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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지 May 13. 2024

어린이와 그림책

책을 읽는 기쁨과 즐거움

 아이들과 책을 읽고, 내용에 대한 이해와 어휘를 살피고,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하는 독서 수업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과 유치부 어린 친구들도 함께 한다. 유치부 어린이가 독서 수업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 친구들은 이제 막 한글을 배우고 있거나 아직 모르는 친구들이 있어 한글 수업과 함께 책을 읽고, 그리고, 붙이는 여러 활동들을 한다. 책은 주로 그림책이나 어린이 동화들을 읽고 있다.


 다른 아이들과 책을 읽는 건 지금 초등 고학년이 된 우리 남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과 또 다른 경험이다. 어릴 적부터 책극성인 엄마 탓에 자기 전에 같이 소리 내어 책을 읽고, 각자의 독서 시간을 가지며, 아빠와 떨어져 있던 주말가족 시절엔 우리 가족 북클럽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골라 네 가족이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는 책과 함께 하는 일상이 익숙한 어린이들을 키우다가 이제 막 책을 접하거나 낯선  어린이들을 만나는 경험은 날마다 새로움이다. 유치부 꼬마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 시간을 좋아한다. 오늘은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내 가방 속을 뒤적이고, 초롱 초롱한 눈망울로 집중해서 바라보는 표정은 정말 천사같이 예쁘다.


 반면, 초등학생인 친구들은 책을 읽는 것이 해야 할 많은 과목숙제 중 하나가 되어 책을 달가워하지 는 모습들도 보인다. 더러는 책을 못(안) 읽고 왔는데, 읽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바빠서 읽기 싫은데 수업 때문에 억지로 읽었다는 친구들도 있다.


 어느 날은 초등학교 3학년 친구와 그림책으로 수업을 하는데, "선생님, 저는 그림책에 그림은 보지 않고, 글만 읽어요." 하는 게 아닌가. 왜냐고 물으니, "엄마가 그러라고 했어요. 빨리 읽으라고요." 그 말을 듣고 잠시 놀라 왜?라고 툭 말할 뻔했다. 책을 빨리 읽기 위해 그림책에 그림을 보지 않고 지나간다니... 오 마이갓! 아이들이 책 읽는 게 마냥 숙제 같고 싫은 건 아이들의 취향이나 영상미디어의 노출 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친구들을 만나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정말 없을 것 같다. 아이들 스케줄이 웬만한 직장 다니는 어른들 같으니 말이다. 유치원이나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 태권도, 줄넘기, 영어, 수학, 방과 후 등등의 학원이나 돌봄 시설에 있다가 5-6시경에 집에 온다. 집에 와선 밥 먹고 씻고, 학원 숙제를 하거나 온라인 수업 또는 집에서 엄마랑 홈스쿨을 하거나 나와 같이 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수업을 하고 10시가 넘어 잠이 든다 하니 말이다. 어른들도 이런 스케줄에 책 읽자 하면 놉! 하며 단호히 거절의사를 보여줄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아이들에게 책 읽어야지 하고 마냥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을  다양하게 으면서 책 속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다른 이와 공감하고, 감동을 나누는 것이 정서적으로도 지식의 축적과 확장의 면에서도 내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좋은 것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아이들 독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책과 교재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동기가 없는 친구들과 함께 핑크빛 목표를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말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때로는 반론하며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분야도 장르도  시대도 작가도 다른 책들이 서로 연결되며 문득 목욕탕에서 무언가를 깨달아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머릿속에 환한 전구가 뿅! 켜지는 깨달음의 순간과 확장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걸 나누고 싶은데 말이다.


 자기 몸만큼 큰 가방을 메고 여기저기 배움에 지쳐 돌아와서 집에서 또 나를 만나는 친구들에게 뭔가 재미도 주고, 숙제, 공부가 아닌 쉼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 전에 수업 주제나 글감과 관련이 있는 시와 그림책을 읽어주기로 하였다. 시와 그림책은 정해진 시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금방 읽을 수 있고,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기에 더없이 좋았다.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누군가 읽어주는 것보다 스스로 읽기가 익숙해지고 당연해진 지금, 어렸을 때 엄마가 책을 읽어주던 좋았던 기분으로 수업을 시작하는 건 더없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으로 각각의 수업에 맞춰 책을 고르려니 이게 또 만만치 않더라.  좋은 책들을 골라주고 싶은데, 고르고 자시고 할 만큼 내가 그림책을 너무도 몰랐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서 고르는 건 한계가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그때, 어린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가꾸는 어린이 도서 연구회(이하 어도연) 신입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40여 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어도연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시민단체이다. 그간 자주 가는 동네 서점에서 어도연 추천 책 목록 등을 익히 보기도 해서 이름이 익숙했고, 도서관, 학교 등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고, 좋은 책들을 골라 추천도 하는 단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신청해 21기 회원이 되었다. 협회에서 하는 여러 활동들이 내가 책을 일로 시작하게 된 동기의 목적과 일치하는 점이 많아서 더 반갑고 좋았다.


첫 시간에 함께 나눈 책은 마쓰이 다다시 작가의『어린이와 그림책』이었다. 1990년도에 출간되어 현재는 절판되어 중고로 구매한 책인데,  이 책을 보고 요즘에도 좋은 책들이 많을 텐데 굳이 이렇게 옛날 책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린이를 생각하는 마음, 그림책이 무엇이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림책에 대한 시대와 본질을 관통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닥다닥 붙여진 독서 인덱스와 밑줄들이 그 증거이다.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쁘고 설렌다.


 올해는 많이 배우고 쌓으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시작해보고 싶다. 어도연에서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책활동 또한 그러하고,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책으로 얻어지는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고픈게 그러하다. 부디 지치지 말고 즐겁게 아이들에게 좋은 책 기운을 뿜어내자. 벌써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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