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희,『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를 읽고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기획한 연구내용을 천주희씨가 책으로 엮었다.
바틀비 출판.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청년들의 불안하고 불행한 일터에 관한 보고서-
간단히 정리하자면,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퇴사를 하는 거야?"라는 질문의 답인 책이다.
책은 교양서와 논문의 중간쯤. 재밌지는 않지만 너무 건조하진 않다. 그래도 약간 건조한 편.
전반적인 흐름은 젊은 세대의 퇴사를 들여다보면서 현재 '일터'가 가지는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20~30대 청년들은 잦은 퇴사를 경험하면서, 취업준비라는 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것임을 자각한다. 오래된 스펙은 다시 갱신해야 하고, 취업 후에도 더 나은 나를 위해 전문성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개인은 점점 노동시장에서 소외된다. 개인의 능력은 점점 전문화되고, 스펙은 쌓이는데 반대로 노동시장에서는 점점 무력해지는 상황, 이것이 오늘날 예비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제1장 취업시장의 문턱, 28p)
실적과 성과를 강조하는 조직에서 개인은 더 높은 실적을 내야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적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발언권도 제한된다. 또 다른 서열과 계급화가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2장 수상한 노동 세계, 77p)
사직서표지의 발랄한 제목과 대비되는 딱딱한 내용에 사실 조금 실망했다. 약간 이 기분은 『한국 남자』라는 책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기분이다. 애초에 연구를 토대로 한 책이고, 그 연구내용을 충실히 담았기 때문에 엄청 새롭고 신선한 내용이 있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애초에 사회과학이라는 게 현상을 분석하는 것인데다가, 내가 딱 연구대상에 해당하는 연령 혹은 신분(?)이라 더 '알던 얘기'로 느껴져서 흥미가 떨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2년이 지난 후에 제가 회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까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야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을 하고 내 일이 줄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게 계속 유지될 것 같았던 거죠.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_ 강민우 (2장 수상한 노동 세계, 78p)
심지어 이 대목은 너무도 내 얘기라 소름. 나는 입사 반년차에 오래 일하기 위해서 나쁜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어야 했다. 업무 과중을 피하기 위해 '못해요'라는 얘기를 의식적으로 하려고 했고, 칼퇴를 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2년차엔 그냥 넌씨눈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 퇴사를 했던 것이다.
환경적으로 잦은 퇴사를 경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이 대나무와 같다고 생각했다.
저한테는 내 생활을 하기 위한, 내 삶을 하기 위한 연장선상에서 대나무 마디 같은 거예요. 그냥 끊어가는 점. (...) (퇴사한다고 해서) 세상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는건데.
그렇게 맞지 않고 내 삶을 힘들게 하는 회사라면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불확실한 고용시장으로 내몰리고, 설령 이직에 성공하더라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한다는 부담때문에 당사자에게 퇴사가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필요하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나무는 마디를 끊어 자라면서 더 단단해지고, 더 올곧아지고, 더 높이 자랄 기반을 다진다. 많은 퇴사경험자들 또한 마찬가지의 마음이다. 일의 연속성을 끊어가면서 삶을 단단히 해가는 것이다. 마디가 있어야 더 높이 자란다, 대나무도 사람도. 파랑새를 좇는 게 아니라,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이 책은 청년 퇴사자의 관점에서 일터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중간관리자나 임원들은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불편한 지점에서 성찰을 시작하면 된다. 왜 나의 호의가 청년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지, 그것은 왜 애정이 아니고 폭력이 되는지. 그동안 사회초년생이나 신입사원들이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마주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껏 키워놨더니 몇 년 있다가 퇴사하더라"고 볼멘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청년 세대와 함께 일하고 싶다면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권한다. (들어가며, 12p)
완독한 막 30대(만20대)의 재입사 6개월차가 느끼기에 이 책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을 가감없이 정리해둔 책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우려하는 중간관리자나 임원들이 읽어야 유익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나와 내 또래들이 너무도 잘 아는 이런 내용도, 직접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렇게 문서로 대면하지 않고는 잘 모르지 않겠나. 많은 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대체로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상사라 생각하기에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은 과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줄이고, 조금 더 다가가고 싶은 관리자급이라면 이 책이 꽤나 도움이 되지 싶다.
노무사나 인사담당자, 관리자, 노동부와 같이 조직문화를 연구하고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나, 이와 관련없이 교양을 쌓기위해 혹은 직접 당사자로서 길잡이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그리 추천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