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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Apr 24. 2024

04. 선천성 기형아 선별검사 결과

두 번째 시련 - 다운증후군 고위험군 임신부(1)

코로나19로 인해 남편과 떨어져 지낸 지 2달이 훌쩍 지났다. 


2020년 6월 22일. 산부인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햇살 강한 초여름 날씨. 한국 와서 유일한 도시 구경(?)이 산부인과 방문이었다. 그 무렵 시댁에서 지내고 있어서 시아버님과 꼬마 이태리와 함께 신나게 서울로 향했다. 코시국에 병원 말고는 다른 계획은 없었지만,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에 한껏 들떠있었다. 아버님은 아이와 병원 밖에서 기다리시고 난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진료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혼자 오셨어요? 보호자 오셨으면 같이 듣는 게 좋겠는데..."


'뭐지?'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두근두근두근...  




돌이켜보면, 감사하게도 참으로 평탄한 삶을 살았다. 부잣집은 아니어도 화목한 가정에서 내 기준엔 부족함 없이 살았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대부분 이루어졌다. 원하는 학교, 직장, 바라는 것들이 언제나 내 것이 되어 있었다. 정말, 정말, 정말 운이 좋았다. 20대에 써 두었던 '배우자를 위한 기도제목'과 딱 맞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꿈꾸던 곳에서 아이를 낳게 되는 행운까지...


그래서였을까? 겉모습은 강하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내면은 그다지 단단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깊게 내린 뿌리(직근)가 아닌 그저 옆으로, 옆으로만 뻗어나간 측근(Lateral Root)을 가진 나무로 성장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나에게 코로나19가 우리 집 가정 경제를 흔들어 놓았을 때까지만 해도 다행히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가 도움이 되었다. 남편과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늘 내가 원하던 쪽으로 일들이 흘러갔으니까... 젊고 건강한 두 남녀가 무엇이든 하지 못하리. 그것이 코로나라고 해도, 모두가 힘든 상황, 분명 이 위기도 잘 견디리라 굳게 믿었다.  


나의 내면이 그리도 연약한 줄 모르고 꽤나 긍정적이고, 담대하다고 자부하며 착각하며 살아온 내게 진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찾아온 것이다. 




사실, 주치의 말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4년이란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그 순간부터 그냥 머릿속이 멍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 심장이 너무 요동쳤다는 것, 양수검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운증후군에 대해 알아보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 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주치의의 메모가 적힌 검사지를 손에 들고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밖으로 나왔다. 


'이제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내 뱃속의 아이가, 우리 '태양이'가 장애아로 태어날 확률이 높다고?' 


병원 밖에서 오매불망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아버님과 우리 꼬마 이태리를 보는 순간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선 친정 부모님께 결과를 전했다. 부모님은 소식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시댁으로 오셨다.(얼마 전에 들을 이야기지만 그때 우리 시댁으로 차를 타고 오시는 내내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얼마 뒤 시댁에 우리 다섯 사람이 모였다.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그리고 나. 남편에게도 전화로 이 소식을 전했다. 그날 시댁 부엌 식탁에 모여 앉은 우리 다섯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아버님의 간절하고 떨리는 기도였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양수검사를 해야 하나? 그런데 진짜 염색체 이상이 맞다면, 난 남은 임신 기간을 어떻게 버티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가정 경제가 불안한 이 이상한 시국에, 그렇게 기다려온 뱃속의 아이가... 임신 극 초기 코로나를 뚫고 어려움을 극복한 나의 작디작은 생명체에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니... 아...


남편과 눈물의 통화를 거듭했다. 남편은 커다란 몸집만큼이나 침착했다. 분명 아닐 거라고. 건강하고 예쁜 아이가 태어 날 거라고 강하게 믿으며 불안감에 휩싸인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양수검사 하지 말고, 건강하게 태어날 아이를 위해 그저 기도하자고. 만일, 그래도 만약에 우리 아이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다면 우리가 사랑으로 잘 키워보자고. 우린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차분하고 담담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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