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한 기록들이 수두룩이다. SNS에, 웹하드에, 노트북에, 메모장에. 한 곳에 모아보자 하면서, 디지털 아카이빙을 한다 하면서도 알록달록 스티커 붙이며 삐뚤빼뚤 쓰는 손 다이어리를 놓지 못한다.
특별한 것도 없다.벌려놓고 수습 못하는 고질적 습성 탓에 잊지 않으려 끊임없이메모를 하고, 계획을 잡는데, 이마저도 작심삼일. 월요일에 잔뜩 힘이 들어간 빼곡한 기록은 수요일이 되며 힘을 잃고 주말에는 자취를 감춘다.
⠀
어느 때는 빈 곳이 더 많은 다이어리를 보면 덩달아 내 하루, 내 삶도 공허해 보여 헛헛한 기분이 든다. 이럴 거면 만년 다이어리를 쓰지 말고, 불렛저널처럼 내가 만들어 그저 빼곡히 채우는 걸 목표로 스스로 작은 성취감이라도 느껴볼까 하다가도 그마저도 귀찮아진다.
⠀
다이어리를 쓰며 나를 매일 피드백하고, 24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보낼 것인지, 인사이트를 얻고 분석을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지금의 나는 늘 초라하고,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하고 싶은 일은 많다는 전제하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압박이 나의 에너지를 몰아 쓰게 하는 것만 같다. 결국 귀찮음을 전면에 앞세워 강박에 저항하지만.
⠀
⠀
그런 내가 볼펜 한 자루를 다 썼다.볼펜은 그저 쓰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고, 수많은 메모를 남기고 결국 닳아 없어졌다. 나 또한 이 볼펜을 끝까지 써낼 테야 힘주고 시작하지 않았기에 다 쓴 볼펜 심을 보고, 어 벌써 다 썼네. 하며 그의 노고를 치하하고, 스스로 작게 끝까지 쓴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낄 뿐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그 작은 뿌듯함이 좋았다. 이 많은 잉크로 난 무엇들을 써 내려갔나 찬찬히 되살펴보았다.
⠀⠀
앞으로 다이어리도 쓰기에 충실해 생을 마감한 볼펜처럼 써야겠다. 그저 하루를 기록하고, 되돌아보고. 때로는 좋아하는 스티커와 색연필로 그리고 붙이는 재미도 느끼고기록하는 제 역할에 충실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 기록이 어느새 끝에 다다랐을 때, 쌓이고 만들어진 내 일상을 돌아보며 지금처럼 작은 뿌듯함, 기대하지 않은 작은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