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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지 May 25. 2023

이제 그만 마감할 때

마감과 통조림

사진: Unsplash의KaLisa Veer

이래서 작가들이 여행을 가고 머리를 환기시키고 새로운 경험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 주제어가 심상치 않은 '통조림'이어서 지난주부터 계속 생각을 하는데도 마땅히 떠오르는 일화나 글감이 없다. 


"윤지 씨, 이번 주 주제어는 뭐예요?" "통조림이요." "엥? 통조림이 뭐야 통조림이" 아침 6시에 마음 맞는 몇몇이 온라인 줌으로 모여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주제어를 정해 글을 쓰고 있고, 이번 주 주제어가 통조림이었다. 하하, 떠오르는 글감이 없는 건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주제어를 받은 멤버들의 당황스러움이 엥?이라는 한 마디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통조림을 초록 검색창에서 찾아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캔에 들어 있는 음식물에 대한 설명이 대다수, 그렇게 스크롤을 내리다가 어? 하고 손가락을 멈추어 본다.


통조림 : 마감을 앞둔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가두는 것. '통조림에 들어간다'라고 표현한다.
_네이버 오픈 사전 중에서


누군가가 따주어야 나올 수 있는 통조림의 세상. 마감이 되어야 나올 수 있는 작가의 시간. 마감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그리고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것. 


마감을 떠올리니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2022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한 정당의 환경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선거기간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이라고 해야 자료를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주선하고, 정보들을 수집하는 사무 보조의 역할이었지만, 당시 아이들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이들을 챙기며 나가서 일을 하고,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를 시간들을 보냈었다. 


내가 이 일만 했을 리 만무. 시민 환경 모임의 기획가로 있었을 때라 카페 운영과 캠페인, 프로젝트 등의 기획 회의와 함께 새롭게 시작할 월간 소식지와 일정표를 기획. 편집하는 편집팀장으로의 역할도 맡아 진행했을 때였다. 생전 해보았을 리 없는 일을 맨땅에 헤딩하듯 혼자 기획하고 쓰고 드디어 2월 대망의 첫 월간지를 발행했다. 한 페이지 안에 가독성 있게 그 달의 행사 일정 표와 중심이 되는 기사와 인터뷰 기사 헤드라인을 넣고, 추천 책을 넣었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내가 이런 걸 만들다니! 생각 같아서는 소식지의 이미지를 클릭해서 기사로 바로 넘어가게 하는 걸 하고 싶었으나, 월간 소식지조차도 선 하나, 이미지 하나, 그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미세하게 옮겨가며 이미지 입혀서 만들었기에 신문기사같이 클릭되는 로망은 실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지옥의 마감 시간. 첫 소식지 발행의 기쁨과 자아도취에 잠겨 그 뒤에 있을 마감의 괴로움과 옥죔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매월 새로운 소식들을 발행하기 위해 글감을 취재해야 하고, 북클럽 책을 선정해야 하며, 그 달의 행사 일정을 만들고 변화되는 일들을 수정하기를 반복해야 함은 처음 느끼는 마감 압박의 굴레였다. 눈 깜빡하면 와 있는 마감의 시간. 늘 부족한 시간. 이 일을 내 하루의 메인으로 해도 며칠이 걸릴 일들을 하루 이틀 집중해서 마치기를 몇 달째 반복하고는 6개월 차 7월에 결국 못하겠다 선언을 하고 탈진되어 급기야 기획가 자리까지 박차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아직도 등에 진땀이 흐르고 온몸이 굳어지는 듯하다. 마감의 압박, 나 홀로 하기에 부담스러운 일들, 사람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들이 쌓여 글을 쓰려 컴퓨터를 켜고 자판에 손을 올린 채 그대로 몇 시간을 진땀을 흘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기를 반복했던 밤들. 새로운 기획가들이 합류하고 함께 일을 나누어하자고 주변의 사람들도 안타까움과 답답함에 나에게 이야기했지만, 이것을 나누는 일조차 나에게 새롭게 주어지는 일이었기에 함께 나누지 못했다. 차라리 혼자 하는 게 편하다 이유로 혼자 끌어안고, 마감 일자는 계속 하루하루 늦어진 채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신뢰는 떨어지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시간이었다.


그러고는 그 당시 걸렸던 코로나의 후유증인지 심리적 우울함인지 모를 깊은 늪에 빠져서 한동안 바보 같은 나, 도움도 청하지 못하는 나,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 어디에도 뿌리 깊게 속하지 못하는 나,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끊임없이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늪의 시간에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면까지 나를 끌어올려 준 건 책이었다. 밖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내 생각을 책 속의 작가는 먼저 이야기해 주었다. 내 마음이 지금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픈지, 책은 알려주었다. 때로는 tv 개그 프로그램보다도 더 웃기고 재미있는 책 속에서 깔깔깔 오랜만에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혼자인 시간에 내 마음을 그냥 토해내는 치유의 글쓰기를 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찌꺼기들도 내뱉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속의 내 이야기에,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윤지야, 너 왜 지금 기분이 나빠? 왜 슬퍼? 왜 화가 나? 마치 내 눈앞에 내가 다른 사람처럼 앉아 있는 듯. 나를 나와 분리해서 계속 묻고 묻고 답했다. 어느 날은 울었고, 어느 날은 화가 났고, 또 어느 날은 무기력했다. 믿고 이야기 나눌 누군가가 책 밖에는 없다는 현실이 슬펐다.


그리고,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마 다 꺼내지 못하고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이 마음이 답답하다. 같이 하자고 하는 제안들. 함께 하자고 내미는 손. 그 손을 거절당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안감이고, 두려움이다. 가장 가까울 사람에게조차 마치 가면을 쓴 듯 속 마음을 내보이지 못하고, 받고 싶은 따스한 위로와 공감의 거절의 경험들이 나를 위축하게 만들었다. 풀어야 할 마음을 엉뚱한 남에게 하소연하고 있으니, 그 관계의 끝이 좋을 리 없었다. 결국 내 속만 다 내 보이고 빈 껍데기가 되어 버려지고 또 움츠리게 된다.


하지만,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 모습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며 마치 다른 사람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기억이니, 내 위주로 사실이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 조차도 기록해 놓고, 직시하며 나아지고 싶다. 이 끝을 잘 마감하고 싶다.


#마감 #통조림 #책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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