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 엄마가 입시를 앞둔 꼴찌 딸을 위해 선택한 전략은 무당에게 묻기였다. 이 드라마를 8번 이상 다시 보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덕선이를 개명한 이름으로 바꿔 부르려는 주변인들의 어설픈 노력들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주님에게 잘하지 못해서(모태서) 모태신앙이라는 우스갯소리는 나에게 큰 위로인데, 미래가 불안할 때 친구따라 불상과 향초로 인테리어 된 점집에 가는 것 조차 어려운 나에게 대안이 필요했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며, 그 예측들은 자동으로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123p, 리사 펠드먼 배럿, 더퀘스트-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은 예측하는 뇌를 길러내는 것도 나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뜻밖의 뇌과학이 미래가 불안한 나에게 대안이 되어주고 있어 고맙다.
철든 어른이 된 지 10년 남짓한 나는 잘 해결하는 것만이 인생 최고의 목적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고, 동시에 때론 그냥 묻어가기도 나름의 전략일 수 있겠다는 것도 알았다. 뾰족한 날을 세우며 방구석 판사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족, 학생들, 그리고 주변 어른들을 통해 확인하는 중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가려고 마음은 먹었어도, 현실이 나의 결심을 도와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청량고추가 흐드러진 된장찌개와 밥을 먹어야 그날의 잡념이 씻어지는 나의 취향을 비웃듯 오늘의 밥상은 휴대폰 두께만 한 버터가 들어간 앙버터 빵이 반찬으로 올라왔다면 인생 최대의 난제다. 이럴 땐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버터에 묻어가기도 어렵다. 엄마 몰래 앙버터를 어딘가에 묻어버리고 사과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묻기(다의어)
1.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2. 누군가에게 묻어가기.
3.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고 묻어버리기.
당분간 세 가지 묻기의 달인이 되어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기분 좋게 질 수 있는 어른으로 살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