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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지 May 25. 2023

여전히 변하지 않은

우리의 mayday


 대학에 들어가 친구들과 동아리관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선배님들의 맥주와 탕수육의 호객행위에 넘어가 들어갔다. 작은 동아리방에 악기들과 어질러진 악보와 책과 꽃무늬 담요가 기억이 난다. 악기 뭐 할 줄 아는 것 있냐 물어 피아노 쳐봤습니다. 하니, 응, 그럼 너는 신디. 그렇게 노래패 새내기가 되었다.

 얼마 전 엄마가 집에 오시며, 네 흑역사 들고 간다고 가지고 오신 플라스틱 박스 안에 내 초중고대학시절 연애편지와 일기장, 친구들과의 쪽지, 사진, 갖은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었다. 그곳에서 발견한 나의 스물, 스물하나의 기억들. 맥주 소주를 마시고 기타 치며 노래한 기억만 가득한데, 공부도 하고 고민도 하고, 현장에서 학우들과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소리 높인 외침의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올해는 132th 노동절. 22년 전 110th 노동절.

 그 때나 지금이나 외침은 한결같고, 문제 또한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 창작과 비평 199호에 실린 나희덕 시인의 <샌드위치> 얼마 전 SPC 사망사고에 관한 시이다.


창작과비평 199호 나희덕 시인의 <샌드위치>


사람을 삼킨 교반기 속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소스가 되어버린 노동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행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본주의의 소스가 되어버린 노동자의 죽음, 동료가 죽은 기계 옆에서 흰 천으로 가림한 채 여느 때와 같이 기계를 돌려야 했던 노동자들.

불구하고, 불구하고...

문장이 끝나는 '불구하고'라는 단어 안에서 놓아버린 절망이 아닌 새롭게 바꾸어 나가려는 희망을 보았다. 철의 노동자 노래가 듣고 싶어 유브를 검색하다가 안치환 TV 채널을 보았다. 우와, 아직도 노래하고 계셨어.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독 버튼을 누르고, 라이브 영상을 보았다.

출처: 유튜브 <안치환TV> 안치환 LIVE 철의 노동자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러한 자기 존재가 자신의 의식을 배반하지 않는 그러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한 노동자를 위한 노래이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눈물이 한 바가지 뚝뚝뚝. 가슴이 뜨거워진다.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길에서의 투쟁일 수도, 시 한 편 일 수도, 노래일 수도 있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우리 모두가 노동자이기에. 그 노동자도 누군가도 우리이기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지는 132번 째의 노동절이 지난다.


<관련기사>

SPC 사망사고. 예견된 인재


#spc사망사고 #메이데이 #노동자의날 #우리의이야기 #연대 #안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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