 골라잡은 책이 두어 달 뒤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있으면 괜히 으쓱하는 마음도 생긴다.
책을 읽는 속도는 느린 편이다. 주변에 책을 빠르게 읽는 사람들을 보면 3~4시간에 한 권씩 거의 해치우다시피 책을 읽던데, 나는 한 번에 쭈욱 읽는다고 해도 5~6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가끔 빠르게 읽히는 책이 있기도 하다.
불 꺼진 거실 소파 아래서 작은 독서등을 하나 켜 두고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책 한 권에 서너 번 눈물을 흘리는 것은 기본이고, 보통 슬픈 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읽는 내내 울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눈물을 펑펑 쏟고도 몇 달이 지나면 그 책 내용이 뭐였더라 한다. 나는 책을 온전히 읽은 것일까.
그렇게 책들을 읽고 읽어 남는 것은 마음뿐이라, 이 마음이 둘레 없이 허울대는 것은 순전히 엄마가 이것에도 저것에도 나의 관심을 나눠주라 했던 말 때문이다. 내 마음을 이곳저곳 나눠주는 까닭에 속이 잔잔할 날이 없다. 뉴스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봐도, 웃긴 개그 프로에 개그우먼이 분장을 하고 쇼를 선보여도 눈물이 그렁한 것이 그네들의 삶에 너무도 깊이 마음을 담은 탓일 것이다. 하릴없이. 그렇다고 주변에 못된 말 못 하는 나도 아니어서 내 마음은 이중 줄타기를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관심을 나눠주는 것에는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끔은 침묵 속에서 뜨겁게 움직이는 것으로 대신할 필요도 있다. 내 마음은 조금 둔탁해져야 한다. 또 마음과 달리 나가는 나의 말들도 그 속내가 훤히 비칠 정도로 최대한 다듬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 꼭 나를 오래 안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혼불을 읽기 시작했다. 엄마의 말은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