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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지 May 25. 2023

솜사탕 장수여도 괜찮아.

꼭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은


사진: Unsplash의Brandi Alexandra


어릴 적 나의 꿈은 솜사탕 장수였다. 달콤하고 사르르 녹는 솜사탕은 버스도 하루에 네 번 들고나가는 깡 시골아이에게 흔하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도 했고, 돌돌 돌아가는 기계 중앙에 설탕을 휘 넣고, 나무젓가락을 돌려 나오는 하얗고 폭신한 구름 같은 솜사탕은 꿈의 디저트였다. 그런 귀한 솜사탕을 어쩌다 놀러 가거나 지나치는 곳에서 만나 반가운 마음에 사달라고 하면 엄마는 비싸다고 사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솜사탕을 누구라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싸게 파는 솜사탕 장수가 되기로 꿈을 가졌다. 하지만, 나의 이 달콤한 꿈은 현실에서 꿈이 아닌 꿈, 멋지지 않은 꿈이었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선생님, 과학자, 현모양처 이런 걸 이야기하는 거라고 정확히 누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의 꿈은 다 미래에 내가 가져야 할 직업으로 말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연한 것에 추호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고, 다른 꿈들은 이상한 것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무도 내 꿈을 인정하고 지지해주지 않은 나는 또 다른 꿈을 꾸어 보았다.



아이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세상 곳곳의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기자였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빛나는 환호를 받는 연예인이었다. 다 같이 잘 사는 우리나라를 만들 대통령도 돼보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여자가 대통령이냐 안된다. 네가 무슨 얼굴이 예뻐서 연예인을 하냐 안된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꿈을 꾸고 있던 나는 또 여자는 대통령을 하면 안 되는구나, 그래 예쁘지도 않은데, 연예인은 못될 거야 하며 왜? 안돼?라는 의문도 가지지 못한 채 그 꿈들은 포기되었다. 이제 남은 꿈은 선생님과 기자. 우선 기자를 보자. 학생 시절 아빠는 읍내에 농민 신문사를 차려 농사의 개혁과 농민의 권리 등을 이야기했다. 아빠의 기사에 불편한 군수며 군의원에게 허구한 날 항의 전화를 받고, 벌금을 내고, 협박을 당하며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결국은 돈도 벌지 못해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옳은 일일지라도 그 뒷면의 가족들은 너무도 힘든 대가를 치르는 직업이 기자구나. 하고 꿈을 버렸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꿈은 선생님. 이 꿈은 앞서 말한 것들과 달리 정말 꿈다운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여자 치고는 목소리가 저음이다. 여자도 변성기가 온다. 어릴 때의 목소리는 지금보다도 더 낮은 톤의 남자아이 같은 목소리 같아서, 생긴 건 여자아이인데, 목소리는 왜 그러니? 하며 어른들이 어릴 때 늘 감기에 걸렸니? 어디가 아프니? 여자애가 맞니? 하며 나에게 묻는 질문과 관심이 싫었다. 그럼에도 워낙 활달한 성격에 그런 것에 기가 죽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 목소리는 별로야. 못생겼어하는 자괴감이 늘 마음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생이 된 어느 사회 수업 시간. 학생들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는 학교에 몇 안되던 나의 사회 선생님이 책을 읽어보라며 나를 불러 세웠다. 늘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일어나 읽는 책인데도 나는 내 목소리가 신경이 쓰여 긴장을 하며 읽었다. 그때 선생님이 "윤지는 책 읽는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라고 하셨다.



참 듣기 좋다. 이 짧은 말이 무겁게 내려앉은 목소리 같았던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는 한 줄기 빛 같았다. 그 순간이 아직도 한 장의 사진처럼 따스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되기로 결정했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특히나 선생님의 한 마디로 마음의 짐을 덜고 가볍게 날 수 있었고,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이 꿈만은 버리지 않고, 버려지지 않고 언젠가는의 막연한 희망만을 간직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선생님이다. 온라인으로 10분 찰나의 시간에 아이들의 영어독서 코칭을 해주는 선생님이지만, 희망은 드디어 현실로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그때 따스했던 선생님의 말 한마디의 힘이 이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게 해 주었다. 나 또한 그런 선생님 같고 싶은 마음으로 매주 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솜사탕 장수의 꿈도 다시 꾸어본다. 누군가의 시선과 말들에 상관없이, 타인의 인정과 지지 없이도 꿈꿀 수 있음을, 무언가 되어야 하는 일이나 무엇이 아니어도 됨을 이제는 안다.


#꿈 #따스한한마디 #학창시절 #솜사탕 #선생님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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