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저녁, 나의 정맥에 빨대가 꼽히더니 쉬익 소리가 날 때까지 혈액을 빨아먹고 도망가는 그림자가 느껴졌다. 온몸에 힘이 주욱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더 빨리 거실바닥이 솟구쳐 내 이마를 때리고선난정신을 잃었다. 아이의 째지는 울음소리 덕분에 곧 정신이들었지만, 그로부터 한동안은 식탁에 오른 음식이 돌가루처럼 느껴지기시작했다.
마이크 타이슨이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p23, 김영민, 어크로스)
갑자기 처맞아 보니, 별 게 다 부럽고 서러웠다.
밥. 쌀을 씻어 약간 불리고, 솥에 안친 뒤 기다리면 나는 갓밥의 촉촉한 내음.
국수.아삭한 진초록의 열무김치에 묻은 양념이 갓 삶아낸 소면을 휘감을 때 참기름 두어 방울 떨어뜨려 슥슥 비비며 내는 촉촉한 소리.
설거지. 세상 귀찮은 일이 아닌, 온전히 두 발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하루의 찌꺼기를 씻어낼 수 있는 명상의 시간.
건강을 되찾고 또다시 일상의 근심들에한숨이 쌓여갈 테니, 그때마다 이 글을 꺼내어 먹고 더 처맞지 않기 위한 대비가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