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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지 Feb 26. 2024

다시 대학생

두 번째 스무 살

세기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2000년.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제2언어로 독일어를 배우며 독일어의 발음과 언어에 매력을 느끼고 전공을 하고 싶었지만, 인기 없는 독어과 나와서 어디에 취직하냐는 주변의 걱정과 우려에 좋아했고 인기 많은 영어를 전공으로 선택했었다. 학교는 선택지가 없었다. 국립대. 사립대는 못 보낸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선택지 없이 살던 곳 가까운 지역의 국립대 영어과 00학번이 되었다. 집에서 학교는 버스를 1번 갈아타 총 2번의 버스를 타고 갔지만, 2번의 버스 모두 종점에서 종점을 가야 했기에 아침 6시 첫 차를 타도 학교에 9시가 넘어 도착하는 일이 잦았다. 교수님께 상황을 말씀드려 9시 반까지는 지각 처리되지 않게 배려를 받았지만, 행여 늦잠이라도 자서 6시가 넘으면 그날 오전 수업은 공을 치는 날도 허다했다. 이렇게는 도저히 다닐 수가 없어서 결국 자취를 하며 집에서 독립하게 되었다.


처음엔 선배 언니 집에서 얹혀 지내다 보증금을 모아 월세방을 구했다. 5평이나 되었을까? 아직도 눈에 선명하게 기억된다. 집에서의 독립은 나와 혼자 사는 것 외에도 부모님으로부터 전적으로 도움받지 않고, 홀로 살아감을 의미했다. 빠듯한 살림살이. 학교가 아니라 나라도 생계에 뛰어들어야 맞았을 그 상황에 등록금 달라, 용돈 달라 할 수가 없었다.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오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 근로장학생으로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생활하고 등록금을 마련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라디오로 토익 강의를 듣고, 6시 굿모닝 팝스로 영어 공부를 하고, 8시 학교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다. 9시 수업 전 남은 시간에 책을 읽고 부족한 잠을 강의실에서 잠시 청하며 하루가 시작되었다. 학과 수업과 도서관 아르바이트, 동아리 활동들을 마치고 오후 6시~12시까지 6시간 동안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오면 12시 반. 리포트나 학과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들고 다시 하루가 시작하길 반복. 하루의 반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남들에게 뒤떨어지고 싶지는 않아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매달리며 살았던 나의 대학 생활.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앞이 깜깜하고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제대로 열심히 매일매일을 버티며 살았던 스스로에게 가장 칭찬해 주고 싶은 시간이다. 대학 생활에서 유일했던 낙은 노래패 동아리 생활과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며 신간 도서가 나왔을 때 먼저 볼 수 있었던 것. 남들 다 가는 클럽, 나이트도 가보지 못하고, 미팅도 안 해본 집-학교-아르바이트를 무한 반복하며 별다른 재미없이 보냈던 나의 대학 생활, 나의 20대. 엇나가지 않고 열심히 잘 살아온 뿌듯함만큼 20대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들을 하지 못하고, 전공 공부의 즐거움보다 생존이 급해 누리지 못했던 그 시간들의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2024년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나의 두 번째 스무 살의 시작.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 영상학과 3학년. 2024로 시작하는 학번이 낯설고 반갑다. 또 국립대네, 이번 등록금도 내 스스로의 책임이네. 생각하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무엇이 꼭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매일매일 접하고 있는 미디어의 중요함과 그곳에서 나의 할 일을 생각해 보며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하게 되었다. 이번 대학 생활에서도 미팅은 아쉽게도 할 수가 없지만, 학과 공부도 동기들과의 스터디 모임도 함께 하며 나름 대학 생활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껏 여유로움을 장착하고 굳어진 머리를 굴리며 다시 재미난 공부를 시작할 참이다. 여유롭게 즐겁게 아쉬움 없이 공부하고 싶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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