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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Mar 10. 2020

당신이 돈을 주고 산 건 열정이 아니라 노동력이다

미야 토쿠미츠의 책, '열정 절벽' 후기

#열정절벽 성공과 행복에 대한 거짓말
#미야_토쿠미츠 
#do_what_you_love #dwyl
#책 #책추천 

#열정적인사원 을 뽑는다는 채용공고는 한번쯤 봤을 것이다. 크나큰 열정으로 서류에 면접에 피티면접까지 통과해서 들어가보면 알게된다. 조직은 열정을 갉아먹으며 유지된다는걸. 조직은 열정을 노동으로, 성과로 보여주길 바란다. 하지만 열정은 아무 대가없이 무한히 솟아나지 않는다. 열정을 유지하려면 자율성, 성취감, 보람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직은 임금으로 그 모든 걸 퉁치려한다(심지어 월급은 내 열정에 비할바도 아니다). 

임금과 교환관계에 있는건 그냥 노동력이다. 최선을 다하는 노동력 말고, 그냥 노동력. 구성원에게 최선을 다하는 조직은 얼마 없는데 왜 하나같이 구성원은 최선을 다하기를 요구하는건지. 조직과 구성원의 노력관계도 인간관계랑 비슷하다. 하는만큼 돌아온다. 받기 원하는만큼만 하면된다. 기브앤테이크, 쉽잖아?  

하지만 서양 예술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가 노동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은 너무 충격적이다. 그것도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말이다. 복잡한 작품을 설계하고 구성하는 일은 불안감과 스스로에 대한 회의에 시달려야 했던 정신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교황의 지시를 따라야 했던 고되고 땀에 전 채색 작업이었던 것이다. 
 #예술적노동 은 #열정 과 재능, 정신질환, 신념, 약물, 기묘한 환상, 그리고 사랑이 더해져 실로 거대한 신화들을 만들어냈다. 

예술가의 광기로 치부해버렸던 고된 예술노동에 대해 일깨워준다. 맞다. 그것도 노동이었다. 현대사회에서도 예술 분야에선 극소수만이 정당한 보수를 받고 있을 뿐, 대다수가 말도 안 되는(심지어는 ‘수업료’라는 명목으로 지불해가면서까지) 저임금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예술은 고귀하고, 헌신적이며, 순수한 것이라는 외피를 씌워 정당한 대가도 요구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누구 말마따나, 왜 그것은 노동이 아니란 말인가?


학위 소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임금격차 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후자의 임금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위가 굳이 필요 없는 직업에 많은 대졸자들이 진출하면서 학위가 없는 사람들은 #저임금 직종으로 밀려나거나 실직했다. 그로 인해 임금 자체가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또한 대학 학위가 #중산층 으로 진입하는 조건이라지만 사실 중산층 자체는 큰 변동이 없다. 중산층이 부를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최상위층의 소득 비중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보면 대학 학위는 젊은이들이 제자리걸음이라도 하게끔 도와준다. 그런 점에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제자리 걸음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7-80%가 대학을 나오고 있구나.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젊은 세대들. 나를 포함하여 참 안쓰럽다.


조지 패커는 <뉴요커>에서 이렇게 풍자했다. “아무도 ‘매장 관리자를 위한 발라드’를 작곡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노동이 신성하다면서 직업의 귀천은 극명히 따진다. 정작 다수가 일하고 있는 많은 일자리들은 신성한 노동에서 제외시켜버린 것이다, 어떠한 스포트라이트도 주지 않음으로써. 


존스홉킨스 대학교 정치학자 #벤저민_긴스버그 Benjamin Ginsburg의 설명은 그나마 덜 암울하다. 그는 수많은 관리 업무를 회의 일정 수립, 회의 참여, 직원 수련회, 전략 기획 등 ‘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몇 개 대학에서 진행된 시시콜콜한 대학 행정 회의를 예로 들어 결론지었다. “직원과 관리자들이 하루 종일 다른 곳에서 논의했던 회의에 대해 회의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악몽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불행히도 이처럼 기묘한 광경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총장 주재 회의’에서 19개 의제 중 11개가 다음 회의 계획이나 지난 회의에 관한 것이었다.
#긴스버그 는 회의록과 전략 계획을 훑어보면 회의에서 의결된 것은 일반적으로 사소하거나(예를 들어 ‘기말 시험은 기말 고사 기간에만 치른다’) 우스울 정도로 모호했다고(예를 들어 ‘문화위원회 창립이 필요함. 주지하다시피 문화란 난해한 이슈인 만큼 몇 년간 위원회가 지속되어야 하고, 복잡한 안건을 해결하려면 몇십 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밝혔다. 

직장에 다닐 때 회의 때문에 정말정말정말 지치고 힘들었다. 회의만 없어도 일을 두 배는 할 수 있을 것 같았고(실제로 일하는 시간보다 회의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때가 많았다), 좀 더 버틸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이와중에 내로라하는 양반들만 모인 대학의 총장 주재회의조차 비효율과 불합리의 극치라니, 위안을 받을 수도 비웃을 수도 없이 그야말로 '웃프다'. 


 <디센트Dissent>에 인턴십에 관한 글을 기고했던 #매들린_슈워츠 는 (...)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전통적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답은 가정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은 일이 아니다. 저녁 식사 준비나 바닥 청소가 얼마나 오래 걸리든, 하인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노동이 아니었다.” 

무급으로 여겨진 여성의 가사노동은 결국 가정 밖에서도 저임금을 정당화해왔다. 가사노동을 무성화하는데서 시작해야한다. 가사가 여성의 책임이라 여기는 사회니까 유사노동의 가치를 쉽게 후려치는거다. ‘어차피 집에서도 하던 빨래, 설거지, 돌봄, 밥하기인데 거 얼마나 힘들다고!’ 그래, 그 쉬운거 당신들이 해.. 내가 힘든 일 할게. 


 #다임러 의 독일 사무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휴가기간 동안 업무 계정으로 들어오는 이메일을 자동 삭제하는 ‘#메일_온_홀리데이 #Mail_on_Holiday’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다. 발송인은 이메일이 삭제되었다는 통지와 해당 직원이 돌아오는 일자, 업무 인수자 연락처 등을 전송받는다. 이것은 근로자들의 휴식 시간을 보호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다.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시급하다. 


우리는 살고, 일하고, 소비하면서 수많은 한계에 부딪혀왔다. 경제 성장 자체가 이득을 가져다준다거나, 노동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꿈과 사랑, 잠재력까지 실현해 준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되었다. 일 자체가 고귀한 목적이라는 생각은 몹시 제한적일 뿐 아니라, 근로자에게는 득 될 것이 전혀 없다. 


누군가 일에서 보람을 찾지 말라고하더라. 하루의 거의 반을 잡아먹는 게 일인데, 하루의 반을 아무런 보람과 의미도 없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나? 그런데 실상이 그렇다.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보람과 의미도 없는 일들을 하며 인생의 2/3에서 반 이상을 낭비하고 있다. 안 그럴 순 없을까? 우리의 제한된 삶이 그렇게 낭비되도록 내버려둬도 될까?


어쨌거나 이 책의 교훈도, ‘일 중심 사회를 탈피하자’인걸로.

열정을 착취당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월급쟁이 들에게 강추한다.


총점 4.5점 (비슷한 시기에 읽은 #일하지않을권리 가 다섯개라 차별화를 위해서일뿐,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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