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유학준비를 도와달래서 코엑스에 갔다가 바로옆 백화점 지하 1층을 잠시 들렀다. 수십년간집 앞 편의점처럼 들락거렸던 그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이 궁금해서였는데, 가장 생소한 것은 디저트 금액에 대한 나의 망설임이었다.
한 알에 4천700원짜리 약과를 2만 원짜리 오동나무 케이스에 담아 판매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토핑을 이것저것 담으면 거의 2만 원에 가까워지는 스무디를 식사 대용으로 즐기는 사람들로 지하 식당가가 가득 찼다.
이제는 내가 돈을 버는 입장이니, 이런 음식들을 무턱대고 결제하기 어려워진 입장인 데다가, 인천에서 10여 년을 살아보니 새삼 물가가 터무니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현재 나의 밥벌이가 너무 '밥'만 먹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닌가 싶어 고개가 무거워지다가도 이곳은정상이 아닌 거라고 맘 편한 대로 정리하고 인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더운 여름 엿처럼 축 늘어진 나의 기분을 김영민 교수님의 신간에서 박하사탕으로싸대기를 맞은듯 위로를 받는다.
어제 일이 있어, 백만 년 만에 강남 한복판에 갔다. 신기한 게, 강남 가니 도태되는 느낌이 생기더라.더 매운 거 먹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 그러지 않으면 그냥 엿 될 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 사냥 감이 되기 전에 빨리 침대 위로 돌아가야지...
-가벼운 고백 43p, 김영민, 김영사-
집에 돌아오니 친구 생일 선물로 며칠 동안 만든 수제반지를 들고 아이가 울고 있다.
갑자기 친구의 변덕으로 초대에서 제외되었다는데, 아이는 처음 느낀 배신감과 동시에 다가올 생일파티날 집 앞 놀이터에 우르르 몰려나와 초대받은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운 것 같았다.
기분같아선 그 친구 엉덩이 한쪽을 대신 꼬집어 주고 싶지만, 저릿한 마음을 누르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음식 때문이야. 마라탕 1.5단계랑 치고받고 치킨도 있다고 했단 말이야~ 으아앙~"
마침 나도 더 매운 거 먹고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하고 있던 차에 아이의 말을 들으니 늘어진 엿가락이 되어선 안되겠다 싶다. 잘됐다, 당장 마라탕 1.5단계로 먹으러 가자,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