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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Apr 26. 2024

06. 세 번째 시련의 서막

그때 절대 남편을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다...

2020년 8월 15일.

인천-밀라노 임시 항공편이 마련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남편의 지인가족도 8월 15일 비행기로 다시 밀라노로 들어간다며 연락이 왔다.


정부에서 2020년 4월에 전세기를 띄워 교민들을 자국으로 데려와주었다. 두 달 뒤 6월에 첫 이탈리아행 임시항공편이 마련되었고, 8월 두 번째 이탈리아행 항공편이 뜬다는 소식이었다. 남편은 나와 태리가 8월 15일 비행기로 들어오기를 꽤나 바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들  강하게 만류했다. 아직 코로나가 한창인데 아이랑 임신부가 어떻게 이탈리아를 가냐며 성화였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들께선 '태양이'가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인 상황에서 더더욱 안된다며,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도 마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사실 우리 세 식구의 경제위기가 아니었다면 난 8월 15일, 그 밀라노행 특별항공기를 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친정집에서 그리고 내 나라 한국에서 긴장을 내려놓고 지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계산으로는 4월, 6월, 8월 두 달 간격으로 특별항공편이 마련되었으니 10월에도 분명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조금 더 지내고 코로나를 좀 더 지켜보다가 10월에 들어가겠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그때 내 입장 말고 남편의 입장을 좀 더 생각해 줬더라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그때 절대 남편을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2020년 9월 2일. 남편과 떨어져 지낸 지 5개월이 지났다.


그럭저럭 시간은 적당하게 흘러갔다. 잘 지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시기에 뭐 먹고살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뱃속 '태양이'(태명)의 다운증후군 여부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무렵 친정 아빠의 생신과 우리 꼬마 이태리 군의 생일을 연거푸 맞이했다. 자상한 남편은 장인어른을 위해 생일 축가 노래를 또 세상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들 이태리의 생일을 위해 영상편지와 축가를 불러 보내주었다. 영상 속 모습이 많이 외로 보이는 걸 나는 그때 왜 몰랐을까..


우리 사랑 꼬마 이태리의 4번째 생일을 맞이해서 아빠가 보내는 영상편지 일부




2020년 9월 5일.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남편으로부터 영상통화가 아닌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밀라노 시내로 들어가는 꽤나 복잡한 순환로에서 우리 차가 갑자기 멈췄다고 했다. 견인차를 불렀는데 몇 시간째 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일처리 느리기로 소문난 독일, 러시아를 겪은 터라 2-3시간은 뭐 가볍게 기다릴 수 있었지만,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슬슬 걱정과 불안이 밀려왔다. 순환로라서 차를 두고 밖으로 나갈 수 도 없고, 더운 날씨에 갈증도 나고 화장실도 가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참고 기다렸을지... 난 내심 차 때문에 또 목돈이 지출되는 것은 아닐지 앞선 걱정에 남편의 애써 숨기는 당황함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복잡한 도로라서 차 위치를 제대로 몰라 늦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하늘이 깜깜해져서야 견인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내가 멀리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저 답답했다. 게다가 지칠 대로 지친 남편은 깜박하고 여권을 포함한 (타지에서 외국인에게 여권은 가장 소중한 물건 중 하나이다.) 각종 신분증과 우리 집 차고로 들어가는 게이트 리모컨을 차에 그냥 두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살 던 아파트는 9시가 넘으면 메인 게이트 문을 닫아두는데 메인 게이트 열쇠도 없고, 지하주차장 게이트 리모컨도 없으니 단지 내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착한 남편은 늦은 시간 우리 이웃집을 깨우기 싫어서 어른 키 만한 대문을 넘어서 들어갔다고 했다. 하.... 저녁도 못 먹고, 종일 차량 때문에 고생하며, 굳게 닫힌 문을 넘어 겨우 집으로 들어간 남편에게 난 괜스레 짜증이 났다. 왜 제대로 일처리 하나 못하는지... 난 그때 왜 그렇게 마음이 뾰족했을까? 난 그날 도대체 왜 고생한 남편의 작은 투정 하나 받아주지 못했을까...


딱 우리 삶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던 이 도로 위 어디에선가 남편 차가 멈추어버렸다. -  구글맵 캡처



그날 이유 없이 갑자기 멈춘 남편의 차가,

또 그 차가 서있었던 얽히고설킨 도로가,

그리고 그날 지쳐있던 남편 앞에 굳게 닫혀있던 높다란 대문이, 곧 우리 앞에 펼쳐질 고난들을 암시해 주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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