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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Aug 25. 2023

무엇이 옳은 것일까.

후쿠시마 오염수(혹은 처리수)의 방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옳다와 옳지 않다는,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하여, 내가 생각하는 것에 옳음과 그렇지 않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어떤 일에 있어, 대다수의 사람이 옳다고 여겨온 사실도,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지난 이후에 들여다보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고대과학의 프톨레마이우스의 천동설이 1,000년 이상이나 사실로 받아들이며, 신중심의 세계관으로 인해 중세시대의 과학은 교회와 싸워야 했던 암흑기였음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당시의 생각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였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함부로 단정짓는 오류의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요 며칠 후쿠시마 오염수(혹은 처리수)에 대한 내용이 언론을 뒤덮고 있다. 불운한 자연재해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본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숙제를 해결한 셈이 되는 것이고, 그들의 결정에 찬성표를 던진 한국정부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라기 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여론을 형성하기까지 했다. 혹자는 과학을 믿지 않는 무지한 국민들이란 표현도 썼다고 알려졌다. 물론 그 여론에 대한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나뉘었지만, 모두가 다 인지하듯, 딱 정치성향별로 찬성과 반대를 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이다.


정치가 개입된 과학이다.

그러니, 그것이 정확한 판단이었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해당 판단을 두고, 각종 언론에 원자력 관련 교수나 학자들이 패널로 나온 것 자체도 나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에게 원자력이 안전하냐고 하면, 뭐라고 할까.


실제 일반국민들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이던 일본이던지 간에, 대다수는 그 물의 방류를 당연하게도 반대한다. 다른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해달라는 요구와 더불어 지역주민들을 포함 전 지구적으로 얽혀있는 부분에 대한 양해와 설득이 필요했지만, 그러기엔 일본정부의 부담은 너무 크다. 이에 일본은 아군이 필요했고, 미국은 적임자였다. 그리고, 그 작전은 성공한 듯하다. 거기에 한국까지 이런저런 이해관계로 끌어들이니, 자충수에 빠진 한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에 붙는다. 모든 국가 간 거래는 give and take, 미국은 그런 협조로 인해, 그보다 더 큰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니, 손해 볼 것은 없다. 미국의 모여라 한마디에 두 정상이 미국까지 날아간 것을 보면, 대충 이해는 된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왜 갔는지 잘은 모르지만,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도 미국에 다녀온 이후, 과하지욕이란 한신의 고사를 꺼내며 아쉬움을 토로한 걸 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오염수(또는 처리수)에 대해 한국이 일본의 판단에 반대를 했어도, 결국 일본은 방류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부족해서 그들이 방류했다고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한국의 찬성, 중국의 반대와 같은 주변국들의 이해는 애초부터 불필요했다. 그저 일본 내에서는 주변국인 한국도 찬성한다는 내편 여론만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기에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방사능의 공포는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통은 지금 국회에서 핏대 세우며 싸우는 정치인들을 포함한 우리 어른들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이 어린아이들이 겪을 수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아이들에게 어리석었던 어른들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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